정치/북한관련

[용산생명평화미사 소식 41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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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 [praxis]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9385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소식
제41호 | 2009년 5월 22일 | 참사 123일째
성모의 밤 (5/29)
■ 5월 성모성월을 맞아 참사 현장에서 '성모의 밤'을 진행합니다.
- 일시 : 2009년 5월 29일(금) 저녁 7시
- 장소 : 참사 현장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출구-직진)

철야 피정과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5/30~31)
■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철야 피정과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 철야 피정 : 2009년 5월 30일(토) 미사 후 ~ 31일(일)
-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 2009년 5월 31일(일) 오전 11시
- 장소 : 참사 현장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출구-직진)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에 대해 회개하고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매일 계속됩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일시 : 매일 저녁 7시(일요일 제외)
- 장소 : 참사 현장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출구-직진)
- 희생자들을 넋을 위로하는 의미로 미사에 오실 때 꽃을 하나씩 준비해 주십시오. 굳이 비싼 꽃화분을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꽃 한송이라도 먼저 가신 분들, 그리고 힘든 싸움을 계속하시는 분들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미사에 오시는 분들은 근처 분향소에서 조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미사 전에 영혼들의 안식을 위하여 연도를 바칩니다.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서울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생명평화 양초'를 현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근처 합동분향소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수익금은 유가족들에게 전달될 계획입니다.

미사 후 행사 알림
■ 5/22(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작가들이 현장에서 작가 사인회를 합니다.
- 공진하 / <왔다갔다 우산 아저씨> - 청년사
- 김리리 / <나의 달타냥> - 창비
- 박기범 / <미친개> - 낮은산
- 이지현 / <작은 낙타 아저씨> - 문공사
- 임정자 / <흰산 도로랑> - 우리교육
■ 요일별 프로그램(오후 8시)
- 월요일 : 대중 강연회
- 화요일 : 현장의 소리(각종 현장 동영상 및 라디오 방송 재방)
- 수요일 : 영화제
- 목요일 : 보이는 라디오 콘서트
- 금요일 : 끝나지 않는 연극제 및 무료 책 증정, 작가 싸인회


길위의 신부가 드리는 동영상

용산현장 유가족 연행
5월 20일

제작: 평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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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용산현장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연행하는 모습입니다.

미사소식

1. 5/21(목)



5/21 저녁 7시30분 용산현장에서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www.candlechurch.net)과 합동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종교는 다르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용산 참사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신앙인이라는 점은 똑같은 분들입니다.

예배는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의 인도로 진행되었고, 조헌정 목사(향린교회)가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를 주제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방인성 목사,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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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서 신부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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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정 목사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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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보면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김으로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간 사회 속에는 죄악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선악과라는 말은 그 글자의 의미만을 본다면 이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도덕적인 판단력을 의미합니다만, 성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데 가끔 다툽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사실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인간 개개인이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된 것입니다. 이전까지 선악의 판단은 하느님께 있었는데 이것을 인간이 가로채어 버린 것입니다. 곧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말은 하느님 없는, 인간들이 저마다 모두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존재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그래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가장 처음 생긴 일이 무엇입니까? 살인입니다. 그것도 원수들 사이에서 살인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 솥밥을 먹던 형제 사이에 살인이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 가인은 땅을 가는 농부였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반기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반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육식을 좋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가인의 삶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시기심이 일어난 가인이 아벨에게 우리 함께 들로 나가 하루를 즐기자고 꾀어내어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러고는 그 시체를 땅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억울한 피가 묻힌 땅이 하늘에 호소를 합니다. 이 피맺힌 한의 소리를 들은 하느님이 가인에게 묻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러자 가인은 시치미를 딱 떼고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저 건물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이상림님, 이성수님, 윤용현님, 양희성님, 한대성님이 억울하게 죽은지가 오늘로 123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명박정권이 이 죽음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하긴 이 정권은 부자들을 지키는 자들이지, 가난한 세입자들을 지키는 자들은 아닙니다. 지주와 재벌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힘없는 자와 가난한 자들의 생존의 권리는 외면하는 정권이니까 ‘우리가 저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는 저들의 항변은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경찰의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경찰은 전연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분명한 증인도 있고 증거도 있는데 억지와 생떼를 부리고 있습니다.

검찰은 판사의 제출 명령에도 불구하고 3분지 일에 해당하는 수사 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법을 얘기하고 정의를 찾는 검찰이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법한 얘기입니까? 이건 이 나라가 도둑놈들과 강도들의 집단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하신 삼성 떡값을 처먹은 삼성 장학생들로부터 정의를 찾고 법을 찾는다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BBK 사건을 일으키고 아파트 투기를 위해 위장전입의 범지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도대체 아파트 투기를 위해 한번 두 번도 아니고 9번이나 위장전입을 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그런데 그분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세요. 엊그제 대전에서 일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거리 투쟁을 두고 하는 말이 긴대나무로 경찰들과 대결하는 장면이 외신에 나와 창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죽창이라고 말하는데, 이거야 말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죽창이면 찔러야지요. 뱃가죽을 찔러 들어가야 죽창이지요. 이건 그냥 만장으로 쓰던 긴대나무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이를 죽창이라고 합니다. 아니 차라리 이쑤시개를 갖고 죽창이라고 하면 제가 곧이 듣겠습니다. 그런데 이 긴대나무에는 창피를 느낀 양반이 1년 반전에 BBK 사건과 위장전입을 외신이 폭로한 사실에는 전연 창피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때 대통령 후보 시절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광운전자 공대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강연한 동영상이 폭로가 되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기던 BBK 회사가 자기 입으로 자기 것이라고 얘기한 동영상이 나오니까, 다급해서 하는 말이 재산 다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벌써 부정직한 방식으로 번 돈임을 고백한 셈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 닦아 버렸습니다. 아니 수백억원이 넘는 자기 재산 아까운 줄은 알면서 왜 수천만원이 전부인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에 대해서는 아까운 줄 모른다는 말입니까?

청와대의 수장이 그러하니 그 밑에 있는 사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래 그렇고 그런 뒤가 구린 부자 각료들만 자기들 주위에 다 앉혀 놓고 겉으로는 경제니 개발이니 하면서 부자만 위하는 정책을 펴면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 권리인 집회와 결사와 언론의 자유를 짓밟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박정희유신정권이 저지른 것 마냥 종교 신앙의 자유마저 억압할 것입니다. 70년대 중앙정보부가 하던 교회 정치사찰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백성들의 한 맺힌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영구독재를 꿈꾸던 박정희가 순식간에 무너졌듯이 이 정권도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부정직한 정권, 가난한 사람들의 한 맺힌 소리를 짓밟는 정권은 하느님께서 결코 그만두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을 막으면 저 돌들이 소리를 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라는 곳에서부터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이스라엘 가장 변방에 있는 지역으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돈과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래 거기에는 항상 한의 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는 수도 예루살렘 근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그 한의 소리를 듣고 거기로 가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느님 나라에서는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주인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예수님 주위에는 당시 권력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부들과 세리들과 몸을 파는 여인들과 병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서 이 남한 땅에 오신다면 어디부터 가시겠습니까? 바로 이곳입니다. 용산 바로 이 철거의 현장, 죽음과 피의 한의 소리가 울려오는 이곳입니다. 그래 저도 예수님을 따라 이곳에 왔고, 3주전에는 저희 온 교우들이 이곳에서 평화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수도 예루살렘에 가서는 ‘성전의 벽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묶어져 있던 시대입니다. 그리고는 당시의 통치자 헤롯왕을 여우라고 불렀습니다.

이 헤롯왕은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베들레헴 근처의 2살 아래 남자아이를 다 죽인 폭군입니다. 마치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29년 전 수백명의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일과 같습니다. 2천년 전 헤롯왕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도 죽였고 장모 그리고 세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살인만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한낮 미치광이로 기억되겠지요. 그는 자신이 왕으로 있었던 치적을 남기기 위해 건설붐을 일으켜 엄청난 토목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궁전과 부속건물을 짓고 사실은 성전도 그가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팔레스타인 사막 예루살렘 고지대에 축구장만한 수영장까지 만들었습니다.

헤롯왕을 지금 이 나라의 이명박 대통령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씨는 본래가 건설회사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사람이고 서울 시장 당시 도시 재개발의 환상을 일으켰고 그 공로로 이제 대통령이 되어 4대강 정비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전체에 토목공사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헤롯이라는 통치자가 한 짓과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적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한 맺힌 가난한 민중들을 억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법과 비리를 감추기 위해 경제부흥과 국토건설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현혹한 것입니다. 그래 예수께서는 그를 간사한 동물인 여우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우에 현혹되지 마십시다.

지금 이 세상은 물질 탐욕의 시대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이 남한 땅이 제일 그러합니다. 제가 세계의 많은 나라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잘 사는 나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못사는 나라 네팔 인도 등 여러 곳을 다녀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남한 땅처럼 타락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나라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술집과 음식점과 모텔이 넘쳐나는 나라가 없습니다. 저는 교회가 명동에 있어 밤 늦게 명동거리를 지나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소리치고 싸우고 길에다 먹었던 것을 토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외국 사람들도 술은 먹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같이 타락한 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이 이 용산의 희생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우리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져야 잘 사는 나라라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분과 슬픔에 젖어 있는 유가족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뭐라고 위로한들 여러분의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분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70년 11월 13일 점심시간에 당시 청계천 평화시장 광장에서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댕겨 죽었습니다. 그곳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22살의 젊은이 전태일열사입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수년동안 노력하다가 그는 자신의 몸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어머니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이후 이소선 여사는 비록 가난한 사람이었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아들을 대신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이 있는 곳에 언제나 함께 하며 함께 투쟁했습니다. 그래 지금은 수백만의 노동자는 물론 생각 있는 지식인들 가운데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와 오빠와 형과 동생을 잃었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이 슬픔을 딛고 이 땅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힘써 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하고 한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길 만이 먼저 가신 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이고 여러분의 슬픔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오늘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김운회 주교님, 용산참사 유가족과 면담 예정(5/25)

김운회 주교님(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께서 5/25(월) 오전 11시 교구청 주교관에서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실 예정입니다.

투쟁소식

1. 유가족 연행, 홈페이지 압수수색, 범대위 탄압 규탄 기자회견(5/21)



5/20 벌어진 유가족 연행과 홈페이지 압수수색 등 범대위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 기자회견문 보기 ***

2. 검찰 용산참사수사기록 공개 촉구 청원과 항의엽서 보내기에 동참해 주세요



검찰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쪽을 은닉하는 등 재판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공명정대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재판부 역시 검찰의 방해행위를 수수방관함으로써 사법정의에 역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당장 수사기록 일체를 즉각 제공하고 재판부 역시 검찰이 수사기록을 제공할 때까지 공판절차를 중지하거나 압수영장을 발부하여 해당 기록을 압수하는 등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검찰은 은닉한 수사기록 3,000 쪽을 즉각 공개할 것을 청원합니다.

*** Daum 아고라 청원 바로가기 ***
*** 항의엽서 보내기 ***

3. 용산 현장에서 듣는 저항의 라디오,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 재개발'

1. 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씨 부인이 재판부에 보내는 편지(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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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용산참사로 아버님을 잃고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를 받고 구속 중인 이충연 씨의 처 정영신이라고 합니다. 제 글을 죄인의 아내가 쓴 글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아내로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쓴 서툰 글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남편과 6년을 연애했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가장 이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무엇보다도 남편의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단 하루를 쉬지를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남편의 성실함을 느꼈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에 또 한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사람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주위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면서도 자기 생일은 잊어버리고 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작은 노점상을 하면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강변역 근처에서 액세서리를, 남편은 용산 근처에서 테이프장사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먼저 강변역에 가서 저의 노점자리를 펴주고는 다시 용산으로 가서 자신의 노점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였습니다. 끝날 때도 남편이 먼저 자리를 접고 다시 강변으로 와서 저의 노점자리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우린 행복했습니다.

다 큰 처녀가 노점에서 장사를 한다니까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제 옆엔 남편이 있었기에, 이렇게 몇 년 만 고생하면 우리도 번듯한 가게라고 차려놓고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니며 노점 옆 구석에서 먹으면서도 우리의 꿈이 있기에, 힘들 때면 서로에게 용기주면서 어깨 도닥거리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남들은 노점이라고 깔보기도 했지만 우리 둘은 행복했습니다. 우리에겐 꿈이 있었으니까요.

그 러던 중 남편이 아버님(고 이상림씨, 용산참사로 사명), 어머님 가게를 함께 해보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처음엔 결혼도 안한 제가 시어른들과 함께 장사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남편이 "엄마 가게가 예전처럼 장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엄마가 너무나 힘들어 보인다"며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가게수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워낙 낡은 건물이라 이쪽을 건드리니까 저쪽이 망가지고… 생각보다 가게수리가 커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건비라도 아껴야 한다며 아버님께서 데모도 일을 하시고 남편은 자재를 사오고 어머니는 인부들 밥을 해먹이시고 저는 페인트칠과 잡일을 하면 40일에 걸쳐 공사를 했습니다.

사람을 많이 사서 공사를 했더라면 공사기간이 단축 됐겠지만, 기술자 한명과 저희 가족 4명이 하다 보니 공사가 더뎌졌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변하는 가게는 저희 가족에겐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와, 가게가 정말 이쁘다. 무슨 가게일까? 문 열면 꼭 와야지" 할 때마다 저희 가족들은 힘든 줄도 모르게 일을 하곤 했습니다.

드 디어 호프가게 오픈하는 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얼굴이 환해지시는걸 보니 저의 부부는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비록 많은 빚을 지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안 있어서 빚도 다 갚고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은 일어나시면 새벽기도 가시지 전 가게에 들르셔서 어제 못한 마무리를 해주시고 어머니는 장을 봐주시고 남편은 어머니 옆에서 설거지를 하고… 저는 홀일을 보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 같아 미뤘던 결혼도 했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로만 듣던 재개발이 우리 동네에 들어왔습니다. 7개월 만에 사업승인이 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용역이라는 인간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할 무렵 우리 가족에게도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말 로만 들었던 용역,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정도 없고 오로지 무지막지한 폭력과 욕설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님 앞에서 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용역들은 제 앞에서 시어머니 뺨을 때리기도 하고 한번은 아버님이 동네 현수막을 달려고 사다리에 오르자마자 용역들이 와서는 욕을 하며 사다리 다리를 흔들며 내려오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왜 그러냐며 막는 동네 어른들을 내동댕이치고 저에겐 욕을 하며 꺼지라고 하면서 사다리 위에 있는 아버님의 성기를 잡아당겨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마구 때리는 거였습니다. 너무도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버님과 도망 오는 길밖에는 어떤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버님 다친 곳을 약을 발라 드리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법이 이런 건지, 힘없는 사람들은 아무 말 못하고 거리로 내쫓겨나야 하는 건지 정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집을 가려고 해도 길을 막고 이 "거지 같은 년 돌아서 다니라"며 욕을 해서 112에 신고를 해보지만 경찰은 오히려 저에게 돌아다니라며 저 사람들 건들지 말라며 오히려 그 사람들을 대변하기 일쑤고 저희에겐 어떠한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흰 무서워서 도망 다니게 됐고, 혹시 길모퉁이에 용역들이 서 있을 때면 한참 피해 있다 용역들이 없어진 후에 길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1주일 동안 가게에 행패부리는 사람이 와서 가게를 못나간 적도 있습니다.

사 람들은 무서워서 이사를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이사 간 공가엔 용역들이 상주를 하면서 협박을 하기 일쑤였고, 벽엔 말도 못하는 혐오스런 낙서를 휘갈겨 놓았습니다. 가게 앞에는 도저히 영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물들을 버리고, 죽은 짐승들을 가져다 놓고, 손님 들어올 시간에 돌아다니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갖은 욕설과 협박뿐이고… 정말 무법천지였습니다.

그 래서 저흰 저희 나름대로 규찰이라는 걸 돌면서 서로를 지켜주었습니다. 전부 저녁에 장사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면 마음 편히 장사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희 아버님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사셨고 또 어른이시다 보니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연세 드신 아버님이 매번 용역들에게 욕설과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게 할 수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맞아야지, 내가 책임져야지 하는 생각으로 본인이 위원장직을 맡게 됐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차라리 내가 당해야지 어떻게 내 아들이 맞는 걸 보냐며 서로 책임지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걸 보면서 정말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너무나 속상해서 너무도 무섭고 겁이 나서 이사를 가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 지만 그들이 제시한 평가금액 가지고는 근처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한 평생 사신 부모님들이 어디를 가시겠습니까? 시골 가서 농사지으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30년을 한동네에서 아들, 딸들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 학교도 이곳에서 보내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10년, 15년, 20년 한곳에서 장사를 하며 아들, 딸 키우며 욕심 없이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 밥을 맛있게 먹으면 그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것보단 자식들 입에 하나라도 더 물려주려고 노력하며 사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런 아버님 어머님 같은 분들을 위해 저의 남편은 발로 뛰어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가 불편한 건 없는지,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함께 고민하며 함께 아파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분들이 거리로 나가서 무엇을 하겠냐며 이분들이 살 곳은 여기라며 울부짖으며 아파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테러리스트도 농성자도 아닌 힘없는 철거민의 아들이었고 철거민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을 편하게 모시지는 못할지언정 이 같은 아픔을 함께 견디고 이겨내야만 했던 가난한 철거민이었습니다.

더 이상 쫓겨 다닐 수가 없어서 더 이상 맞을 수가 없어서 제 남편은 아버님과 손을 잡고 망루에 올랐습니다. 거대한 건설회사가 우리의 편에 한 번만 손을 내밀어주었더라면 제 남편과 아버님은 망루에 오르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없는 철거민들이 용역들에게 시달리고 매를 맞을 때 한 번만 손을 내밀어주었더라면 그들은 옥상망루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가난한 철거민들이 살고 싶어서 옥상망루에 올라갔습니다. 결코 그들이 죽으려고 옥상망루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 랑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자, 사랑하는 아내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더 이상 길거리로 내쫓겨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한마디 외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울부짖고 싶었습니다. 살고 싶다고, 살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런 호소를 하기도 전에 우리 앞엔 무자비한 경찰이 막아서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 한명과 철거민 다섯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희 남편은 망루에서 떨어지면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유독가스를 많이 마셔 폐협의증으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습니다. 남들은 죽을 줄 알았던 제 남편은 기적적으로 살았지만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은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저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다는 말밖에는….

이틀 후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뉴스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은 울부짖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말도 안 돼. 죽긴 왜 죽어, 왜 죽냐고. 떨어지기만 했어도 다 살았는데. 아니야. 다시 한 번 찾아봐라, 다시 한 번 찾아보라"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단 죄책감에 다리 인대가 파열된 것도 모른 채 일주일을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프면서도 아프단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혼자만 살았다는 죄책감에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체포 당일, 정형외과의사선생님이 무릎이 이상하다며 MRI를 찍어보자고 하여 영상학부 가서 사진을 찍고 나온 후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결과도 보지 못한 채 경찰서로 끌려가 결국 구속되었습니다.

형사들에게 아버지 영전에 문상 한 번만 드리고 가게 해달라며 애원했지만 검사가 끌고 오라고 했다며 제 손을 뿌리치며 데리고 갔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저의 남편은 목발을 딛고 있으며, 폐협의증 약도 계속 먹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지키지 못해 몇날 며칠을 통곡하는 남편을 보는 거였습니다.

제 소원은 아버님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만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영정 앞에서 소리 한 번 지르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디 가셨냐고 목 놓아 눈물이라도 한번 흘리게 해주고 싶습니다.

마 지막까지 자기 옆을 지켜주던 아버지를 그렇게 쉽게 보내줬다고 생각하면 제 남편의 마음에 얼마나 한이 되겠습니까? 제 남편에게 아무 죄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를 죽이려 불을 지피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용역들도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제 남편에게도 그런 관용을 베풀어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아버지 영정 한번 뵙고 어머니 품에 안겨 아버지 잃은 슬픔을 달랠 기회를 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요.

시어머니를 뵈면 가슴이 아려 옵니다. 넉 달, 120일 동안 시어머니를 지탱해준 건 제 남편입니다. 그래도 아들은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하루하루 상복을 입고 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머니는 내일이면 우리 아들이 나오겠지 하는 바람으로 매일 기도를 합니다.

제 남편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피하거나 변명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상주인 남편이 아버님 가시는 길만이라도 지키게 해주고 싶은 게 저의 마음입니다. 막내아들을 너무도 사랑하셨던 아버님, 결국 사랑하는 아들만 살리시고는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으로 오셨지만 마지막 가는 길 또한 막내아들과 함께 보내드리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가슴속에 큰 한을 품어 주고 싶지 않은 게 제 작은 바람입니다.

다음 주면 결혼일주년이 됩니다. 신혼의 단꿈을 꾸어보기도 전에 재개발이란 거대한 괴물과 싸우기에 바빴습니다. 생일 한 번 챙겨주지 못한 걸 미안해했습니다. 어버이날 장인 장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했다고 저에게 미안하다는 그런 작고 여린 제 남편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제 남편을 풀어주세요. 어머니와 저에게 남편을 돌려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9년 5월 20일

이충연의 처 정영신 올림.

2. 떴다! 용산시스터즈 - 5.18, 오체투지순례단 특집방송(5/18)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는 분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진행] 희망마차, 용산떡

[방송내용]

* 여는 음악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
-'5월가'의 원곡입니다. 프랑스의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던 한 할머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만들어진 곡입니다.

* 여는 말 : 5.18 그리고 용산...

* [노래] 오월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진실만을 파헤치는 "불도져뉴스"
: 사람, 생명, 평화의 길 오체투지순례단이 용산에 왔습니다.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108배를 드렸습니다.
- 순례단에 참가하는 많은 분들의 용산 순례 소감
- 오체투지순례단의 108배를 옆에서 지켜보며 눈물짓던 한 시민분 인터뷰
- 순례단과 오체투지를 함께 한 용산4가 철거민분의 인터뷰

* 하늘로 보내는 편지
- 30년이 넘게 용산4가에서 장사를 하며 손주 둘을 키워오신 장복례 어르신(84세)이 들려주시는 용산이야기, 故 이상림 열사와 20년이 넘게 누님 아우하며 지내셨던 반찬집 누님이 고인에게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 마음이 마음에게
- 지난 5월 15일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추락사한 대학생의 기사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용산에 오신 대학생 자녀를 둔 어머님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등록금 투쟁에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말씀을 힘주어 해주셨습니다.

*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 5.18 용산에서 "광주민중항쟁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가 열렸습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하신 분들이 함께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현장녹음곡입니다.

* 닫는말 : 용산4가 철거민 구술사 프로젝트에 함께 해요~~


용산참사 현장에서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약 1시간입니다. 들어보세요!
* 용산촛불방송국 레아 http://cafe.daum.net/Cmedia
* 행동하는 라디오 듣기 http://blog.jinbo.net/yongsanradio

언론보도

- [매일경제] '도시정비법 위헌' 신청 받아들여져(5/22)
- [YTN] 용산 재개발 철거 방해 혐의 1명 영장(5/22)
- [오마이뉴스] "기자회견도 못하겠고... 다 감옥 가야 하나"(5/21)
- [프레시안] 검찰, 스스로 중립성을 포기하는가?(5/21)
- [한겨레] 빗물보다 먼저 엎드리고 눈물보다 먼저 일어서(5/21)

알림

1. 범국민 추모대회(5/23)



2.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 판매중입니다

■ 주문 방법
- 개인 구입은 서점을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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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를 통해 조성된 기금은 전액 추도기금으로 쓰입니다.
* 입금 계좌 및 담당자/302-0005-1159-01(농협중앙회/김덕진)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02-795-1444/mbout.jinbo.net/mbout@jinbo.net

3. 모금운동에 동참해 주세요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유가족 지원에 사용됩니다. http://mbout.jinbo.net에서 휴대폰과 신용카드로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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