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6년 1월호 [마리아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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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12-19 ㅣ No.39

마돈나 백합_


마돈나 백합은 백합 중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고 반듯하게 세운 키 작은 흰 나리다. 나리는 모든 백합을 총칭하는 말이다. 百合이란, 줄기에 많은 인편이 겹쳐 붙어 있어 구근이 많이 모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흰 나리(lily)는 라틴어 흰색(li)과 꽃(lium)의 합성어다.

백합은 수십 종이 있고 그 꽃말과 전설도 다양한데, 󰡐나팔나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팔모양의 흰 백합을 가리키는 것으로 백합 중의 백합이며 󰡐순결󰡑이라는 꽃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다.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예수께서 겟세마니 동산을 내려오고 계셨는데, 슬픔에 잠긴 모든 꽃들이 다 머리를 무겁게 숙이고 있었지만유독 백합만 머리를 꼿꼿이 들고 󰡐나는 가장 아름답고 향기롭고 고결한 꽃󰡑이라 자만하여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만한 이 꽃을 측은히 여기시어 한참을 서 계시는데 화가 난 달이 마침 구름 속에서 나와 다른 꽃들을 건방진 백합에게 보여주었고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만 얼굴이 빨개진 백합은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한다. 그때부터 백합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용서를 비는 자태를 지니게 되었다고 전한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하와의 눈물이 떨어진 장소에 피어난 꽃이 나리라는 전설도 있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허리를 굽혀 꽃을 꺾을 때까지는 황색 꽃을 피웠다고 민간에서 전해진다. 백합의 색깔과 모양이 다양한 데서 연유한 얘기일 것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언을 전하러 올 때, 이미 동정녀의 고결함을 알고 손에 백합을 들고 왔다고 알려져 있다. 마리아가 이 꽃을 만지자 향기가 없던 꽃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요셉과 약혼한 열네 살에 불과한 마리아가 삼월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동구 밖 샘으로 물을 길러 갔을 때, 살랑거리는 소리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듣고 마리아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에 새기고 평소 하던 대로 수를 놓았다. 바로 이 장면이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계획을 마리아에게 전한 󰡐성모영보󰡑 장면이다.

흰 백합은 󰡐마리아처럼 순백의 순결함과 순수하고 은총으로 충만함󰡑을 상징한다. 베네딕토회 수도자이자 역사가이며 학자인 성 베다(AD 673~735)는 󰡐마돈나 백합󰡑을 동정 마리아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희디흰 꽃잎은 마리아의 육체적 순결성을 상징하고, 황금빛 꽃술은 성장하는 그녀의 영혼이 빚어내는 빛과 같은 형상이다.󰡓

대시인 쵸서(Chaucer) 역시 마리아를 󰡐모든 동정녀들의 꽃󰡑이라 하였다. 백합은 14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특히 그 도시의 문장으로 쓰는 피렌체에서 수태고지와 연관시켜 표현하였다. 14~15세기엔 가브리엘 대천사를 손에 백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엔 순결을 의미하는 백합 꽃병을 옆에 놓고 계신 성모를 묘사하였다. 이 장면에서 백합꽃병을 묘사한 것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셨음을 표현한 것이다. 베드로 지오바니(Pietro di Giovanni Ambrosi)의 수태고지엔 가브리엘 대천사가 백합을 세 송이 들고 있는데, 이는 성모께서 출산 전은 물론 출산 중이나 출산 후(ante, durante, postum)에도 동정이셨음을 표상한다. 15세기 마르틴 쇤가우어(Martin Schongauer)의 작품 독일 콜마의 󰡐수태고지󰡑는 마리아가 백합꽃병을 앞에 놓고 서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권표(權標)를 잡고 계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아가에 나오는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아가 2,2)이 󰡐마돈나 백합󰡑이라 여겨진다. 12세기의 성 벨라도 역시 백합을 마리아와 일치시켜, 아가에서 󰡒나는 사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나리꽃󰡓(아가 2,1)이라 노래한 이가 곧 마리아라 하였다.

1043년 스페인의 나바레에서는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있는 성모님 모습이 백합에 박혀 나타난 기적이 있었다 한다. 이 경이로운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나바레의 제6대 왕 그루시아스는 󰡐백합의 성모회󰡑(the Order of Our lady of the Lily)를 창설하였다.

백합은 그리스도가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이집트와 크레타 섬에서 자라고 있었고 중국은 물론 아시아와 터키 및 그리스에도 있었다. 로마인들에 의해 서유럽에 전해졌고 십자군들이 귀향할 때 가지고 가서 보급시켰다. 현재 이스라엘의 북부 지방이나 레바논엔 소위 󰡐이스라엘 나리󰡑가 자생한다. 나리꽃은 늦은 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피며, 5월 31일 엘리사벳 방문 축일을 전후하여 만개한다. 그래서 마리아가 가브리엘의 전갈을 받고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한다고 한다. 

수태고지를 상징하는 꽃으로서는 백합 이외에 󰡐수태고지 장미󰡑(rosa alba rubicunda)라는 것도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가브리엘의 인사를 듣고 마리아가 얼굴을 붉히자 원래 흰 꽃이었던 것이 분홍으로 꽃 색깔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마존 백합󰡑(Eucharis grandiflora)도 󰡐마돈나 백합󰡑이라고 한다.

_안중한 베다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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