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14년 3월 세나뚜스 지도신부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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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4-05-13 ㅣ No.209

 

초기 순교자들의 신앙


손희송 베네딕도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지난달에는 염 추기경님 서임식 관계로 로마에 다녀오는 바람에 사목국 차장님이 대신 참석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8월에 교황님이 방한하십니다. 벌써 위원회가 조직되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활동 중에 하나가 교황님의 45일 방한 동안 여러 강론과 연설을 하시는데 한국 상황에 맞는 초안 자료를 한국에서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쪽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와 취합해서 최종적으로 교황님의 연설문과 강론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교황님 방한 시에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만남이 있는데 그때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번에 순교 124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이 거행됩니다. 이분들은 초기의 순교자들인데 여기에는 외국인 신부님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신 주문모 신부님도 계십니다. 지난 1984년에 시성된 분들은 이번에 시복되시는 분들의 아들대의 순교자들이셨습니다. 즉 부모님대의 순교자들이 이번에 시복되는 것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가 되는 평신도들이 시복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평신도들은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행사만 치러서 되는 것은 아니고 시복되는 순교자들의 정신을 오늘의 신자들이 이어가고 살아갈 때 비로써 시복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시복을 통해서 단순히 103위 성인에 이어 124위 복자가 있다는 것이 마치 메달을 따듯이 세계에서 몇 번째로 성인과 복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 정신에 맞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성인이나 복자가 한 분이라 하더라도 그분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초기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드리면 초기 순교자들은, 첫 번째 학자층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사회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갈망과 열망을 가지고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천주학을 접하게 되었고 자발적으로 학문을 종교로 승화시켜서 신부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율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그분들처럼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열정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자수는 많지만 얼마나 많은 갈망과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반성해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저 취미생활의 하나로 또 남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괜찮은 종교를 하나쯤 갖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신앙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았는데, 그것은 그분들 안에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갈망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번 시복을 계기로 우리 각자 안에 초기 순교자들이 가졌던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우리 안에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순교자들은 조선시대의 신분과 계급사회의 전통을 넘어서 평등한 형제애를 실천했습니다. 이번에 복자가 되시는 황일관 시몬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백정은 천민계급의 하나로서 사람대접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서 경상도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 교우들이 이분을 애정으로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양반집에서도 다른 교우들과 똑같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나의 이런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점잖게 대해 주어서 천상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이런 확신으로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평신도들도 황일광 시몬을 형제로 받아들였던 순교자들처럼 우리 사회의 온갖 차별을 극복하는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들이 있는데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든다면 황일광 시몬 복자의 정신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부모가 다 순교했을 경우 아이들은 고아로 남습니다. 그러면 다른 신자들이 아이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들을 볼보는 것이 초기 교회의 전통이 됐고 교회가 자유를 얻은 다음에도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사업을 천주교에서 일찍부터 해 왔습니다.

 

세 번째로 한국의 초기 순교자들 중에는 대를 이어서 순교한 경우가 있습니다.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종, 이 분은 동생보다는 늦게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셨고 순교하셨으며, 그분 아들 정하상 성인은 사제 영입을 위해서 애쓰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이승훈 선생은 증손자까지 순교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오늘 한국의 평신도들도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귀중한 신앙을 물려주는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평신도들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성화가 이루어져서 가정이 신앙의 요람이 되고 자녀들이 그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채워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그렇게 했을 때 신앙이 대를 이어 갈 수 있고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요즈음에 와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신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보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녀들도 기도하게 되는데 부모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어디 가서 신앙을 배우겠습니까?

 

네 번째, 성직자와 평신도들 간의 관계가 돈독했다는 것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교계제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책을 보고 사제를 정하고 미사를 보고 성사를 거행했습니다. 이른바 가성직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북경에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보고 잘못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 성직자를 모셔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중국인 주문모 신부님이 들어오셨고, 그분이 순교하신 다음에는 30년 간 다음 신부님을 모시기 위해서 그 먼 중국을 몇 번씩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성직자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고 또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은 박해를 피해서 중국으로 가시다가 양들을 위해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자수를 하고 순교를 하시게 됩니다. 그 이후 신부님들께서도 그런 예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양들과 목자의 관계가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 현재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런 신뢰 관계가 깨지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인데 양쪽이 다 반성하고 고쳐야할 점이 있습니다만 성직자와 평신도와의 돈독한 관계는 우리 교회의 좋은 전통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어가고 살려 가는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초기 순교자들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몇 가지를 짚어봤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요구하거나 강요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갈 때 그런 것이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고 묵묵히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조금씩 옆으로 퍼져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부터 교황님 방한을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고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베드로 성전에서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많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셨는데, 교황님이 먼저 고해소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고해를 보셨다고 합니다. 굉장히 놀랐습니다. 물론 교황님도 고해성사를 보시지만 그런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기꺼이 고해성사를 보는 모습을 볼 때, 특별히 성직자들만 아니라 평신도 중에서도 지도자급의 신자들이 성사보는 모습이 보일 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교황님 방한을 계기로 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하고 그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어려운 신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먼저 우리가 모범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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