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4/7]이분이 그리스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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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년 [Lilly] 쪽지 캡슐

2000-04-07 ㅣ No.2191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요한 7, 1 - 2. 10. 25 - 30

 

 

 

 "유다 지방으로 다니고 싶지 않아서 갈릴리아 지방을 찾아다니셨다"

 

   그 뒤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므로 유다 지방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아서 갈릴래아 지방을 찾아 다니셨다. 그런데 유다인들의 명절이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형제들이 명절을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께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올라가셨다.

 

  한편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서 더러는 "유다인들이 죽이려고 찾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저렇게 대중 앞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을 보면 혹시 우리 지도자들이 그를 정말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모를 것인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하고 말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으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잡고 싶었으나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After this Jesus stayed in Galilee: he could not stay in Judaea, because the Jews were out to kill him. As the Jewish feast of Tabernacles drew near.

 

  However, after his brothers had left for the festival, he went up as well, but quite privately, without drawing attention to himself.

 

  Meanwhile some of the people of Jerusalem were saying ’Isn’t this the man they want to kill? And here he is, speaking freely, and they have nothing to say to him! Can it be true the authorities have made up their minds that he is the Christ? Yet we all know where he comes from, but when the Christ appears no one will know where he comes from.

 

  Then, as Jesus taught in the Temple, he cried out:

 

       ’Yes, you know me and you know where I came from.

 

        Yet I have not come of myself:

 

        no, there is one who sent me and I really come from him,

 

        and you do not know him,

 

        but I know him

 

        because I have come from him

 

        and it was he who sent me.’

 

  They would have arrested him then, but because his time had not yet come no one laid a hand on him.

 

 

 

◈ 예루살렘 입성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예수님 모습에서 외로운 나그네의 냄새가 물씬 난다. 나그네는 장수·재물·건강·덕·깨끗한 죽음이라는 오복 중에서 그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한다. 나그네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해 비명횡사하기 쉽고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다.

 

  이승을 사는 것은 본고향을 떠나 잠시 와서 머무르는 일이고, 장차 돌아갈 과정일 따름이라 하여 인생 자체를 나그네로 상징하기도 한다. 유다인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찾고 있고 형제들마저도 예수님을 비정상으로 여기고 제자들조차 어디론가 피해버렸을 때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어찌 고독과 서러움을 느끼지 않으셨겠는가? 복음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때 예수님은 초라한 자신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다시 힘을 내셨지만 나그네로서의 고독은 달빛 없는 밤만큼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몽매한 우리도 나그네이긴 마찬가지지만 예수께서 먼저 나그네되시어 인생의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시니 "이제 우리는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다."(에페 2,18-19참조)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고독은 이미 나의 주님께서 겪으신 것이다. 내가 고독할 때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신다.  

 

 

 

오늘밤 그 ’누구’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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