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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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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24 ㅣ No.56

[교황 사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해설

깨어있는 영적 식별력에 따른 용기 있는 결단





- 사임을 발표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모습.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하나는 교황의 사임 동기, 또 하나는 이 초유의 사건이 교황 직무와 보편교회에 미칠 영향이다.

교회법적으로 사임이 가능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 외에 교황의 종신 직무는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확고한 교회 전통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교황의 사임 소식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세계교회의 반응은 우선 놀라움에 이어 깊은 고뇌 끝의 ‘깨어있는 영적 식별력과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경탄으로 요약된다. 특히 항상 새로운 교황의 면모를 보여주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달리 보수적이라고 경직된 평가를 받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여준 결단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 고령과 건강

교황은 사임 발표문에서, 사임의 직접적인 동기는 고령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함과 이로 인해 적절한 업무 수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러한 고민과 그에 따른 사임에 대한 고려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교황의 발언에서 감지돼 왔다.

2010년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낄 경우 사임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의무”라고까지 말했다.

교황의 형인 라칭거 몬시뇰은 영국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매우 놀라웠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며 교황이 “수개월 동안 사임을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캔터베리 총대주교 및 세계 성공회 수장의 직위에서 물러난 로원 윌리엄스 주교는 교황이 이미 지난해 3월에 가진 대화에서, 은퇴하고 기도와 연구에 헌신할 가능성을 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자신의 쇠약함을 깨닫고 있었고, 바로 이번 사임 결정이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었다”며 “이미 그는 오래 전부터 ‘올바른 양심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선출 당시 78세의 고령에, 심장박동조절기를 달고 있었다. 2010년 10월 이후 전례 행렬 때 이동식 장비를 사용해왔고 수개월 뒤에는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선종 때까지 교황직을 유지하는 교회 전통과, ‘급변’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는데 필요한 ‘몸과 마음의 힘’이 부족한 현실 사이에서 사임에 대한 고뇌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사임을 발표하기 사흘 전인 2월 8일 로마교구 신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킨슨씨병으로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황직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사임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십자가를 감수하기로 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했다.


■ 두 가지 형태의 십자가

“우리 역시 매우 다른 형태를 띠는 그리스도교적 순교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아주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따르지 않고서는, 순교의 순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최후의 순간까지 교황직을 수행해야 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변화된 세계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종신직의 전통에 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며 사임의 결단을 내린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 즉 교황 사임이 이제 교황직과 차기 교황, 보편교회 사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미국 에드윈 F.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교황의 사임 결정이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전에는 별로 뚜렷하지 않았던 선택의 여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톤 대교구장 션 오말리 추기경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교황의 이번 결정은 분명히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사임이 하나의 선례로 작용할 것임을 예측했다.


■ 교황 사임의 선례

물론 교황 사임 결정은 개인적인 결단이다. 교황은 이번 결정을 위해 소수의 주위 인사들과 논의했을 것이지만, 광범위한 자문을 거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의 실존 차원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거듭거듭 성찰”하고 내린 결정이다. 따라서 교황 종신의 전통을 제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한계와 시대적 요구,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개인적 선택이다.

하지만 교황은 발표문에서 “이 행위(사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있으며, 교황 직무가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기도와 고통으로” 수행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이 시대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스튜벤빌 프란치스코대학교 신학부 앨런 쉬렉 교수는 “교황은 우리 시대의 사목적 주제들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예수회 소속으로 「이냐시오 프레스」의 편집자인 조셉 페시오 신부는 “교회는 더욱 활발한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며 “교황은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대의 요청에 따른 최선의 선택

바티칸 전문 언론인 로코 팔모는 교황의 사임에 대한 고려가 이미 2008년부터 드러난다며 당시 교황은 종신직의 전통 안에 있던 예수회 총장 피터 한스 콜벤바흐의 사임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로코는 “이전의 어떤 총장도 사임한 적이 없었다”며 최초로 총장이 사임했던 사례처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이 후대의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미국 디트로이트 전 대교구장 애덤 마이다 대주교는 교황을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하고,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에 정말 슬픔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본다”며 “자신과 하느님 백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3년 2월 24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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