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응암동성당의 지나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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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sapiencia] 쪽지 캡슐

2005-08-29 ㅣ No.3005

위치: 응암3동 338-2

 

천주교 응암동 교회(주임신부님 최원일)의 역사는 1968년 8월 15일 수색본당에서 분리되어 응암동 247-21호 천막성당에서 첫 미사를 올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천막성당 부지는 충암학원 후문 근처의 대지 185평(호박밭)이었는데, 그 땅의 소유자인 성 빅토리아가 교인들의 간청을 즉석에서 흔쾌히 수락함으로써 교회가 들어설 수 있었다.

 

 

첫 미사 일은 성모승천대축일 이었다.

당시의 용산성당 주임신부던 김윤상(베네딕토)신부가 미사집전을 맡았다. 이때에 응암동성당 신자 300명이 참석하였다.

 

그후 열심한 교우들이 교구청을 찾아가 김윤상 신부를 응암동에 모시고 본당설정을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1968년 9월 3일 김윤상신부를 신설 응암동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내었다.

 

초창기 225세대 783명이던 신자수가 1968년 말경에는 1,430명에 이르렀다. 1969년 4월 제2대 주임신부로 부임해 온 유재국(兪在國: 바실리오)신부님은 부임하자 성당건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성당을 옮기기로 하고 부지를 물색하여 현재 성전터인 응암동 338-2로 옮기기로 하였다.

 

그 뒤 300평 부지를 매입하여 이문동본당에서 콘셋트를 (30평)을 물려받아와서 4월 30일 천막성당을 콘셋트로 옮겼다.

 

1970년 제 3대 주임신부로 고명철(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해오자 성당신축을 서둘러 4월 26일 착공식을 거행하였다.

 

1천만원 예산으로 총회장(임한천) 감독하에 김종귀부회장과 이철호등 교우들이 일부 자제를 댐으로써 큰 도움이 되었다.

 

1800명 신자들은 8월 16일 상량식을 갖고, 2층 슬라브 골조공사를 마치고 미완성성당에서 그해 성탄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1972년 10월 22일공사성전을 준공하여 1988년 2월에 헐리기까지 16년간을 유지하게 되었다.

 

1988년에는 이미 신자수가 8500명이나 되었다.

 

새성전건립계획에 따라 응암3동 동사무소 금방 하천부지에 임시 비닐성전으로 옮겨 3월 13일부터 6월 17일까지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고, 그 뒤부터는 서부예식장 뒤편 공터를 얻어 6월 18일(토) 특전미사부터 9월 28일 새 성전 지하층으로 옮길 때까지 3개월여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마침내 19991년 10월 27일 김수환추기경의 주례로 새성전축성식을 갖고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응암동, 녹번동, 응암1동, 북가좌동 일부, 응암 2동에서 4동까지를 관할구역으로 삼고 있으며, 총 신자수는 5,2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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