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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쁨] 고난과 상상도 못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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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ujesus] 쪽지 캡슐

2005-03-27 ㅣ No.444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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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값]

파스퇴는 프랑스의 세균학자로써 세균연구와 예방접종 등에서 신기원을
이룬 대학자이며, 살균이라는 말을 그의 이름에서 땄을 정도로 세상이 알아주
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몸의 반쪽을 쓰지 못하는 반신불수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명랑하게 살았고 "장애가 내 연구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
다."고 말했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를 집필한 프랜시스 파크만(France Parkman)은 신경성질병
에다 앞이 거의 안보일 만큼 안질이 심하여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5분
이상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5분 일하고 쉬어야 할 때
더 깊은 생각이 나왔다."고 말했다.

아마 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홀리오 이이시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본래 스페인의 축구선수였다. 그런데 경기 중 부상을 입어
1년 반 동안 몸 절반이 마비되어 병원에 있어야만 했다. 물론 병이 나아도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 누워 절망하고 있는 이글레시아스
에게 어느 날 간호사가 기타를 갖다 주면서 "짜증만 부리지 말고 기타라도
배워 보세요."라고 권했다. 마지못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이글레시아스는
점점 재미를 붙였고, 그후 그는 유럽을 흔드는 유명한 팝싱어가 되었다. 그는
"축구 하다 다쳐 절망하고 있었던 1년 6개월은 실은 축복의 터널이었다. "고
말했다.

세상에는 돈이나, 시간이나,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겸손이나 진실이나 영생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리더십이나 인내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고통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
들이다. 하느님은 귀중하게 쓰고자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서 이런 덕목들
을 갖추게 하신다.

거위나 펭귄처럼 날지 못하는 새들이 가장 많은 곳이 뉴질랜드라고 한다.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여 멀리까지 날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날개를
안쓰다 보니 퇴화되어 못날게 된 것이다. 사람도 안락하게만 살면 있는 능력
도 사장되어 아무 값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사람의 능력은 위기나 고난의 때
에 용량이 커진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고통받는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은
전진해 간다." 고 했고 토스엡프스키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영혼에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고통을 겁내고 있다. 겁내고 있는 이유들은 마음만
굳게 하면 실은 별 것이 아니다. 불편할까. 욕을 먹을까, 자존심이 상할까,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 고작 고통을 겁내는 이유들이다.

심몰(Sim Mole)이라는 심리학자는 이런 염려는 대부분이 "자아가 꺾여지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치 있는 생애는 "자아가 부러
질 때부터 시작된다." 고도 말한다.

값있고 아름다운 것들은 다 고통을 수반한다.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열병
을 앓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목말라한다.

믿음도 고통을 수반한다. 회의와 싸워야되고 핍박을 당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소망도 고통을 수반한다. 오랜 기다림이 있고, 비웃음이 있고 마지막까
지 한 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섬김도 고통을 수반한다. 이름이 없어야 되고 낮아져야 되고 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출발도 고통을 수반한다. 길들여진 길을 떠나야하고, 욕망을
끊어야 하며 모험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1㎏의 쇠를 그대로 두면 1달러의 값이 나가지만 불 속에 넣었다가
두들겨서 칼을 만들면 10달러의 값이 나가며, 더 뜨거운 불 속에서 연단을
받아 에이 체인(인공위성에 쓰는 사슬)을 만들면 10,000달러의 값이 나간다.

(작가미상)


[상상도 못한 일]

◆ 요한 20,1-9
"무덤에 가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요한 20,1)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이 다시 살아나시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제 더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
습니다.
부활은 돌아가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변화가 그대로 제자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빈 무덤으로 달려갈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덤에 들어가서 보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이 마침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이 깨달음은 우리의 희망인 동시에 우리의 변화를 위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며 우리도 머리에 재를 얹고 40여 일을 달여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음 말씀은 조금 허탈합니다.
부활의 증거가 고작 빈 무덤과 흩어진 수의라니요.
그리스도교 최고의 진리이자 신앙의 신비를 선포하는
부활 대축일 미사의 복음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감각적 증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변화를
통해서만 알아듣고 체험할 수 있는 신비임을 빈 무덤 이야기가 웅변적으로
말해줍니다.
머리에 재를 얹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정성 들여온 지난 사순절은
부활하신 그분을 내 안에서 알아뵙고 느끼기 위한 [마음의 밭갈이]였습니다.
부활의 신비를 지금 다 알아들을 수 없다하여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듯이 당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며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선물이 되어주신 주님,
당신의 부활로 저의 눈과 마음이 열려 더욱 새로워진 영으로
영광의 주님을 찬미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유경촌신부님 글에서)

< 영적 서적은 http://예수.krhttp://www.catholi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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