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보수신문인 한국일보에서도.."무엄하고도 미련스런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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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웅 [fullofjoy] 쪽지 캡슐

2008-08-24 ㅣ No.7961

[고종석 칼럼/8월 21일] 허물어지는 '영광의 20년'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경찰이 촛불시위를 거칠게 진압하고 KBS 건물에 난입하면서 공격성을 뾰족이 드러낸 뒤, 야당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명박 정권을 전두환의 제5공화국에 비유하는 일이 잦아졌다. 정치공세에는 과장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것은 위험한 언행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상대적으로) 덜한 악'을 비판하기 위해 과거의 '절대악'을 두둔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박한 비유는 5공을 겪지 못한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크게 왜곡한다.

5공 때라면 촛불집회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고, 경찰이 굳이 KBS 건물 안으로 쳐들어갈 필요도 없었을 테다. 그 시절,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고문은 일상적이었고, 파업이나 시위는 제 삶의 큰 부분을 거는 모험이었다. 꼭 5월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은 제 몸을 불사르거나 내던짐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생명과 맞바꿨다.

이명박 정부가 5공은 아니지만

집권 방식도 다르다. 수백 구의 시신을 짓밟으며 총으로 집권한 전두환과 달리, 이명박은 표로 집권했다.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아둔했든 약삭빨랐든, 이 정권은 전두환 정권과 달리 정통성을 지닌 정권이다. 이 정권을 두고 '5공으로의 회귀'니 하는 말을 입에 담는 이들은 5공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 시절 이후 이 정권의 행보가 지난 스무 해 동안의 개혁에 대한 반동개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두 노씨와 두 김씨가 이끌어온 6공 스무 해 동안, 대한민국은 시민적 자유의 빠른 신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더해, 만만찮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97년 말의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양극화가 크게 심화하기는 했으나, 그 IMF 구제금융 시절을 제외하곤 경제위기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앞선 네 정권의 권력엘리트들이 능력이 있어서 그랬든 국내외 환경이 좋아서 그랬든, 대한민국은 대체로 '영광의 20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영광의 빛이 경제적 약자들에게, 사회에 새로 진입하는 젊은 세대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정권은 그 '영광의 20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뤄낸 성과들을 허물어뜨리는 한편, 그 영광의 빛을 쬐지 못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더욱 큰 절망의 구덩이로 내몰고 있다. 교육을 포함한 사회 모든 분야를 적자생존의 무한경쟁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이 정권은 계급 재생산 기제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정연주를 KBS 사장 자리에서 끌어내면서, 또 MBC PD수첩을 길들이려 하면서 이 정권이 보여준 난폭함과 조잡함은 시민적 자유의 핵심인 언론의 자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에까지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친미 일변도의 서툰 외교는 당사국인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조롱과 경멸과 적의에 대한민국을 노출시켰다.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은 남북관계를 김일성 사망 직후로 경색시켰다. 해외 요인이 깊이 개입했다고는 하나, 이 정권은 경제의 양적 성장조차 앞선 정부들이 이룬 만큼 해내지 못할 듯싶다.

무엄하고도 미련스러운 정권

부패문제도 그렇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CPI)나 수뢰자지수(收賂者指數:BPI) 순위에서 한국이 비슷한 경제규모의 딴 나라들보다 훨씬 뒷자리에 있는 것이 이 정권 탓은 아니지만, 새 정권 초기부터 사방에서 터지고 있는 부패스캔들은 이 정권이 좋아하는 '국가경쟁력'에 틀림없이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관찰에 따르면, 국가경쟁력과 부패는 대체로 역의 관계에 있다.

나처럼 견결한 반공주의자가 레닌의 수사법을 훔쳐오는 게 스스럽긴 하지만, 이 정권의 핵심부와 그 둘레는 경제적 강자들과 '수천 가닥의 실로 묶이고 엮여' 있는 것 같다. 이 정권은 분명히 5공 정권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권은 노태우 정권까지 포함한 6공의 다섯 정권 가운데 가장 무엄하고 미련한 정권이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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