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12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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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12-01 ㅣ No.37

[특집]낮은 데로 오신 예수님


<노숙자들에게 오시는 예수님>

차가운 날이었다.

역 앞 벤치에서 허름한 옷에 배낭 하나를 메고 얼굴은 상처투성이로 울고 있는 청년 노숙자 한 분을 만났다.

ꡒ수녀님, 한잔했습니다. IMF 사태로 회사에서 쫓겨나와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어요. 돈도 다 없어지고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녔지만 소용없고, 이젠 거지가 되었어요. 지금은 이 역사에서 노숙을 하고 있어요. 몸이 너무 많이 아파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가슴 아파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지고, 갈 수가 없어요. 어머니께서 저 때문에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수녀님, 너무 괴로워요.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요. 이 역사는 사람 살 곳이 못돼요. 이곳은 인간이 사는 장소가 아니에요. 금수와 같은 우리 노숙자의 삶은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총 속에 짐승이나 다를 바 없어요. 사람이고 싶어요. 사랑도 받고 싶고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저를 이끌어주세요.

저 베드로예요. 어릴 땐 어머니 손 잡고 성당에 다녔어요. 미사 때 복사도 많이 했어요. 성모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 적도 있어요. 오늘도 이 자식 생각에 잠 못 이룰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불효자식이에요.

오늘은 유난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에요. 제 생일이에요. 노숙자인 저에게도 태어난 날이 있었어요. 저도 사랑받고 자랐어요. 저에게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기도가 있어요. 제가 태어난 곳은 섬인데요 그곳엔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구요, 이렇게 사는 제가 미워요. 저도 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저를 이끌어주셔요.ꡓ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이 절절매는 베드로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얼굴은 두들겨 맞아 상처투성이요 몸은 망가질 대로 다 망가진 베드로 청년. 그에게도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노숙자, 그들은 우리 형제요 자매며 우리 아들딸이고 부모이기에, 우리가 버린 그들이기에 보듬어주는 그 님이 오시기를 고대한다. 그들 또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몰골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그들. 역사 앞에 누워 자는 노숙자들에게 치유로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베드로 청년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또 사랑공동체에서 배식봉사를 하고 있는 베네딕토는 노숙생활에서 다시 일어선 청년이다. 일자리를 잃고 많은 날들을 방황하면서 노숙생활을 하던 중 사랑공동체 노숙자 배식 형제자매님들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되어 다시 서게 되었다고 한다.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세례도 받았으며 올 가을엔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힘차게 생활하는 베네딕토 청년은 가을철엔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다시 올라와 사랑공동체 노숙자 배식봉사를 하겠다며 즐거워한다. 그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ꡒ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ꡓ(마태 25,40)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도 서울역사에, 대학로에, 지하 빈 공간에, 길 잃은 수많은 노숙자들 아픈 영혼들이 치유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더운 여름날 역사에서 배식을 하고 있는 우리 봉사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주고 가는 노숙자, 그는 베드로 형제다. 오늘도 어머니 생각에 다시 서려고 노력한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일을 다시 시작하여 어머니를 안심시키겠다고 한다.

_김옥순․엘리사벳 수녀


<갇힌 이들 눈에 보이는 주님>

어느 따스한 봄날, 부활절 미사에서 성동구치소에 있는 재소자들과 처음 만났다. 입구에서부터 주눅들어, 영화에서나 보던 무겁고 커다란 철문을 통과해 지하로 내려가는 내내 긴장을 했다.

그들은 푸른색 옷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약간은 침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초이긴 해도 지하라서 썰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푸른색 옷 때문인지 얼굴들이 파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험상궂고 무섭게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약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들이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였다. 이 첫 만남 이후 나는 그들과 매달 한두 번씩 미사를 통해 만나게 되었고, 낯설게만 보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웃처럼 친근해지고 때론 가족처럼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위로와 위안을 받으며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만큼은 모두 행복해한다. 모두들 미사가 끝날 즈음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주님께서 우리와 그들의 만남을 통해 당신 사랑을 알려 주시고 느끼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80명이 천주교 집회에 참석을 하지만 천주교 신자는 5~8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미사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비신자다. 하지만 기도도 열심히 따라서 하고 성가도 큰 소리로 부르면서 마음의 분노와 미움을 씻어내는 것 같다. 미사의 은총이 그들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는 것이리라. 어떤 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고백처럼 들려줄 때가 있는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형제가 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범죄를 저질렀고 복역 중에 부인은 어린 딸을 형님댁에 데려다 놓고 집을 나갔다. 출소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딸이 불치병을 앓게 되자 병원비 마련을 위해 다시 죄를 지었단다. 수감중에 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던 그 형제님과 우리도 함께 울며 아파했다. 또 한 분은 경제사범이었고 천주교 신자였다. 부도를 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재기를 바라고 기다려 주기로 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고발로 구속이 되었단다. 같은 신자이고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에 잠을 못 이루던 그가 사순시기에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을 묵상하면서 미움이 조금씩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가끔은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그곳에 있다 출소한 형제님이 이끄는 ꡐ빛의 사람들ꡑ과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며 어설픈 춤도 추면서 멋들어지게 잔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통해 많은 은총을 받고 그들이 변화됨을 느낀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사순시기에는 회개와 용서의 시간을 갖고, 기쁜 부활을 서로 축하하고, 성모님께 촛불을 봉헌하면서 나와 가족을 위해,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닫힌 마음들을 열어 나간다. 사실 그들은 사회가 정한 법을 어겨 이곳에 와 있지만 억울한 사람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도 많다.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사회에서 죄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피해의식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굳어 있다. 우리는 그들의 굳은 마음을 풀어주고 억울함을 달래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감싸 안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을 싫어하고 피해를 입을까 겁을 내 멀리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주님만은 그들을 멀리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신다. 그들의 눈에서 그들의 눈물에서 주님을 본다.

다가오는 성탄절에도 모두가 큰 소리로 캐럴을 부르며 주님을 찬미할 것이다. 노래 한 곡 멋지게 뽑고, 작은 선물을 받고 어린이처럼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ꡒ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ꡓ(이사 42,7)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만날 것이다.

_양영숙․마리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레지나께>

시간이라는 그 덧없는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요즈음,

어머니, 안녕하세요?

ꡐ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ꡑ는 군가처럼 아들을 믿고 오늘도 다리를 쭈욱 뻗고 주무시는지 모르겠네요. 아들은 어느새 익숙해진 병장 계급장을 달고 한층 더 넓어지고 무거워진 어깨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어머니, 기억하세요? 제가 집에 전화해서 힘들다며, 어머니도 군대 와보시면 안다고 철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때를. 사실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규칙적인 생활도 힘들었고, 한겨울에 차가운 물로 씻고 영하의 날씨 속에서 난방이 안 되는 근무지에서 근무를 서고 있노라면 서글퍼서 현실을 원망하는 말을 무던히도 많이 하곤 했지요. 힘든 시절 다 보낸 병장이라지만 아직도 이래저래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지금, 따뜻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신병교육대부터 사회에서처럼 성당을 거의 빠짐없이 나가고 있어요. 일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주일 오전을 다 할애하며 성당에 꾸준히 나가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군대에서 성당에 다니면서 많은 것을 얻었답니다. 사회에서 성당에 나갈 때는 주일학교 교사에 청년회 활동에 이것저것 봉사를 하다 보니까 정작 미사 때 분심을 이겨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군에 와서는 오직 주님과 저만 성당 안에 있는 것처럼 내 신앙을 비춰보고 기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된 거죠. 주님이 제게 신앙적으로 성숙할 단계를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부족했던 기도 시간을 늘리게 되면서 조금 더 주님과 가까이 함께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주위의 성당에 나가기 힘들어하는 전우에게 같이 나가자며 손을 내밀게도 되고, 제가 천주교인이고 신앙인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신앙생활이 군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리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어요.

부족했던 신심을 채워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정도로 군생활에 안정을 찾자 저에게 새로운 감정이 생겼어요. 사명감이랄까? 그래서 봉사를 다짐했었는데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요. 바로 레지오 마리애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부대 성당에서 레지오를 할 수 있도록 틀을 잡아주고 양평성당에서 자매님이 오셔서 함께해주시는 일이 생겼어요. 거의 운명처럼 레지오를 하게 되었고, 단장직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이제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봉사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제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신앙이 일보 더 전진하고 주님을 더 느끼게 되며 낮은 곳에서 항상 함께하시는 사랑을 느끼게 된 기회였습니다.


레지오의 시작은 많이 힘들었어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부대의 한 장소에 모여 회합을 하고 있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하겠다고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그럴 때마다 기도와 권면을 통해서만 다가설 수 밖에 없으니 어려웠어요. 그러나 기도와 권면을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단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것 같아요.

시나브로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안정을 찾고 모두 레지오에 열심한 자세로 다가설 수 있게 되면서 회합이 단결되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전혀 나눌 수 없을 것 같던 다른 중대 사람들과도 이야기 나누며 우린 좋은 길로 나아가게 되었지요. 이제는 한 주를 그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도 많아요. 그들이 바로 성당에 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고, 모두들 기도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어요. 한 주에 묵주기도를 몇십 단씩 하는 사람도 여럿 된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이보다 훨씬 놀라운 일도 있답니다

얼마 전에 월간지를 읽었는데, 군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대요. 그런데 그들 중에 90% 이상이 냉담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전역을 하고 나서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사회생활에 바쁘다 보니 신앙과 멀어지게 된대요. 아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레지오를 중간에 그만둔 이들이 생각나서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을 보며 생각했죠.

ꡒ지금 레지오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전부터 성당을 다닌 사람들일 테고 관둔 이들은 군대에서 처음 천주교를 접한 이들이 대부분일거야.ꡓ라고요.

그러나 이내 엄청난 사실 앞에서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어요. 레지오 단원의 절반 이상이 군대에 와서 천주교를 믿게 되었고, 그들이 기도도 가장 열심히 하고, 교본공부도 기막힐 정도로 잘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들은 지금 낯설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어머니, 제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경험으로 쌓여 아들을 밝게 비추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주님과 손을 맞잡으며 알게 되었어요. 이제 주님이 주신 계명을 거울 삼아서 사랑하며 살아갈게요. 아들 기대해주세요. 여기서나 나가서나 더욱더 주님 보시기 참 좋은 삶을 살아가도록 소명의식을 갖고 살게요. 마지막으로 아들이 근래 들어 즐겨부르는 성가의 한 구절 적으며 그만 펜을 놓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ꡒ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주소서.ꡓ

_김상균․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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