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소공동체 운동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인쇄

위세택 [stwee] 쪽지 캡슐

2001-11-30 ㅣ No.1736

이쳔년대 복음화를 외치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소공동체 운동이 추진한 사람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리 성공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소공동체운동은 그 전 까지도 있던 구역반 모임을 활성화하려한 것이었고 그 수단으로 복음묵상 나누기 7단계를 도입하였다. 소공동체의 궁극적목표는 구역반 중심의 공동체가 본당의 중심이 되어 모든 행사와 전례를 주도적으로 끌어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자들의 참여도를 높이고 그런 소공체들의 집합체로서의 본당을 활성화 하겠다는 의도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그 기본적 사회 환경이 받쳐 주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원래 소공동체운동은 남아프리카의 룸꼬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었다. 모든 문화는 그런 문화가 태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먼저 존재한다.남아프리카에서 룸꼬 운동이 태어난 배경에는 그 지역의 독특한 환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룸꼬운동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또 그런 방식의 운동이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룸꼬운동이 발생했던 지역은 가난하고 문맹율도 높은 아프리카의 농촌마을이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못살았던 시절의 가난했던 농촌 마을을 생각하면 되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는 관혼상제의 모든 큰 일들이 마을 전체의 공동 작업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다 같이 비슷하게 가난한 가구들끼리는 별로 숨길 것도 없고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문맹율이 높으니 성서도 글을 아는 사람들이 읽어 주어야 하고 성서의 이해를 위해서 공동으로 복음묵상 나누기의 방법이 나온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성서귀절에 대한 체험들을 합치다보면 성서귀절에 대한 이해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교육수준이 높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복음 묵상나누기 7단계 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것이다.

 

소공동체운동과 그 전 까지의 구역반 모임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는 복음묵상나누기 7단계가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는 복음묵상나누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소공체운동을 계획한 사람들의 생각인듯하다. 복음묵상나누기를 통하여 반원들의 친밀감을 높이고 그 것을 바탕으로 구역반 공동체가 활성화 되리라고 기대하였었던 것 같은데 그 것은 가난한 아프리카의 시골마을과 복잡한 대도시 서울의 한 구역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복음묵상 나누기를 통하여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기에는 서울의 작은 구역반의 구성원들은 너무 폭이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가난하고 직업도 농부로서 비슷하고 오랫 동안 알아온 시골 마을에서야 서로 털어놓고 얘기해도 부담이 없겠지만 다양한 직업과 빈부차가 심한 사람들 끼리 서로 속마음을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설사 분위기에 취해서 자신의 어려웠던 점을 털어놓았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 쉽고 그런 이야기들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를 우습게 보면 어떻게하나 하는 걱정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복음묵상나누기를 싷어하고 반모임에서 묵상나누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더구나 비슷한 평수가 모인 아파트촌에서는 그래도 나은데 세검정 같이 빈부차가 심한 곳에서는 더욱 묵상나누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묵상나누기를 하기 싫어서 반모임에 나오지 않는다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시골마을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살고 자식들도 대를 이어 살기에 내 마을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나 현대의 서울에서 자기가 사는 곳이 자기의 영원한 마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세검정 같은 곳이야 10년이 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파트 촌에서는 삼년만 넘게 살면 왕고참이 되는게 현실이다. 직업과 학교를 따라서 정처없이 떠도는 현대의 유랑민들에게 어떤 한지역에 바탕을 둔소공동체운동이 가슴에 와 닿을까?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어느 것 하나 고정된 것이 없다. 잘 나가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할 수도 있고 극심한 정보화 지식경쟁사회 속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부부가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하고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한가하게 공동체활동을 한단 말인가. 앞으로 신자유주의의 현실과 문제점에 관하여서는 따로 글을 올리겠다.

지금 소공동체운동은 고사하고 본당의 각 조직에서 일할 사람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잠깐 한눈 팔면 영원히 경쟁에서 탈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시간내어 본당 활동을 하려 들겠는가. 당연히 대부분의 본당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고령화되어 가는 추세이다. 특히 각본당의 연령회는 앞으로 한 십년이 지나면 아예 없어지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런 걸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라서 봉사활동하기를 기피한다고 하면 안될 말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경쟁에 탈락하고 마는 현 사회구조 속에서 한 개인더러 자신과 가족을 대를 이은 가난의 구렁으로 빠지게 할 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라고 누가 강요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안그래도 격심한 사회 경쟁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교회 나와서까지 무슨 행사들이라고 참여를 강요 받아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장차 교회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한다.

 

소공동체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자들이 스스로 즐거워서 찾아나오고 그래서 교회도 활성화되고 신자들도 늘어나는 그런 상황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신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다시 찾아오고 싶게 만들고 있는지 부터 다시 검토해 봐야하지 않겠는가.

 

결론 :

1) 소공동체운동은 벤치마킹 모델인 룸꼬운동을 잘못 이해한데서 오류를 범하였다. 가난한 아프리카 농촌마을의 적용 모델을 신자유주의가 판치고있는 세계적 대도시 서울에 적용한 것이 무리였다는 것이다. 강남의 귤도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2) 신자들이 본당에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을 못하였고 또 파악을 하려는 체계적인 노력도 없이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전개하였다. 종교도 써비스산업이다. 소비자의 욕구를 읽지 못하는 써비스산업의 미래는 뻔하다.

3)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무한 경쟁 정보화 사회가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을 강요하고 있고 개인들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후기: 제대로 되지도 않는 소공동체운동에 무리하게 집착하느라고 다른 일에는 소흘해지는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한번 의견을 적어봤다. 왜 종교가 써비스 산업일 수 밖에 없는지와 종교와 문화에 대하여 시간 나는대로 글을 올리겠다.

 

 



11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