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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성녀 모니카 영명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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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7-08-24 ㅣ No.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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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성녀 모니카는 이교도인이자 로마의 하급관리이던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성품은 권위적이고 또한 세속적인 명예를 좋아하고 다소 방탕한 기질이 있었다. 이 부부는 세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나비기우스(Navigius) 그리고 페르페투아(Perpetua)이다.

   성녀 모니카는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써 370년경 남편과 시어머니를 개종시켰지만 그 다음 해 과부가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아들인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과 개종을 위하여 노력했다. 그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최고의 도시인 카르타고(Carthago)에서 공부하던 중에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교 철학에 빠져 그릇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을 따라 로마(Roma)까지 쫓아갔으며(383년) 또 386년에는 밀라노(Milano)까지 갔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를 만나 그리스도교의 깊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387년 부활절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성녀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아들인 아데오다투스(Adeodatus)와 함께 살다가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 근처 오스티아(Ostia) 항구에서 카르타고로 돌아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열병으로 5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성녀 모니카에 대한 공경은 처음에는 없었지만 1162년 성녀의 유해가 프랑스의 아라스(Arras) 근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으로 옮겨지면서 전 교회에 확산되었고, 다른 유물들은 1430년 오스티아에서 로마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녀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 단체의 수호성인이자 그리스도교 어머니상의 모범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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