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사랑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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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1999-04-22 ㅣ No.84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기도하며

 

 City of  Angel 이란 영화가 있다. 도시의 한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천사가 그 병원의 여의사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천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임종하는 이의 곁에 서있었는데,  환자를 살리려고 애쓰던 여의사가  환자의 죽음앞에서, 자신을  질책하며  눈물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천사의 모든 것을 포기한 그가 살과 피, 아픔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 짧은 사랑의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 사랑은 시작하자마자 여자의 죽음으로 끝이 나버리는  슬프고도 아름답고 인상적인 영화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날개를 버리고 추락하는 천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의 동화중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바다세계의 금기를 깨고 바다위로 올라갔던 인어 공주는 풍랑으로 조난을 당한 왕자님을 구해주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팔아 사람의 다리를 얻게 된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 마다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사람이 된 인어는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여  결국엔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우리의 건국 신화에는, 하늘나라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하느님의 아들이 나온다. 그는 하늘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채, 늘 사람세상을 그리워하였기 때문에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들고 사람들의 세상으로 내려온다. 앞의 두 이야기와는 조금 차원이 다른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도 사람이 되고 싶어 100일 동안의 고통을 감수하는 곰의 이야기가 있다.  

 

 이 세 이야기 (영화, 동화, 신화)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아닌 주체의,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랑을 이루려 하는 데에는 뼈아픈 고통과 확고한 믿음이 수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세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어떤 이야기를 나는 참 좋아 한다.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요한 복음서의 끝 부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져서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보다 더 가슴찡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어 보시는 바람에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하였다. "네" 라고 대답하기에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 숙이고 싶지만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다. "그럼 네가 나를 아느냐?"..........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나에게는 하느님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하며, 무신론자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어리석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은 나에게 있어서 존경하는 위인 중의 한 분이었다. 창녀와 세리들과 식사을 같이 하시고, 병들고 버림 받은 이들을 위하여 눈물흘리시는 멋진 사나이!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세상의 불의와 위선을 폭로하며 사랑을 설파 하셨던, 역사 속에 실재하는 사람의 아들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 때에 나는 그 분의 십자가만을 보았다. 사랑은 고통일 뿐이었다.  나는 부활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낳았고, 영세 이후, 나의 주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계셨다는 깨달음에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그 열정으로 영세 후 4년을 줄곧 지금까지 내 달음질 쳐 왔다. 본당에서 이리 저리 바쁘게 활동을 하다가 이 즈음 나는 화들짝 나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나를 무신론자로 만들어 놓았던, 내가 비웃었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안에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동안 사랑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어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얼마나 아프셨을까?  사랑하는 일이 진정으로 가시밭길이라는 걸 아시며 양들을 맡기시는 주님께서 말이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리 물어 보시는데, 우리 중에 베드로처럼  세 번이나 "네" 라고  답할 수 있는 참 신앙인이 얼마나 될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 사람처럼 되는 고통을 감수하여야 하는,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모든 걸 버려야 하는 외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도 자주,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되어 버리곤 한다.

 "주님! 우리 교회가, 일이나 직책보다, 먼저 사랑해야 할 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깨닫고 익히게 하는 이 시대의 예수님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먼저 사랑해야 할 것들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연민이나 의무감으로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하며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함께 만지고 함께 느끼며 함께 울 수 있는 참사랑의 믿음을 락하여 주세요."                                                              아멘   

 

                                               199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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