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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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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수위나 [jesy] 쪽지 캡슐

2002-04-07 ㅣ No.1324

비가 온 뒤 촉촉하니 새초롬한 날이면

 

나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손바닥 만한 마당에 당신의 꿈을 심으시곤

 

조반을 드시면 나무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시는 아버지.

 

새싹이 파릇하니 돋움질을 할 때면 나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출장이 잦아 오랜동안을 쉼을 찾아 돌아오시면

 

당신의 소중한 돌맹이들을 여윈 체중에 실고는 환하게 쏟아내신다.

 

뜰 귀퉁이 마다 조용히 세운 돌맹들 틈으로 비집고 나온 풀들,

 

두더지와 개미가 바뿐 조그만 정원이 그립다.

 

보리수 열매 흐드러지던 내 마음의 작은 정원은 아버지의 전부였다.

 

이맘 때면 더디 트이는 포도나무에게 화를 냈던 나,

 

기다림을 익히던 시간들이 쌓여만 갈수록 나는 아버지가 그립다.

 

나의 작은 집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오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지 오래지만

 

비온 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 작은 마당의 세계를 생각한다.

 

점점 말 수가 적어지시고 모든 것을 품으실 듯한 미소만이

 

내 아버지의 이미지가 되었다.

 

수도 생활이 잦아들면서 나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내 아버지의 이미지와

 

혼동할 때가 있다.

 

7남매를 둘러 놓고 하느님 이야기를 하실 때 만큼이나 행복해하신 적이

 

없으신 나의 아버지.

 

우린 자주 아버지 주위에 마리아 처럼 앉아 이야기를 듣곤 했다.

 

마르타의 역할을 하신 우리 어머니는 소크라테스 같으신 아버지가

 

버거우셨는지도 모른다.

 

그 때의 그 보배로운 말씀들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하느님이 인간을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충분히 이해했다고 본다.

 

그 후 하느님의 이미지는 모성적인 이미지로 더욱 커졌지만

 

나는 아버지들에게서 모성성을 더 많이 발견하기도 한다.

 

본당의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나의 기도를 보냅니다.

 

일년에 한번 뵙는 나의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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