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약현성당 게시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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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2-12-08 ㅣ No.1098

얼마전에 "황순원의 소나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의 어느 연극반 친구들이 정기 공연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마추어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신선한 연극이었습니다.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없어서 관객 모두는 무대주변에서 연극을 봤습니다. 정말 말그대로 봤습니다.

 

넓은 강당에 사람이 없어서 너무 썰렁했고, 난방도 제대로 안되 발목이 시릴 정도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했습니다. 현재의 어지러운 세태를 황순원의 소나기와 대비해서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작지만 관중과 배우가 하나가 되는 순간들을 체험하면서 그 학생들은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날 거나한 뒤풀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강당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의 미사는 어떠한가? 우리가 미사를 드리면서 저렇게 집중하고 생각을 모으고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될까?

 

추운 강당에서 거기다가 사람이 없어서 모두 무대에 올라가 보는 연극, 아마추어다운 어눌한 연기와 소품들, 무대장치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짜릿한 경험.

 

거기에는 배우의 연기를 비평하기 보다는 감싸주고 격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초라한 무대나 소품들을 비웃기 보다는 함께 그 빈틈을 채워주려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썰렁한 유머에도 박장대소를 할 수 있었고, 엉성한 슬픔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함께 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악조건,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미사를 통해 하나됨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또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것을 탓하기 전에 함께 하려는 마음, 빈틈을 채워주려는 따뜻함이 우리에게 있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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