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11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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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10-25 ㅣ No.35

[그리스도인의 죽음]

 

<우물가의 여인>

무더위에 폭양을 더하는 팔월에 가정방문을 통하여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한 여인이라기보다는 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결혼은 스물여섯 살에 했지만 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네 살 되었을 때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여 혼자 산 지 1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오랜 기간 만나보지도 못한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보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고 마음이 결핍된 채 삶을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인즉 아버지와 처음 결혼한 분은 아기를 가질 수 없어서, 그의 언니는 다른 여인에게서 태어났고 제가 만난 이 환자는 또 다른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이지만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 두 분이나 되는 엄마의 존재와 함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환자와 언니를 길러준 분은 아버지의 본부인이어서 친엄마의 존재는 마음속에서 항상 부재중이었다고 합니다. 길러주신 엄마와 열네 살까지 살았는데, 마음속의 모정의 부재를 견디다 못해 가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13년을 울타리가 없는 사회 속에서 살다가 결혼한 지 4년 만에 외적인 장애가 아닌 내면의 장애인임을 서서히 느끼다가 정착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와 스스로 집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가슴에 큰 통증을 느끼고 일반외과에서 검사를 했는데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확한 검사를 하라고 하여 국립암센터에서 검사 한 결과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와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서 친언니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같다는 이유로, 20년이나 연락을 끊고 살던 언니에게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언니를 당당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이웃보다 더 서먹해진 언니를 가장 추락한 상태에서 만나려고 하니…. 하지만 ꡐ암ꡑ 하면 떠오르는 죽음 앞에서 자존심은 온데간데없고 무엇인가를 붙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언니집 근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 마음속에 ꡐ툭ꡑ 하고 내려앉은 그분의 한 말씀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전에 건강하게 다닐 때는 장애인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들이고 그저 안쓰럽게 보일 따름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본인이 이렇게 된 처지에서 장애인을 보니 ꡐ나도 차라리 팔이 한 짝 없었으면… 차라리 다리가 한 짝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암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ꡑ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아프기 전엔 아픈 사람들을 만나거나 볼 때면 그들에게 ꡒ더 아픈 사람들이나 더 안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ꡓ 하고 생각하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건만 지금은 암센터에서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만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이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저는 이 환자를 만나면서 그 여인의 어린 시절부터의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보았습니다. 영혼이 샘솟는 물을 막아버린 과거를….

그것을 건드려 치워주어야만 샘물이 솟아나옵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의 샘솟는 물을 막게 하는 어떤 것들을 각기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 만남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무엇, 그 이야기만 꺼냈다 하면 갑자기 화가 나게 하는 그 무엇, 물론 남이 들을 땐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것들이 샘을 막고 있지나 않은지요?

저는 이 환자분을 만나면서 의료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건드려주고 흔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평생 남의 짐으로, 부모님에게 언니에게 자식에게 짐으로 살아가게 할 수는 없으니, 환자가 지고 있는 십자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정방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부분, 흔드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자신이 하느님을 통해 신앙 안에서 치유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느끼며 가족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아들과의 관계 등에 하느님을 통하여 마음이 열려져야 한다는 것을 흔들어 일깨웠습니다.

환자는 현재 죽음보다도 더 중요한 과거의 아픔 때문에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지, 곧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태어남이라고 생각하여 우울해했고, 부모님, 언니, 남편을 철저하게 미워하고 보기조차도 싫어하는지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통해 나의 십자가를 보고 느끼며 너무나도 철저히 혼자 사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가까이 있는 가족들도 미워하는지도….


성모님은 당신 아드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 그 십자가 아래에서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키셨을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이 환자는 얼마 전 절제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묵주기도를 성모님께 간절하게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을 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술 후에는 14년 동안 하지 않았던 고해성사를 원목실 신부님께 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 그분이 말씀하시는 내 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답답함에서 시원한 마음으로, 지금 하느님께서 데려간대도 원이 없다는 말과 함께….

빈말이 아닌 솔직한 말 한마디 한마디, 하느님이 계시는 바로 이 자리, 이곳에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존재가 있구나!

가정방문 호스피스를 통해 환자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현재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사막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보고, 보이지 않는 우물물을 긷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분과의 만남은 그리 오래지는 않았지만 몇 날 동안 마음의 열의을 갖고 제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의 목마름을 해결할 물을 찾는 길, 그것은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은 좋은가 봅니다, 모두들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 보니….

_윤희순․제르트루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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