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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101: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18 - 역사의 숨은 손, 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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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19 ㅣ No.359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01)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8) - 역사의 숨은 손, 야훼

너희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 ‘야훼’라고 불러줘

기념비적인 이집트 탈출의 역사는 한 마디로 ‘신들의 전쟁’이었다. 모세는 단지 참 하느님 ‘야훼’께서 뽑아 쓰신 도구일 뿐이었다.

모세가 이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도피생활 40년 되던 해 양떼를 몰고 호렙산을 오르던 중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들려온 음성을 통해서였다. “신을 벗으라”는 소리에 신을 벗으니, 말씀이 내렸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 3,7).

우리의 ‘고난’을 보시고,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속 깊은 ‘고통’을 아시는 분! 이제 이분께서 당신 계획을 모세에게 알려주신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너를 불렀다. 네가 내 백성을 이끌어 내서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거라”(탈출 3,8-10 참조).

그러자 모세가 “당신을 누구라고 불러야 합니까?”, “어느 신의 이름으로 이집트 파라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신다.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이 문장의 원문에서 각 단어들의 첫 번째 자음을 모아 히브리식으로 발음하면 ‘야훼’(YHWH)가 된다. 원문의 결정적인 구성인자인 하야(haya) 동사는 영어로 be동사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일인칭 현재 미완료태(I will be)로 쓰이고 있다. 이 시제를 충분히 반영한 영어 번역은 “I will be who I will be”다. 우리말로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쯤이 된다.

원문의 영어 번역은 ‘야훼’의 심오한 뜻을 잘 전해 준다. 나는 영어 번역문에서 서술부 “who I will be”를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의미를 살려 ‘자유’(自由)로, 주부 “I will be”를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살려 ‘자재’(自在)로 번역하여, 그 전체를 ‘자유자재’라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자유자재! 못할 것이 없는 전능자(全能者)라는 뜻이다. 결국, 내용적으로 야훼는 “이분 뒤에 아무도 없고, 이분이 근원이고, 알파고, 오메가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로 이런 ‘야훼’의 의미를 배경으로 하여 모세오경의 결론부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너희는 보아라! 나, 바로 내가 그다. 나 말고는 하느님이 없다. 나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나는 치기도 하고 고쳐 주기도 한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 자 하나도 없다”(신명 32,39).

이런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마침내 모세를 내세워 움직이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이 말씀이 내리던 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신 특은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내 이름이 뭐냐구?
내 이름은 약칭 ‘야훼’(YHWH)!
히브리어 본 이름은,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탈출 3,14),
영어로, I will be who I will be,
한국어로, 스스로 말미암아 스스로 있는 자, 곧 자유자재(自由自在).

내 이름이 뭐냐구?
내 이름은 ‘야훼’.
나는 야훼 유일신이니, 나 외에 다른 신은 없고,
나는 야훼 창조주이니, 나 너를 모태에서 만들었고,
나는 야훼 전능자이니, 나 네 모든 기도 들어줄 수 있고,
나는 야훼 천주이니, 나 너의 흥망과 생사를 관장하되.
나 야훼, 질투하는 신이니, 너 한눈팔면 국물도 없느니라.

내 이름이 뭐냐구?
야훼라고 불러줘.
탈출기 3장 14절 갈피에 내 명함 끼워 놨다.
필요하면 연락해!
소리, 침묵, 전화, 이메일, 문자, 카톡, 다 동원하여,
불행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나 너를 구하여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시편 50,15).


■ 소통하시는 하느님

야훼 하느님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가 당신의 ‘소통’ 의지다. 흔히 명령권자는 일방소통을 즐긴다. 더구나 절대 명령권을 가졌다면 두말할 나위 없겠다. 하지만 야훼 하느님께서는 다르시다. 소통하시는 그분의 속성은 무엇보다도 ‘들으심’에서 드러난다(탈출 3,7참조).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속사정을 들으시고 헤아려 주신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수용하시고 반영하시어 행동하신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중재기도를 바쳤을 때 소통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형 아론을 앞세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때, 모세가 바친 중재기도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보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을 보다 못해 심히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온 민족을 진멸하려 하셨다(탈출 32,10 참조). 이때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한다.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탈출 32,32).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달라는 모세의 배수진 기도를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누그러뜨리셨다.

비슷한 일이 가나안 정탐꾼 12명이 돌아왔을 때 일어났다. 10명의 부정적인 견해에 선동당한 이스라엘 백성이 데모하며 모세의 리더십을 흔들자, 하느님께서는 ‘흑사병’으로 몰살시키겠다고 하셨다(민수 14,11-12 참조). 이에 모세가 또 중재 기도를 바쳤다.

“봐주세요, 아휴. 야훼 하느님, 이러면 이게 누구 망신인 줄 아세요? 소문날 겁니다. 이집트에 소문 파다하게 납니다. ‘그래 뭐 야훼 섬긴다고 떠나더니 다 몰살당했구나.’ 이렇게 소문이 나면 결국 누가 손해입니까?”(민수 14,13-19 참조)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느님께서 또 통 크게 수용하셨다. 다만 40년 광야생활로 징계의 방법을 바꾸셨다.

듣는 하느님, 야훼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운명을 바꿀 소통에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나는 듣는다.
변론이건, 호소건, 하소연이건, 탄원이건, 간청이건
나 너희의 기도소리를 듣고,
나는 매를 들다가도 뉘우치며,
심판의 불을 내리려다가도 후회한다.
나 절대(絶對) 지혜이지만,
너희의 상대(相對) 지혜도 경청한다.

내 마음을 알아다오.
너희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너희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과부의 동전 한 닢으로도 나를 감동시키면,
그것으로 천하를 살 수 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8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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