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운동 서명

선과 악

인쇄

이충환 [daniofm] 쪽지 캡슐

2000-03-21 ㅣ No.185

제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생명의 참 주인이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믿음과 우리의 유한성으로 인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이 그 첫째 이유입니다. 둘째로는 악을 없애기 위해 사형과 같은 제도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일 뿐 악에 대응하는 악을 설정함으로써 세상에 악을 늘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형이상학적인 상식 때문입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지성 ’시몬느 베이유’는 이에 대하여 악을 징벌하기 위한 형벌들이 결국은 또하나의 묵인된 악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선으로써만 악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논증을 모두 들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신자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하다한 죄에 대한 그분의 반응은 우리의 처지로 내려오시고, 그 다음에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것이었습니다. 물론 <데드맨 워킹>같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바나, 우리 자신 혹은 주변의 이웃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악을 직접 대면하고, 직접 피해를 입는 입장에서는 증오나 혐오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며 이를 징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정당화될 듯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충동과 욕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자기파멸적인지 발견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는 용서할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그분의 모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증오에서 해방되고 세상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느님의 주권을 실현’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진지한 성찰을 통하여 누구나가 사형제도가 악을 증가시키는 가공할 범죄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저의 삶을 해치고, 저의 희망을 짓밟힌 기억과 그러한 이들이 있지만 적어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 수록 결국 그들은 나의 가장 근원되고, 사실은 유일하게 정말로 존재하는 ’나 자신’에는 손톱끝만큼도 침범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자신에게 충실할수록 우리는 타인으로부터도 또 자신의 부질없는 상상으로부터도 고통받지 않게 되거나 적어도 그러한 고통에서 빨리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고통받는 분은 선 자체이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쾌히 깨달을수록 우리에게 증오나 보복의 마음은 설 자리를 잃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보잘것 없는 형제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씀하실 때 거기에는 무엇보다 충분히 그럴만한 잘못으로 인해 미움받는 이들도 해당된다고 믿습니다. 죄인은, 그의 죄의 댓가를 진 분이 주님 자신이기에 어떤 의미에서 바로 나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126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