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이기헌 신부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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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cary] 쪽지 캡슐

2001-02-27 ㅣ No.2584

 

뜬금없는 신부님의 영전 소식에 가슴 한 귀퉁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선뜻 편히 가시라는 말도 안 나오구요.

천사라는 이름으로 성가를 부르며 우의를 다졌던 젊은 시절을 잊지 못해 다시 고향 땅에 모인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이 신부님이셨지요.

욕심을 부려 토요 특전 미사의 성가를 저희가 맡아 보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신부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해 주시었고,

몇 되지 않는 단원이 오불조불 모여 성가를 부를 때

성에 차지 않으셨으련만 한번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먼 데서 와서 수고한다며 미사 중 신자들에게 몇 차례 소개하시어 저희를 낯없게 하셨습니다.

 

이제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 즐거움이 하나 줄겠군요.

신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직접 겪으신 일들을 예로 들어 되도록 쉬운 표현으로 말씀해 주시던 신부님,

강조하고 싶으신 부분에서는 목소리에 힘을 주시어 오른팔을 ㄴ자로 꺾어 올리시던...

강론 시작하면서 인사를 하실 때나 강론 도중 질문을 하실 때

2층에 있는 저희가 초등학교 학생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는 것, 신부님 아셨어요?  

 

하지만 제가 신부님을 정말 가깝게 느끼게 된 건 지난 여름부터였답니다.

그날 연습을 마친 우리의 권유에 자리를 함께 한 신부님은 막 ’농활’에서 돌아오신 듯 까만 얼굴에 웃으실 때마다 하얀 이가 유난히 돋보였지요.

그 무렵 잦은 연습으로 모두들 힘에 겨워 신경에 살얼음처럼 날이 서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면서 마찰이 빚어졌고 급기야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졌지요. 저희는 일도 수습해야 했지만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한 신부님 뵙기가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구요.

신부님께서는 그 자리에서도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일에 대해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요. 어련히 잘 마무리하랴고 저희를 믿어 주신 거지요?

이상한 건 그날 무지 부끄러웠는데 그 이후로 신부님이 진짜 우리 편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겁니다.

 

십여 년 전의 2월을 떠올립니다.

잠실 경기장에서 거행된 사제 서품식에 둘째 형님의 맏배인 조카가 흰 수단을 입고 영원한 순명을 약속하며 동료 사제들과 바닥에 엎디었던 그 순간,

전 얼른 우리 형님의 얼굴을 훔쳐보았습니다.

제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신부의 어머니인 형님은 어떠실까 궁금해서요.

그런데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던 우리 형님은 이외로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더군요.

마치 그전부터 그런 모습으로 거기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요.

그날 부모님께 첫 강복을 주던 조카 신부님의 정결한 눈빛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부님께서도 사제가 되기까지 그리고 오늘까지 부모님과 신부님을 아끼는 많은 분들의 사랑과 기도가 있었겠지요.

앞으로의 사제 생활에 저희 엔젤 사랑도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 많으시겠지만

신부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의지하시고 주위 분들의 기도에 힘을 얻으시어

좋은 사제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신부님의 선한 눈빛을 오래도록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저희 엔젤 사랑을 묵묵히 지켜보아 주시고 따뜻하게 배려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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