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푸코일보(제3호) 꼭 읽어주셔요

인쇄

김홍락 [cyscus] 쪽지 캡슐

2000-08-07 ㅣ No.3486

      푸 코 일 보  제3호        

 

사 훈 : 단무지  

                            단 - 단순

                            무 - 무대포와 무자비

                            지 - 지입쩍 (발음:찝쩍)

        창간정신 : 신앙업계에 바른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자고요.

 주의-유사언론 개코일보를 주의하세요

 

 

  이번 푸코일보 제3호는 창간 첫 논설을 게재합니다. 현재 교회 안의 올바른 신앙 이데올로기 정착을 위한 하나의 제안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푸코일보는 아주 가끔, 가뭄에 콩 나듯이 교회 안의 제 문제들에 대해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언급해 나갈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처한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더라도 본 일보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확실한 태도를 견지하고자 합니다.

  신앙업계의 많은 고객 여러분들께서도 이 점 양해하시고 비록 마음이 아프더라도 많은 격려와 조언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번 첫 논설은 "우리 신앙업계의 고객이 지녀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해 푸코 편집장의 횡설 수설을 실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예수쟁이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거리낌없이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고백’과 ’그리스도인’이다.

  ’고백’은 자신의 내면에 깊이 묻어 두었던 것을 다시금 끄집어내서 말이나 행동이라는 양식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이나 가식이 있을 수 없다. ’고백’에는 오로지 진실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양식에서 그리스도를 추종하고, 본받고, 그래서 결국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국 자기 자신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는 항상 그리스도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투영시켜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생(全生)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당신의 진실한 추종자가 되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마태 5,13 - 16).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던 당신의 표양을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빛과 소금’의 구실을 원하시는 것이다.

 

  양초가 세상에 빛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태우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고 소금이 소금으로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짜기만 해서는 되지 않는다. 소금 또한 짠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녹여내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야 소금도 비로소 자신의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고 하신 것은 세상에 녹아들어야 제 몫을 다하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스승의 간곡한 부탁인 것이다.

 

  소금이 녹지 않고 짠 맛만을 자랑삼아 쌓이고 또 쌓이면 그것은 결국

소금벽을 이루고 만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접근했다가도 금방 되돌아서버리게 하는 그런 소금벽이 되어버리고 만다. 소금벽 안에서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떤 신앙 이데올로기도 존재하기 힘들다. 분명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소금으로 녹혀내신 스승의 의도는 바로 소금벽이 아닌 어디에나 녹아 흐를 수 있는 소금물을 원하신 것일 것이다.

 

  자, 이쯤에서 우리 자신들에게 스스로 물음을 던져보자.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신앙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에게 자신의 짠 맛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이 추종하는 그리스도처럼 세상에 녹아 스며드는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향해 넓고 높게 서 있는 소금벽이 되어버리지나 않았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이야’라며 착각속에 살고 있지나 않나?

 

  우리는 우리의 신앙행위들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은 소금벽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액션단체의 활동만이 최고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레지오의 활동만이 모든 신심행위 안에서 으뜸이며, 자신이 속해있는 교사회만이 모든 성당활동의 기준이 되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성가대만이 가장 보배로운 활동이라는 생각, 그래서 결국 지극히 활동적인 자신은 미사참례만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는 타인을 ’발바닥 신자’쯤으로 치부해 버리지나 않았는지… 또는 타 단체를 자신의 단체에 견주어 가치판단을 하지는 않았는지...

이 모두가 우리 스스로가 쌓아놓은 소금벽이 아니겠는가?

신앙인,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존재를 세상에 녹여들게 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전에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시냇물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시냇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결코 단 한 번이라도 윗쪽을 탐해보려고도 않으며 항상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흐를 뿐이다.

더 이상 낮은 곳이 없는 평지에 달하면 먼저 도착했던 무리들과 한데 어울려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새로운 물이 자신의 자리에 들어오면 그 물을 밀어내려 하지 않고 스스로 넘쳐서 자리를 내어준다.

시냇물은 그것이 자신의 본분인 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냇물은 조용히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맑고 깨끗안 몸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굴러 다니는 못생긴 돌맹이, 보기 흉한 이끼들, 그리고 군데 군데 쌓여있는 더러운 쓰레기들도 모두 보여준다.

단 한 번도 이런 치부들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향해 던져놓은 돌맹이 마저도 고스란이 품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냇물은 그것이 자신의 본분인 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인의 시각으로 그런 시냇물을 좋아하는 것이며, 또한 시냇물처럼 온세상을 향해 항상 자신을 열어놓아야 한다.

 

  우리도 한 번쯤은 시냇물 신자가 되어봄이 어떠할까?  



7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