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성당 게시판

털신 두 켤레

인쇄

오봉훈 [nakedape] 쪽지 캡슐

1998-12-08 ㅣ No.85

시장 가는 길,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에 목도리를 여미며 걷는데 언뜻 길가에서 털신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웅크린 할머니를 그냔 지나칠 수 없어 나는 그다지 말설이지 않고 털신 한 켤레를 집어 들었다.

"아주 따뜻한 것이 삼천 원이여." 할머니는 기쁜 듯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천원짜리 세 장을 노인의 손에 쥐어주고 그곳을 지나쳤다. 그런데 선뜻 사 들고 나설 때와는 달리 곧 왜 샀나 하는 후회와 함께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됐다. 신지 못할 거라면 여기저기굴러다니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던져질 텐데….,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차라리 털신을 할머니께 돌려주는 게 나을성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털신을 다 팔아야 집으로 돌아갈 것처럼 마지막 남은 한 켤레의 털신을 내려보며 앉아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까. 한 켤레를 더 보태주고 가면 할머니의 발걸음은 그만큼 더 무거워질 텐데' 고민하며 몇 발짝 떨어져 서서 할머니를 지켜보았다. 주위가 어두워져 상가 여기저기서 불빛이 하나 둘씩 밝아졌지만 할머니는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털신을 놓고 지나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털신을 비닐 봉지에서 꺼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올려보고 말았다. "새댁, 털신 살라우? 아까도 새댁 또래의 젊은 댁이 사갔다우. 날도 저물었고, 싸게 줄 테니 사구랴." 나는 호주머니를 뒤져 겨우 이천오백원을 만들어 할머니께 건넸다. 그제야 할머니는 하루종일 앉아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류장 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내 손에 들린 털신 두 켤레에 눈송이가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 인연 엮어가기, 수필과 비평 동인지 제 4집 -

 

 

춥고 힘겨운 시절을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잡아주는 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우리 주위에 시린 손이 없는지 둘러보는 마음이 필요한 때 입니다.

.......Bosco



1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