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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선언문, 사임 배경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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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23 ㅣ No.52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선언] 사임 선언문 전문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저는 세 분의 시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 삶에 매우 중대한 결심을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이 추기경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이 직무는 그 영적 본질에 따라,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기도와 고통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베드로 성인의 배를 이끌고 복음을 선포하려면, 몸과 마음의 힘도 필요합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저에게 맡겨진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정도로 제 자신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행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온전한 자유로, 2005년 4월 19일에 추기경님들의 손으로 저에게 맡겨진 베드로 성인의 후계자인 교황의 직무를 사퇴하며, 이에 따라 2013년 2월 28일 오후 8시부터 로마 주교좌, 성 베드로 좌는 공석이 되고, 관할권자들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해 콘클라베를 소집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저의 무거운 직무를 저와 함께 져 주신 여러분의 모든 사랑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모든 허물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이제 최고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를 맡겨 드리며, 성모 마리아께서 추기경 교부들이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어머니의 어지심으로 그들을 도와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저는 앞으로 기도에 전념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교회를 온 마음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바티칸에서
2013년 2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선언] 교황직 사임 배경과 의미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1일 발표한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황이 사임을 결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력 악화'다. 기력 악화는 급작스런 질병이 아니라 고령으로 인한 증세다. 오는 4월 16일이면 만 86살이 되는 교황의 나이를 감안할 때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력 악화가 사임의 첫째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이미 78살의 고령이었다. 게다가 90년대부터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었다. 최근 들어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교황직 사임의 결정적 논거가 된다고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더구나 교황은 자신이 선포한 신앙의 해 한가운데 있었다.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의 사임이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10년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교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맡은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 때는 물러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에 앞서 2009년 4월 28일 지진 피해를 본 이탈리아 중부 아퀼라 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 대성전에 있는 성 첼레스티노 5세 교황 무덤에 자신의 권위 상징인 팔리움을 놓아두었는데, 이를 두고 이미 그때 교황직 사임을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재임 중 사임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신앙의 해를 마무리한 후에 사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사임을 발표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2005년 4월 19일 교황에 선출된 후 교황 예복을 입는 '눈물의 방'에서 교황은 이렇게 기도했다. "저더러 어쩌라고요, 주님? 이제 주님께서 책임지고 저를 이끌어주셔야만 합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직책에 저를 원하셨으니 절 도와주셔야만 합니다!"(베네딕토 16세와 페터 제발트의 대담 「세상의 빛」 중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된 것은 주님 뜻이었고, 그는 겸손하게 믿음으로 순명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양심 성찰을 통한 숙고 끝에 이제는 교황직을 수행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확신하고 사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겸손에서 나온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신앙의 해' 도중에 교황직을 사임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적인 그 어떤 것보다 주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야말로 오히려 신앙의 해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 사임으로 신앙의 해를 지내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참으로 값진 선물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24일, 이창훈 기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선언] 임기 중 물러난 교황 선례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2009년 아퀼라의 산타 마리아 대성전을 방문, 교황 첼레스티노 5세 유해에 팔리움을 얹어놓고 있다. 【CNS 자료 사진】


베네딕토 16세의 교황직 사임 발표가 교계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교황직이 종신직일 뿐 아니라 지난 수백 년 동안 교황이 현직에서 물러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교황이 현직에서 사임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최근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베네딕토 16세 이전 가장 최근에 임기 중 사임한 교황으로 15세기 초 제205대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재위 1406.11.30~1415.7.4)가 있다. 그레고리오 12세 재위 때 '대립 교황'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교황이 있어서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있었다. 이 분열을 막기 위해 그레고리오 12세는 자신의 교황 권위를 인정해 주는 조건 하에 교황직에서 사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당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5)가 이를 받아들이자 교황직에서 물러났다. 598년 전이었다. 그레고리오 12세의 교황직 사퇴로 서방 교회(로마 교회)는 분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회 역사에서 현직 교황이 사퇴한 첫 사례는 성인 교황 폰시아노(재위 230.7.21~235.9.28)다. 18대 교황인 폰시아노는 로마 황제의 박해로 이탈리아 남부 사르디나 섬에 광산 노예로 유배를 가게 됐다. 이로 인해 교황직이 끊길 것을 염려한 폰시아노는 후임 교황이 지명될 수 있도록 자진해 교황직을 사임했다.

그레고리오 12세나 성 폰시아노는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또는 교황직의 단절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교황직에서 물러난 경우지만, 강제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교황들도 있다. 제150대 교황 베네딕토 9세(재위 1047.11.8~1048. 7.17)가 대표적이다. 삼촌들이 교황(143대 교황 베네딕토 8세, 144대 교황 요한 19세)이어서 그 권력을 업고 교황직(145대)에 올랐으나 반란으로 쫓겨났다 다시 교황직(147대)에 올랐다. 결국 세 번째로 교황직에 올랐다가 강제로 퇴위됐다.

반면 제58대 교황 성 실베리오(재위 536.6.1~537.11.11)는 당시 정치적 음모에 희생돼 교황직에서 물러나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다 유배지에서 굶어 죽었다. 실베리오 교황은 순교자로 인정돼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제192대 교황 성 첼레스티노 5세(재위 1294.7.5~12.13)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은수자로서 교황에 선출됐을 때 80살 고령이었다. 전임 교황 서거 후 콘클라베가 소집됐지만 27개월이나 새 교황 선출에 실패한 끝에 추기경들은 존경받던 은수자인 피에트로 델 모로네를 교황에 선출했다. 그가 첼레스티노 5세다. 하지만 첼레스티노 5세는 자신이 교황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면서 5개월 만에 사임했다. 사임 후 첼레스티노 5세는 외부와 단절된 채 지냈는데, 은수자였던 첼레스티노 자신은 오히려 이를 기꺼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사임을 결정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가장 비슷한 선례를 남긴 교황은 성 첼레스티노 5세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 첼레스티노 5세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관계다.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4월 28일 지진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중부 아퀼라의 산타 마리아 대성전을 방문했다. 교황은 대성전에 있는 성 첼레스티노 5세 교황 유해를 참배하면서 교황 권위와 직무의 상징인 팔리움을 무덤에 놓고 떠났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가 첼레스티노 교황 무덤에 팔리움을 두었을 때 이미 사임을 고려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베네딕토 16세 또한 후임 교황이 선출되고 나면 바티칸 안에 있는 봉쇄 수도원에서 은수자처럼 지내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평화신문, 2013년 2월 2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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