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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를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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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yisangin] 쪽지 캡슐

2006-03-31 ㅣ No.1246

마무리를 잘하자
2006.03.31

 

 

마무리를 잘하자
   
 
어떤 일이든 1%의 가능성이라도 대강 보아 넘기지 말고
99%의 완성에도 자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자세와 마지막 마무리할 때의 자세를 두고 한 말이다.
매사가 꼭 그러랴만, 성공과 실패는 최후의 5분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군대에서 제대를 앞 둔 고참병들에게는 껌도 씹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껌 씹다가 이가 빠질지 모르니 하는 말이다. 다 이루었다고 방심하다가
그만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예 신참 이등병처럼 행동하라는 말도 한다.
이제 우리는 여행의 끝자락에 와 있다.
발걸음도 조심하고 입도 조심하고 짐도 잘 챙기자. 마치 이등병으로 돌아간 것처럼.

작년 프로야구 챔피언 삼성의 ‘철벽 소방수’로 이름을 떨치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우리대표팀의 마무리로 무결점 피칭을 선보였던
오승환 선수가 화제가 됐었다.
"지금도 신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영광은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팀 우승에 보탬이 되겠다."
각종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 겸손했고 다시 처음처럼 시작하겠다고 했다.
마무리투수의 부담감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믿음직스럽다.

프로바둑계의 ‘돌부처’ 이창호 기사는 마무리 끝내기가 너무 훌륭해 신산(神算)으로 불린다.
반집 승부는 신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흔히 운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매번 반집을 이기는 쪽이 이창호라면 그는 항상 운이 좋은 것일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대개 누구나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하기만 해서는 벽을 뛰어 넘을 수 없다. 정상에 설 수 없다.
반집을 두고 계산에 피를 말리는 사투를 벌여야한다. 신의 영역..운운 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 한다.
큰일에는 누구라도 열심히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은 일에까지 정성을 다 하기는 쉽지 않다.
반집의 승부에 목숨을 거는 이가 세상을 손에 쥐고 있잖은가.

이창호 기사는 불리한 바둑은 어떻게든 팽팽한 계가바둑으로 이끌어 내고
또 다시 반집 승부로 이어간다고 한다. 반집 승부라면 이창호에게 유리해진다는 말인데...
그리고 이창호에게 유리한 바둑을 뒤집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한 칼로 승부를 결정지어버리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상대를 노려보지도 않는다. 그의 무심한 표정 앞에서 상대는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서울 근교 산에 등산을 갔다가 이창호 기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젼에서 보던 표정 그대로였다. 너무 반가워 악수를 청했다.
수줍게 웃으며 내민 손을 잡고 나는 깜짝 놀랐다. 여자 손 같았기 때문이었다.
작고 부드럽고 예쁜 손이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왜 강한 팔을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을 제패한 손은 강하고 억셀 것이라고 여겼을까. 조용조용히 걸어가는 이창호 기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기분이 좋았다.
반집을 계산해 내는 눈빛은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것이다. 내 이웃에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에게서 기분 좋은 향기가 전해져왔다.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곤 합니다.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 해인님의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마무리의 가장 황홀한 완성은 고사성어에 있는 것 같다. 화룡점정(畵龍點睛),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함으로써 그 일이 완성되는 것,
또한 마지막 일로 인해 전체가 돋보이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양(梁)나라의 장승요가 어느 절에 용 두 마리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며 용이 벽을 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워 황홀해짐을 느낄 수 있겠다.
삶에서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랑은 어떻게 갈무리되어질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때 마다 내 마음은 꼭 어두워지곤 합니다.
내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속절없이 가슴만 태워야하는 것인지, 죽을 지경입니다.

삼월의 마지막 주간에 흩날리는 눈발을 보았는지요.
이제 겨울은 가겠지요. 올해의 겨울은 이제 다시 오지 않겠지요.
그 눈보라 속에서도 찬란한 봄을 이루려고
목련 한 송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는 것도 보았는지요. 이젠 봄이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나는 모르겠어요. 무엇이 오고 무엇이 가는 것인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墓碑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나도록 웃었습니다. 숫제 엉엉 울었습니다.
웃을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울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신영길님의 산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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