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필독] 요한 6,27에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 [번역오류] 1122_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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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9 ㅣ No.1939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8월 5일]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3) 그리고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제목: 세례(洗禮) 라는 용어는, 추안 급 국안에 기록된, 주문모 신부님(1752-1801)이 사용한,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이다, 게시일자: 2021-05-3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9.htm <----- 필독 권고

 

(4) 그리고 또한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논문[제목: 대세(代洗) 라는 약어는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 제1세대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교요해략에 근거하여, 처음으로/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신조어 번역 용어이다; 게시일자: 2021-06-15]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8.htm <----- 필독 권고

 

(5) 그리고 또한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청취할 수 있는 주일 말씀전레 묵상 동영상 교안[제목: 나해 연중 제18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나해연중제18주일> 요한 6,27에서 인정 은 번역 오류이다; 게시일자: 2021-07-30]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0.htm <-----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끝)

 

 

부제(副題): 대세(代洗)를 받은 자가 영성체(領聖體) 할 수 없는 이유

[이상, 2021년 8월 5일자 내용 추가 끝]

 

1. 들어가면서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2일]

1-1.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6,27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요한 6,22-29), 나해 연중 제18주일 복음 말씀(요한 6,24-35)에 포함됩니다.

 

1-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나해 연중 제18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0.htm <----- 필청취 권고

 

그리고 본글은,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나해 연중 제18주일 복음 말씀(요한 6,24-35)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상, 2021년 8월 2일자 내용 추가 끝]

 

1-3.

1-3-1.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 전문 입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820&gomonth=2018-08-05&missatype=DA 

(발췌 시작)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히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15)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2일]

게시자 주 1-3-1: (1) 다음에 발췌된 바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제시된 "인정하다"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264902&searchKeywordTo=3

(발췌 시작) 

인정하다(認定하다)

 

「동사」

【…을】【 …을 …으로】【 …을 -고】【 -고】 ((‘…을’ 대신에 ‘…에 대하여’가 쓰이기도 한다))

「1」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

  • 권위를 인정하다.
  • 범행을 인정하다.
  • 잘못을 인정하다.

「2」 『행정』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어떤 사실의 존재 여부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하다.

(이상, 발췌 끝)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제시된 "인정하다"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새 번역 성경"의 일러두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췌 시작)

우리말은 국립국어연구원 (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3월 15일]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사순 제2주일 제1독서(창세 15,5-12.17-18)에 포함되는, 다음에 발췌된, 창세기 15,6에서 말하는 "인정하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바로 위에 발췌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제시된 "인정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이 매우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새 번역 성경", 창세기 16,5:

(발췌 시작)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이상, 발췌 끝)

[이상, 2022년 3월 15일자 내용 추가 끝]

 

(2) 질문 1: 그런데,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인정하셨기"에다, 바로 위에 발췌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인정(認定)하다"라는 단어의 첫 번째 설명,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다"를 대입하면 다음의 문장 (A)가 되는데, 바로 이 문장 (A)로써, 예수님께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요???

 

(A)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화실히 그렇다고 여기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요???

 

그러니까,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이 누구인지, 무엇하는 자인지 등을 확실히 알아차리셨음"을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지칭한 한 개의 칭호일뿐인데, "사람의 아들"을 두고서  "성부 하느님께서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인지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제시된 "인정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서, 문장 (A)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께서는, 다음에 발췌된, 요한 복음서 2,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을 그 성경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98항 전문을, 여러 번 반복하여,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698 인호(印號). 인호라는 상징은 기름부음과 가까운 상징이다. 과연 “아버지 하느님께서 날인하신(요한 6,27)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성부께서는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날인하신다.[40] 인호(sphragis)라는 상징은 세례와 견진, 성품성사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의 지워지지 않는 결과를 가리키기 때문에, 반복될 수 없는 이 세 성사가 남기는 지울 수 없는 ‘특성’을 표현하고자 일부 신학 전통은 이 인호의 표상을 사용해 왔다. 

 

-----

40. 2코린 1,22; 에페 1,13; 4,30 참조.

----- 

(이상, 발췌 끝)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을 발췌 인용하면서, "새 번역 성경"의 해당 본문인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정하신"을 결코 인용하지 못하고, 왜냐하면, "인정(認定)하다"명백한 번역 오류이기 때문에,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표현인 '날인(捺印)하신" [즉, 도장을 찍으신]으로 교체되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96항을, 각주를 참조하면서, 읽도록 하십시오: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1296 <----- 필독 권고

 

(3) 이상, 바로 위의 게시자 주 1-3-1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 중의 "인정하셨다"라고 번역된 표현이 명백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개시자 주 1-3-1 끝)

 

1-3-2. 그리고 다음은,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6,27 전문입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4&n=50&p=6  

(발췌 시작)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2일]

게시자 주 1-3-2: 바로 위에 발췌된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6,27 의 제일 마지막 문장도 또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1-4.

1-4-1.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NAB(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6,27 전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__PXE.HTM 

(발췌 시작)

27 Do not work for food that perishes but for the food that endures for eternal life, 15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you. For on him the Father, God, has set his seal."

(이상, 발췌 끝)

 

1-4-2. 다음은 교황청 미사 중에 영어본 독서들이 발췌될 때에 사용되는 RSVCE(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 요한 복음서 6,27 전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십시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8.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27] Do not labor for the food which perishes, but the food which en-
dures to eternal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to you; for on Him has God
the Father set His seal."

(이상, 발췌 끝)

 

1-5. 다음은,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 전문입니다:

 

출처: https://biblehub.com/interlinear/john/6-27.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1) 그런데, (i) 위의 제1-3항에 발췌된 우리말본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들 두 개와 (ii) 위의 제1-4항에 발췌된 영어본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iii)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 마지막 문장들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읽어보면, 우리말 번역문들이 영어 번역문 및 그리스어 본문과 결코 동일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본글에서는, 위에 발췌된 우리말 번역문들 둘 다가 번역 오류들임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2021년 8월 2일자 내용 추가 끝] 

 

 

2. 유관 사료/자료 분석

 

2-1. 이번 항에서는, 우선적으로,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을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1-1. 다음은,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5. 직역: "그에게 아버지께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장을 찍으셨기 때문이다"(또는, "아버지께서, 하느님께서 인장을 찍어 그를 봉인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오신 분으로서 그분께서 행하시는 표징들은, 하느님께서 그분 활동의 정통성을 보장해 주시는 것이며(3,33), 또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어떤 학자들은 '인장을 찍다'라는 표현을, 예수님의 세례를 시사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은 세례 신학에 똑같은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그 근거로 삼는다(에페 1,13; 묵시 7,3-4 참조).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2일]

게시자 주 2-1-1: (1) 바로 위에 발췌된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의 첫 번째 문장이,

 

(a) 위의 제1-3-1항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 그리고

(b) 위의 제1-3-2항에 발췌된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

 

이들 둘 다와, 어디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십시오.

 

(2) 왜 이 요청을 드리는가 하면,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의 일부분인 이들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의 우리말 번역문들 이들 둘 다는, 아래의 본글 중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적으로, 결코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신약 성경 본문이기 떄문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바로 그 앞의 문장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바로 이 직역 번역된 성경 본문이 어떠한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i) 하느님의 입장에서,

(ii) 이웃의 입장에서, 혹은

(iii) 나 자신의 고유한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여, 즉, 중심 이동을 하면서, 묵상해야 하는 것이지,

 

그러나 이와는 달리, 즉,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 특정 지역 언어로 번역이 되는 과정에서, 직역 번역이 된 바로 그 앞의 문장과는 달리, 일부 번역자들에 의하여, 이들 셋 중의 어느 특정한 관점에서의 이해만을 오로지 전달하는 방식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되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3) 바로 위의 제(3)항에서 지적한 바는, 아래에 이어지는 글 중에서, 구체적인 용례의 제시들과 함께,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주석으로 제시할 수도 있는 바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성경 본문으로 제시하는 행위는,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두 번째 문제로서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명백한 번역 오류의 한 종류이라고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4) 결국에,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가르치는 바인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유구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우선적으로 학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1-1 끝)

 

2-1-2. 그리고 다음은, 2010년판 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TOB),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요한6_27_주석_in_2010_TOB_제2311쪽.jpg

(이상, 발췌 끝)

 

2-1-3. 따라서, (i) 위의 게시자 주 1-3-1, (ii) 위의 제2-1-1항에 발췌된 바 맟 위의 제2-1-2항에 발췌된 바를 언뜻 비교/검토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첫 번째 문장은, 그 번역대본인 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TOB),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의 우리말 번역문이 결코 아니며, 다만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두 번째 문장과 그 이후의 문장들은, 그 번역대본인, 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TOB),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의 후반부의 우리말 번역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3)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첫 번째 문장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이라는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기존의 성경 본문이, 위의 게시자 주 1-3-1에서 이미 말씀드린 질문 1에서의 지적처럼, 성서 해석학적 및 교의 신학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바로 이 번역 오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득불, 2010년"주석 성경"이 초간될 때에, 한 개의 궁여지책으로서, 제시된 각주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8월 2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1일]

게시자 주 2-1: 본 글의 제2항의 이어지는 글들에서, 가능한 한 연대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해석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2. 다음은,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해설 전문입니다.

 

비록 이 주석서의 영어본이 2000년 대희년 직전에 출판되었으나, 그러나 이 주석서의 본문 중에서 발췌되고 있는 바는 13세기에 살았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대한 주석이기 때문에, 연대순에 있어, 아래의 항들보다 먼저 제시하였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8.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요한 6,27:

[27] "Do not labor for the food which perishes, but the food which endures to eternal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to you; for on Him has God the Father set His seal."

 

-----

[주: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해설 시작]

 

27. Bodily food helps keep us alive in this world; spiritual food sustains and develops supernatural life, which will last forever in Heaven. This food, which only God can give us, consists mainly in the gift of faith and sanctifying grace. Through God's infinite love we are given, in the Blessed Eucharist, the very author of these gifts, Jesus Christ, as nourishment for our souls.

 

27. 몸의 음식(bodily foof)은 바로 이 세상에서 우리들을 계속하여 살아있는 것을 도우며, 영적 음식(spiritual food)는, 하늘(Heaven, 천당)에서 장차 영원히 지속될, 초자연적 생명(supernatural life)을 유지하고(sustains) 그리고 키웁니다(develops). 오로지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제공하실 수 있는 바로 이 음식은 믿음(faith)  성화 은총(santifying grace)이라는 선물을 그 주된 부분으로서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복된 성체(the Blessed Eucharist)로, 바로 이들 선물들의 바로 그 권위자(author)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혼들을 위한 자앙분으로서, 받게 됩니다.

"On Him has God the Father set His seal": our Lord here refers to the authority by virtue of which He can give men the gifts He has referred to: for, being God and man, Jesus' human nature is the instrument by means of which the Second Person of the Blessed Trinity acts. St. Thomas Aquinas comments on this sentence as follows: 

 

"그분에게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장을 이미 새기셨습니다"(On Him has God the Father set His seal): 여기서 우리의 주님께서는, 바로 그 덕택으로 그 쪽으로 당신께서 이미 언급하신 이 선물들을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제공하실 수 있는, 그 권위(authority) 쪽으로 언급하시는데, 왜냐하면, 하느님 및 사람이신, 예수님의 인성(human nature)은, 바로 그것에 의하여 복되신 성삼위의 제2 위격께서 활동하시는, 도구(instrument)이기 때문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바로 이 문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What the Son of Man will give He possesses through His su periority over all other men in His singular and outstanding fullness of grace. ... When a seal is impressed  on wax, the wax receives the complete form of the seal. So it is that the Son received the entire form of the Father. This occurred in two ways; eternally (eternal generation), which is not referred to here because the seal and the sealed are different in nature from one another; what is referred to here is the other manner, that is, 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 whereby God the Father impressed on human nature the Word, who is the reflection and the very stamp of God's nature, as Hebrews 1:3 says" ("Commentary on St. John, in loc."). "

 

"당신의 단일한 그리고 괄목할 만한, 은총의, 충만함에 있어 모든 다른 사람들 보다 탁월한 당신의 우월성(superiority)을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장차 제공하실 바를, 당신께서 소유하고 계신다. ... 한 개의 인장(a seal, 印章)이 밀랍(wax, 蜜蠟) 위에 눌러졌을 때에, 이 밀랍은 이 인장의 완전한 형상(complete form)를 받는다. 따라서 이 아드님께서는 성부의 전체 형상(entire form)을 받으셨던 것이다. 바로 이 인장을 받음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발생하였다: 영원히(영원한 생성(eternal generation))는, 왜냐하면 이 인장(the seal)과 인장을 받은 바[즉, 인호(印號, character)](the sealed)는 본성(nature)에 있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그 쪽으로 언급되지 않으며, 여기서 그 쪽으로 언급되는 바는 다른 양식/방식(manner), 즉, 강생 신비(the mystery of Incarnation)인데, 바로 이 방식에 의하여(whereby) 성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인성(human nature)에 하느님의 본성의 반영(反影, reflection)[즉, 하느님의 모습] 및 바로 그 각인(刻印, stamp)인 거룩한 말씀(the Word)을, 히브리서 1,3이 말하듯이, 눌러 찍으셨던 것이다(impressed)"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Commentary on St. John", in loc. 제898항의 두 번째 단락]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해석은,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그동안의 여러 성사들을, 최종적으로 일곱 개의 성사들로 확정할 때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저술된 "사도신경 해설"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회의 초기 시절부터 교의(dogma)로서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던 바에 대한 기술이므로, 예를 들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소위 말하는 "보례"(補禮)를 필요로 하는지의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 근거임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 2021년 8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2-3. 다음은, The Great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a Lapide[주: 1567-1637년, 예수회 소속 신부님]에 제시된 요한 복음서 6,27 중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대한 주석에서 발췌 한 바인데, 그 저술 시기은 16세기 중반 이후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동일한 라틴어본 성경 본문 "Hunc enim Pater signavit Deus."에 대하여, 세 가지 종류의 주석들이 제공되고 있으며, 특히, 두 번째 주석이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의 해석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www.corneliusbiblecommentary.faithweb.com/6john.htm 

(발췌 시작)

For 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God, Greek, ό Θεὸς, the Heavenly Father, who is the Most High God. Signed, (Vulg.), Greek, ε̉σφζάγισε, sealed. This signing, or sealing of Christ, is threefold, the first of which is the cause of the second, the second of the third. The first is of Christ’s Divinity, the second and third of His Humanity.

 

In the first place then, Cyril thus expounds (lib. 3, c. 29), “To be signed is put for to be anointed (for He who was anointed was signed), and denoted by the word signing, that He was formed as to His nature after the form of the Father, so to speak, that He might appear to say, ‘It is not difficult for Me to bestow upon you the enduring Food, by which ye may be brought to the unspeakable delights of eternal life.’ For the Son is the character of the Hypostasis of God the Father: and the character by which He has been signed by the Father is nothing else but the very form and substance of the Godhead.” Thus Cyril: so too, S. Paul (Heb. i. 3), “Who being the splendour of His glory, and the character of His substance.” Whence S. Gregory Nazianzen speaks thus of the glory of the Son (Orat. 42), “He is the Fountain of life and immortality; He is the expression,” that is, the similitude, the seal, “of the Archetype: He is the immovable Seal,” that which is not altered, or changed to any other form: “He is the Image in all respects like: He is the Term and Reason (Greek, όζος κάὶ λόγος) of the Father.” These two last expressions Nicetas takes as similar in meaning, that the Son is the Word of God the Father, i.e., the definition, the demonstration. For as a definition demonstrates that which it defines, so does the Son demonstrate, and as it were define the Father. Thus Nicetas.

 

2.  S. Hilary (lib. 8, de Trin.)(*) more correctly and appositely; The Father, he saith, hath sealed the Son, not in the Divinity, by communicating to Him His own Godhead, but in the Humanity, since He hath united it to the Word, and hath communicated to it the Divinity of the Word. For a seal, he says, is wont to be impressed upon a different substance, which is called the impression. So the Humanity is sealed by the Divinity of the Son. So also Augustine: and from him Toletus saith, “Because the Son, who is the image and character of the Father is united to the Humanity, therefore the Humanity is said to have the seal and character of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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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 책의 영문본을 읽을 수 있다. 제44항을 보라:

 

출처: https://www.newadvent.org/fathers/330208.htm 

(발췌 시작)

44. Therefore after this manifold and precise revelation of the presence of the Father's nature in Himself, He goes on to say, For Him has the Father sealed, even God. John 6:27 It is the nature of a seal to exhibit the whole form of the figure graven upon it, and that an impression taken from it reproduces it in every respect; and since it receives the whole of that which is impressed, it displays also in itself wholly whoever has been impressed upon it. Yet this comparison is not adequate to exemplify the Divine birth, because in seals there is a matter, difference of nature, and an act of impression, whereby the likeness of stronger natures is impressed upon things of a more yielding nature. But the Only-begotten God, Who was also through the Mystery of our salvation the Son of Man, desiring to point out to us the likeness of His Father's proper nature in Himself, said that He was sealed by God; because the Son of Man was about to give the food of eternal life, and that we thereby might perceive in Him the power of giving food unto eternity, in that He possessed within Himself all the fullness of His Father's form, even of the God Who sealed Him: so that what God had sealed should display in itself none other than the form of the God Who sealed it. These things indeed the Lord spoke to the Jews, who could not receive His saying because of unbelief.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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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 Chrysostom and many others say, The Father hath sealed the Son, i.e., by the voice from heaven at His baptism, This is My Beloved Son. He showed and demonstrated by His miracles, as seals, that He was His very Son. And He confirmed Him as the promised Messiah, who was able to impart convenient Food to all who desired eternal life. It comes to the same meaning if you interpret sealed to mean gave authority, because we are wont by impressing a seal to give credit and authenticity to letters.

 

This sense is easy and plain, but the second meaning is more solid and sublime. This third meaning flows from the second, and completes and perfects it. For the Father by His own voice and miracles, which are as it were His seals, has testified to man that He has sealed the Humanity of Jesus with the Divinity of the Word, and has impressed upon it the form of His own Divinity, that is, has testified that this Man Jesus is true God, and the Son of God, so that He may give and gain for Him among men, authority to teach, to enact laws, and to found a new Church. Wherefore the Gloss says, He hath sealed, i.e., He hath set Him apart from others by His own sign.”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Harmonious Gospel)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 제2장 논천량지기성체에서 발췌 한 바인데,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부분은 직역 번역이 되지 않고 의역 번역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_2_논천량지기성체_72-74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요한 복음서 6,22-70(매년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2016년 7월 28일) 주: 여기서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서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로 번역된 표현이 "의무득 영구지양. 인자자 장여언"로 번역되었음.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즉, 부족함/결핍) 글자에 대하여 고찰하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0.htm. 여기서 "새 번역 성경"에서 "하느님 아버지"로 번역된 표현이 "대부"로 번역되었음. 각주에 "모세"를 언급하면서 "만나"에 대한 설명이 주어져 있음] 

 

 

게시지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열(column)과 여덟 번째 열을 보라.

 

(요햔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대응하는, 의역이 된 부분, 발췌 시작)

亦大父之命與爾也

 

또한 대부[즉, 성부 하느님]의 명이 너희들에게 베푸라는(與) 것이니라.

(이상, 발췌 및 및 우리말 번역 끝)

 

참고:

(요한 복음서 6,29 발췌 시작)

信於大父遣者 是矣 왈 신어대부소견자 시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부께서 보내신 바인 자 쪽으로 믿는(believe in)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하셨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3일]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1642년에 초간된 한문본 "천주강생성경직해"에, 트리엔트 전례력에 따라 발췌된, 주일 및 첨례일(대축일)에 발췌된 신약 성경 복음서들의 말씀들 중에는, 요한 복음서 6,27이 포함된 단락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 여기를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라

 

참고로,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의 한문본 "성경광익"뿐만이 아니라, 우리말본 "성경직해광익"에도 요한 복음서 6,27이 포함된 성경 본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게시자 주 2-5: 바로 이러한 구체적인 확인을 위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처음으로/최초로, 어떠한 분석 작업을 선행하였는지도 또한 정밀하게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필자가 자신의 연구 작업의 한 결과물을, 이와 같이, 인터넷 상에 공지한 이유에 대하여서도, 이제는, 제발 좀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6.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에 의하여 1704년 경에 중국어으로 번역된, 필사본인,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로마_보존본/신약_upto_히브리서1장.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요한_6.htm  

(발췌 시작)

인印_in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704_장_바쌔_로마_보존본.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6: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동사 "印", 즉, "인(印)을 치셨다" [주: 바로 이 표현은 우리나라 조선의 한반도의 북부 지역의 사투리/방언/지방언어이라고 함], 즉, "인장/도장을 찍으셨다"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그러나,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는 크게 다르게, 도대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인장을 찍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게 번역되었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러니까,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 문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지시대명사 "之"가,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사용된 낱글자 "者"(놈 자) 때문에, "人子"(인자, 즉, 사람의 아들)를 가리킨다는 생각입니다만, 그러나, 바로 이 지시대명사가, "人子"(인자)가 아니고, 다른 것, 즉, 또한 바로 앞에서 말해지고 있는 "상생지량"(즉,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가리킨다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3)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에 의하여 1704년 경에 중국어으로 번역된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을 들여다보는 주된 이유는, 이어지는 항에 안내된, 1807년에 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이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에, 중국어 성경 용어들을 선정할 때에, 장 바쎄 신부님의 한문본 "신약 성경"에 대단히 많이 의존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2-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번 항에서 발췌될,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전후 단락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3&chap=6&sec=27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이들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전후 단락들 중에서, 특히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우리말로 신약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한문본 신약 성경과 이 신약 성경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파악된 한문본 신약 성경들에 대하여,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의 중국어 번역문이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7-1.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선교사들 중에서 1807년에 최초로/처음으로 중국에 진입한, 영국인인 로버트 모리슨에 의하여 1813년에 중국어로 번역된, 1823년판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823年神天聖書,馬禮遜譯 約翰福音 6 章 22 節到 6 章 28 節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79&chineses=43&chap=6&sec=2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6&chineses=43&chap=6&sec=27 [(2024-01-15) 새 출처]

(발췌 시작)

인印_in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823년판_로버트_모리슨_역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1: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위의 제2-6항에 발췌된 장 바쎼 신부님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번역문과, 몇 개의 낱글자들을 제외하고, 동일한 한문 번역문에서,  동사 "印", 즉, "인(印)을 치셨다" [주: 바로 이 표현은 우리나라 조선의 한반도의 북부 지역의 사투리/방언/지방언어이라고 함], 즉, "인장/도장을 찍으셨다"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그러나,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는 크게 다르게, 도대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인장을 찍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게 번역되었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문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지시대명사 "之"가, "人之子"(인지자, 즉, 사람의 아들)가 아니고, 다른 것, 즉, 또한 바로 앞에서 말해지고 있는, 소위 말하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가리킨다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7-2.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독일인인 선교사 귀츨라프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되어 1839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839年救世主耶穌新遺詔書,郭實臘譯 約翰福音 6 章 3 節到 6 章 30 節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93&chineses=43&chap=6&sec=2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70&chineses=43&chap=6&sec=27  [(2024-01-15) 새 출처]

(발췌 시작)

봉封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839_귀츨라프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2: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위의 제2-7-1항에 발췌된 로버트 모리슨의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번역문과, 몇 개의 낱글자들을 제외하고, 동일한 한문 번역문에서,  동사 "印", 즉, "인(印)을 치셨다" [주: 바로 이 표현은 우리나라 조선의 한반도의 북부 지역의 사투리/방언/지방언어이라고 함], 즉, "인장/도장을 찍으셨다" 와 동의어인 "封"(봉, seal)이라는 낱글자를, "印" 대신에, 사용하였음에 주목합니다.

 

2-7-3.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미국 침례파 소속의 선교사 고다드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되어 1853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853年聖經新遺詔全書,高德譯 約翰福音 6 章 23 節到 6 章 39 節

https://bible.fhl.net/new/ob.php?book=428&chineses=43&chap=6&sec=2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94&chineses=43&chap=6&sec=27 [(2024-01-15) 새 출처]

(발췌 시작)

가인加印_in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853년_초판_고다드_역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3: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加印", 즉, "인(印)을 더하셨다", 즉, "인장/도장을 찍으셨다"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그러나,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는 크게 다르게, 도대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인장을 찍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게 번역되었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2-7-4.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선교사들에 의하여 1855년에 초간된 위판역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855年委辦譯本新舊約全書 約翰福音 6 章 24 節到 7 章 21 節

https://bible.fhl.net/new/ob.php?book=214&chineses=43&chap=6&sec=2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03&chineses=43&chap=6&sec=27 -(2024-01-15) 새 출처]

(발췌 시작)


이인명지以印命之_in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855년_초판_위판_역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4: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以印命之", 즉, "인(印)을 쳐서 그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즉, "인장/도장을 찍어 그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그러나,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는 크게 다르게, 도대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인장을 찍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게 번역되었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문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지시대명사 "之"가, "人子"(인자, 즉, 사람의 아들)가 아니고, 다른 것, 즉, 또한 바로 앞에서 말해지고 있는, 소위 말하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가리킨다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7-5.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미국 장로파 선교사들에 의하여 1863년에 초간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역,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들입니다:

 

출처: 1863新約裨治文/ 克陛存版 約翰福音 6 章 到 6 章

https://bible.fhl.net/new/ob.php?book=25&version=&page=92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24&version=&page=92 [(2024-01-15) 새 출처]

(발췌 시작)

蓋神_卽父_曾印彼矣_in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863_브리지만(裨治文)&칼버트슨(克陛存)_역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5: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蓋神,卽父,曾印彼矣", 즉, "대개 하느님, 즉, 아버지께서 이미 저()에게 인(印)을 치셨나니라", 즉, "대개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자(人子)에게 인장을 찍으셨나니라"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특히, 바로 이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역은, 개신교회 측 선교사들/목회자들에 의하여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에 그 번역대본들에 포함되었다고 이미 잘 알려져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7-6.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1906년에 출판된 "新約文理和合譯本"(신약문리화합역본), 요한 복음서 6,27 및 그 전후 단락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新約文理和合譯本1906 約翰福音 5 章 到 6 章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7&chineses=43&chap=6&sec=2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09&chineses=43&chap=6&sec=27 [(2024-01-15) 새 출처; 주: 1924년에 출판된 1906년판임.]

(발췌 시작)

인印_요한6_27_마지막_문장_in_1906년판_문리화합역본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7-6: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운장에 대응하는 중국어 번역문에서, 동사 "印", 즉, "인(印)을 치셨다" [주: 바로 이 표현은 우리나라 조선의 한반도의 북부 지역의 사투리/방언/지방언어이라고 함], 즉, "인장/도장을 찍으셨다"는 표현이 있음에 주목합니다.

 

(2) 그러나,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는 크게 다르게, 도대체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인장을 찍었는지는 매우 불분명하게 번역되었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러니까, 이 문장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지시대명사 "之"가, "人子"(인자, 즉, 사람의 아들)가 아니고, 다른 것, 즉, 또한 바로 앞에서 말해지고 있는, 소위 말하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가리킨다고, 독자들이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2-8.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on DRB에서 발췌한 바인데, 위의 제2-3항에 발췌된 The Great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a Lapide[주: 1567-1637년, 예수회 소속 신부님]에 제시된 요한 복음서 6,27 중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대한 세 개의 주석들에서, 세 번째 주석을 매우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위의 제2-3항에 발췌된 바에 포함된 두 번째 주석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이유에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아마도, 이들 "인장들"/"인호들"에 대하여, 가톨릭 보편 교회에 의하여 트리엔트 공의회 직후에 처음으로 출판된 교리서인, "트리엔트 교리서"에서, 이들 "인장들"/"인호들"에 대하여, 비록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기는 하나,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170724223158/http://haydock1859.tripod.com:80/id99.html 

(발췌 시작)

Ver. 27. For 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The sense seems to be, that Christ having wrought so many miracles in his Father's name, the Father himself hath thereby given testimony in his favour, and witnessed, as it were, under his seal, that Jesus is his true Son, whom he sent into the world. (Witham)

(이상, 발췌 끝) 

 

2-9. 이번 항에서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이 되었는지, 가능한 한 연대순에 있어 내려가면서, 실증적으로(pos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9-1. 다음은, 중국 만주 지역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선교사 로스에 의하여. 당시의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로 번역되어 1887년에 초간된 "예수셩교젼서", 요한 복음서 6,27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요한6_27_in_1887_예수셩교젼셔_1995년판_제492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9-1: (1) 바로 위에 발췌된 요한 복음서 6,27의 번역대본이 위의 제2-7-5항에 안내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 미국 장로파 선교사들에 의하여 1863년에 초간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역,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 특히 위의 제1-5항에 발췌된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과 마찬가지로, 성부 하느님께서 인자, 즉, 사람의 아들에게 인장을 찍었음을, 그 번역대본인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역,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서와 동일하게,  매우 분명하게 밝히는,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2-9=2. 다음은, 한기근 신부님께서 동료 신부님들에 의하여 우리말로 되어 1910년에 초간된, "사사성경", 요한 복음서 6,27과 그 전후 단락을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저를_증명하심이니라_in_요한6_27_in_1910_사사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9-2: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보듯이, 예상밖으로,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에, "도장/인장을 찍으셨다" 대신에, "증명하심이라"라고 잘못 번역된 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이 우리말본 "사사성경"의 번역대본에 포함되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요세프 드쟝(Joseph Dejean, 德如瑟, 1834-1901년) 신부님이 역주한, 1892년에 중국 홍콩 나자렛 출판사에서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천주교회용 한문본 "四史聖經譯註", 요한 복음서 6,27번역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며, 나중에 이에 대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생각입니다.

 

2-9-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 의하여 우리말로 번역된 요한 복음서 6,27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1: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HAN&book=jhn&chap=6&sec=27&cVersion=GAE^SAE^&fontSize=15px&fontWeight=normal#focus

출처 2: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Parall.php?version=GAE&rdoReadType=1&book=jhn&chap=6&sec=27&sec1=1&txtReadInfo=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1956년, 개역한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1998년, 개역개정]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1993년, 표준새번역]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001년, 새번역]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9: (1) 위의 게시자 주 2-7-6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개역한글"에서 "인치다"라는 표현, 즉, "인(印)을 치다"라는 표현은, "인장/도장을 찍다", 즉, "날인하다"라는 표현의 우리나라 조선의 한반도의 북부 지역의 사투리/방언/지방언어이라고 합니다.

 

(2) 따라서, "개역한글",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말로 직역 번역이 되었던 바가, 1993년에 출판된 "표준새번역"에서 "인정하셨다"잘못 번역이 되었음을, 즉, 직역 번역이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3. 본글의 결론들

 

지금까지,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 있는 "인정하셨다"심각한 번역 오류의 출처를 파악하기 위하여, 상당한 분량의 유관 성경들의 본문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였는데, 이번 항에서는 이 고찰의 결과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니다.

 

3-1. (이 글의 결론 1)은 위의 게시자 주 1-3-1에서, 그리고 (이 글의 결론 2)(이 글의 결론 3)은 위의 제2-1-3항에서 도출된 결론들인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바로 아래에 발췌합니다:

 

(이 글의 결론 1)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 중의 "인정하셨다"라고 번역된 표현이 명백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첫 번째 문장은, 그 번역대본인 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TOB),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의 우리말 번역문이 결코 아니며, 다만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두 번째 문장과 그 이후의 문장들은, 그 번역대본인, 프랑스어 "공동번역성서"(TOB), 요한 복음서 6,27에 대한 주석의 후반부의 우리말 번역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3)  "주석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의 주석의 첫 번째 문장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이라는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기존의 성경 본문이, 위의 게시자 주 1-3-1에서 이미 말씀드린 질문 1에서의 지적처럼, 성서 해석학적 및 교의 신학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바로 이 번역 오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득불, 2010년"주석 성경"이 초간될 때에, 한 개의 궁여지책으로서, 제시된 각주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2. 더 나아가, 위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들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 있는 "인정하셨다"라는 심각한 번역 오류는, 1993년에 출판된 "표준새번역"에서 "인정하셨다"로 잘못 번역되어 있는 바를 그대로 베끼다가 발생한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3. 이번 항과 이어지는 항에서는,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 있는 "인정하셨다"라는 심각한 번역 오류와 성서 신학, 교의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적으로 직접적으로 관련된, 예수님과 성 바오로에 의하여 성경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진 초자연적 개념인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 그리고 바로 이 위업의 현실태화(actualization)로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참으로 오래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은총을 얻기 위한 성사들 및 미사 성제 전례 중에 행하여온 바들 등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번 항에서 말씀드리는 바는, 진실로 진실로 중요한 내용이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반드시 숙지하시고 그리고 평소에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3-1. 우선적으로, 다음은, 2021년 나해 연중 제18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을 위하여 마련된 교안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츨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0.htm <----- 필청취 권고

(발췌 시작)

E.

(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본글의 주소] <----- 꼭 필독 권고

 

(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 등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장’(seal, 印章)/‘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 제1296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1-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1296 <----- 필독 권고 

 

(iii)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1항 참조),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i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들에 의하여,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영혼(soul)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이상, 발췌 끝)

 

3-3-2. 다음에 발췌된 바는 예수님의 구속/속량 위업에 대하여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신약 성경 본문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의 성경 근거들입니다.

 

특히 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의 우리말 번역에 결코 번역 오류가 없어야 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바에서 전달해 드린, 이 절에 대한 보편 교회 교도권이 이미 수용된 해석, 그리하여 칠성사들에 녹아들어가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묵상에 묵상을 거듭하시기 바랍니다:

 

루카 복음서 1,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redemption)하시고"

 

루카 복음서 2,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redemption)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루카 복음서 21,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redemption)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서 6,27 [주: 나해 연중 제18주일 복음 말씀에 포함됨]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인장을 찍으셨기(has set his seal) 때문이다."

 

로마서 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redemption)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로마서 8,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redemption)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1코린토 1,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redemption)이 되셨습니다."        

 

2코린토 1,21-22 [주: 나해 연중 제7주일 제2독서에 포함됨]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심장(hearts)들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에페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redemption)을, [바로 이 자리에서 "곧"은,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 임의적으로 추가된, 심각한 번역 오류이기에, 삭제함](*)(마태오 복음서 26,28;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13항, 제1846항)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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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나해 연중 제15주일 제2독서 해설 등에서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39.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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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서 1,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에,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에페소서 1,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redemption)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에페소서 4,30 [주: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됨]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redemption)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콜로새서 1,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redemption)을, [바로 이자리에서 "곧"은,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 임의적으로 추가된, 심각한 번역 오류이기에, 삭제함](*)(마태오 복음서 26,28;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13항, 제1846항)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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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나해 연중 제15주일 제2독서 해설 등에서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39.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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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새서 1,15

"그분은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히브리서 1,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속량(redemption)을 얻으셨습니다.                            

 

3-3-3. 특히,

 

(i) 요한 복음서 6,27 [주: 나해 연중 제18주일 복음 말씀에 포함됨],

(ii) 2코린토 1,21-22 [주: 나해 연중 제7주일 제2독서에 포함됨], 그리고

(iii) 에페소서 4,30 [주: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됨],

 

이들 세 개의 신약 성경 단락들은,

 

(a)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인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과

(b) 성부 하느님의 의지에 의한 우리들의 영혼에 인장(seals)들을 받을 수도 있게 됨, 즉, 인호(the sealed, character)들이 새겨질 수도 있게 됨

 

사이의 유일한 초자연적 관계(the supernatural relationship)를 성서 신학적 및 교의 신학적으로 연결시키는 매우 중요한 신약 성경 중의 가르침들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절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매우 출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9.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7.htm <----- 꼭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0월 2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7.htm

(발췌 시작)

"He has put his seal on us": the St Pius V Catechism uses these words to explain the "character" which the sacraments of Baptism, Confirmation and Order impress on the soul; Paul "not obscurely describes by the word 'sealed' a character, the property of which is to impress a seal or mark. This character is, as it were, a distinctive impression stamped on the soul which perpetually inheres and cannot be blotted out" (II, 1, 30).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인장(seal)을 이미 찍으셨습니다": 성 비오 5세 교리서(즉, 트리엔트 교리서)는 이들 말들을 성세성사, 견진성사 그리고 신품성사가 영혼에 눌러 찍는 "인호"(character)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바오로는 "그것의 성질이 한 개의 인장 혹은 표시(a seal or mark)를 눌러 찍는 것인, 한 개의 인호(a character)'인장을 받음'(sealed)이라는 말로써, 모호하지 않게(not obscurely) 묘사한다(describes). 바로 이 인호는, 말하자면, 항구하게(perpetually) 귀속되어 있으며(inheres) 그리고 닦아서 지워질 수(be blotted out) 없는, 영혼(soul)에 날인(捺印)되는(stamped) 한 개의 구분이 분명한(distinctive) 압인(壓印, impression)이다" 
[성 비오 5세 교리서(the St Pius V Catechism), II,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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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뒤에서 두번 째 단락을 보라:

출처: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dav.htm 

(발췌 시작)
Second Effect: Sacramental Character

 

The second effect of the Sacraments ­­ which, however, is not common to all, but peculiar to three, Baptism, Confirmation, and Holy Orders ­­ is the character which they impress on the soul. When the Apostle says: God hath anointed us, who also hath sealed us, and given the pledge of the Spirit in our hearts, he not obscurely describes by the word sealed a character, the property of which is to impress a seal and mark.

This character is, as it were, a distinctive impression stamped on the soul which perpetually inheres and cannot be blotted out. Of this St. Augustine says: Shall the Christian Sacraments accomplish less than the bodily mark impressed on the soldier? That mark is not stamped on his person anew as often as he resumes the military service which he had relinquished, but the old is recognised and approved.

This character has a twofold effect: it qualifies us to receive or perform something sacred, and distinguishes us by some mark one from another. In the character impressed by Baptism, both effects are exemplified. By it we are qualified to receive the other Sacraments, and the Christian is distinguished from those who do not profess the faith. The same illustration is afforded by the characters impressed by Confirmation and Holy Orders. By Confirmation we are armed and arrayed as soldiers of Christ, publicly to profess and defend His name, to fight against our internal enemy and against the spiritual powers of wickedness in the high places; and at the same time we are distinguished from those who, being recently baptised, are, as it were, new­born infants. Holy Orders confers the power of consecrating and administering the Sacraments, and also distinguishes those who are invested with this power from the rest of the faithful. The rule of the Catholic Church is, therefore, to be observed, which teaches that these three Sacraments impress a character and are never to be repeated.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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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2021년 10월 2일자 내용 추가 끝]

 

3-3-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위업들 중의 하나인, 따라서 한 개의 초자연적 개념(a supernatural concept)인,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과 관련하여, 언어 장벽/문화 장벽 등으로 인하여 전달 장애가 발생하였거나, 전달 누락, 훼손 등이 발생한 바를 복원/회복시키기 위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그동안 작성한 유관 졸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특히, 제1129번 글, 제1169번 글, 제1650번 글, 제1689번 글, 제1939번 글[주: 본글], 제2100번 글, 제2105번 글, 제2106번 글, 제2110번 글, 그리고 제2250번 글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3-4.

3-4-1. 최근에 들어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세례(洗禮)" 라는 번역 용어가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였는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것을 다루는 "세례(洗禮) 라는 용어는, 추안 급 국안에 기록된, 주문모 신부님(1752-1801)이 사용한,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이다" 제목의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9.htm <----- 필독 권고

 

3-4-2. 그리고 또한 최근에 들어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대세(代洗)"라는 약어가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였는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것을 다루는 "대세(代洗) 라는 약어는 우리나라 조선의 신앙의 선조 제1세대가,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의 교요해략에 근거하여, 처음으로/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신조어 번역 용어이다" 제목의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8.htm <----- 또한 필독 권고

 

3-4-3. 특히, 바로 위의 제3-4-2항에서 안내해 드린 졸글/졸고에서,

 

(i)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의 조건이 부정확하였음을, 즉, 잘못 알고 있었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였으며,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의 정확한 조건/정의(definition)의 제시, 그리고 또한, 

(ii)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초기의 신앙의 선조들에 의하여 천주교 신자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된 주된 이유가 바로 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의 보급 때문이었음, 그리고

(iii) 개신교회 측의 세례는 대부분의 경우에 "대세(代洗)"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지적하였습니다. 다음은, 바로 위의 제3-4-2항에서 안내해 드린 졸글/졸고의 부제(副題)입니다:

 

부제(副題) 1: 우리나라 조선의 천주교회의 조기 정착 및 토착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벽 성조(1754-1785년)가 또한 주도한, 대세(代洗)의 보급(普及)이었다

 

3-4-4. 본글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본 바가 어떻게 "대세(代洗)"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정의에 의하여(by defintion), 세례/성세성사를 받아야 할 필요성(necessity)이 있을 경우이나 [주: 예를 들어, 이벽 성조가 포함되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신앙의 선조 제1세대] 그러나 그 자리 및 현실적 여건에서 세례/성세성사를 집전할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없어서, 부득불, 이들이 아닌 자가, 천주교회가 실시하는 세례의 요건들을 충족하면서, 집전한/실시한 세례/성세성사를 말하는데,

 

그러나 바로 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의 경우에는, 또한 천주교회가 실시하는 세례/성세성사의 필수적이 요건, 즉,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수난 공로(에페소 1,7), 즉,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한(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1항 참조), 신약 성경 본문에 명기된, 필수적인 요건(요한 복음서 6,27의 제일 마지막 문장; 에페소 3,40; 2코린토 1,21-22), 물로 씻음 직후에 "대세(代洗)"의 집전자/실시자가 축성된 기름을 "대세(代洗)"를 받는 자의 이마에, 유효하게(validly) 그리고 적법하게(lawfully),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대세(代洗)"를 받는 자의 영혼에 인장’(seal, 印章)이 새겨지는 기회, 즉, '인호'(印號, character)가 박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대세(代洗)"를 받은 자는, 이후에 추가적으로, 영원한 품급의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대리자들인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집전하는, 축성된 기름, 즉, 성유를 이마에 바르는 "보례"를, 이들 중의 한 분으로부터, 유효하게(validly) 그리고 적법하게(lawfully), 받음으로써, 바로 이 "보례"의 한 결과로서"대세(代洗)"를 받은 자의 영혼에 비로소 "성세성사의 인호"가 박히게 되므로, 따라서, 본글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다룬 내용과 참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진실로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대세(代洗)"(private baptism)는,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음의 수용'없는 세례/성세성사입니다. 이와는 달리,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음의 수용'있는 세례/성세성사는,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장엄 세례"/"장엄 성세성사"(solemn baptism)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집전하는 "세례(洗禮)"는 모두, 어떠한 경우에도 "대세(代洗)"(private baptism)일 수가 없는, 따라서 "보례"(補禮)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장엄 세례"(solemn baptism)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4-5. 그러니까, "대세(代洗)"를 받은 자이나, 그러나 영원한 품급의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대리자들인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집전하는, 축성된 기름, 즉, 성유를 이마에 바르는 "보례"를, 이들 중의 한 분으로부터, 유효하게(validly) 그리고 적법하게(lawfully), 받지 못한 자는, 비록 "대세(代洗)"를 받음으로써, 가시적으로(visibly), 교우(敎友, 즉, 가르침을 받고 있는 벗)/그리스도인(christians)들 중의 한 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왜냐하면, 아직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당신의 세례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단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수난 공로, 즉, 2코린토 1,21-22 및 에페소서 4,30이 요구하는 성령의 인장, 즉,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음, 즉,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의 한 결과로서 현실태화 된(actualized), 원죄 및 본죄의 사함을 초래하는, 그리스도이신, 즉,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 받은 분이신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즉, 통공(communion), 즉, 은총의 지위]에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에(마태오 복음서 26,28;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13항, 제1846항), 영성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승천하시어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곧, 당신의 영광인데, '성부 하느님과 항상 그리고 영원한 통공의 상태', 즉, '[거룩한] 통공의 상태'(Communio, Communion)(요한 복음서 15,10ㄱ)(#) 계신 예수님의, 바로 이 예수님의 영광의 잡아 당김에 화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의 한 결과로서 현실태화 된(actualized), 그리스도이신, 즉,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 받은 분이신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즉, 통공(communion), 즉, 은총의 지위] 안에서,(*) 우리의 영혼들을 무겁게 하는 원죄와 본죄의 사함을 받음으로써, 당사자의 영혼이 매우 가벼워져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8일]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죄를 짊어지시려고??? - 히브리 9,28 " 제목의 졸글을 읽을 수 있는데, 제6-1항에 발췌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6항을 여러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CCC 1476 We also call these spiritual goods of the communion of saints the Church's treasury, which is "not the sum total of the material goods which have accumulated during the course of the centuries. On the contrary the 'treasury of the Church' is the infinite value, which can never be exhausted, which Christ's merits have before God. They were offered so that the whole of mankind could be set free from sin and attain communion with the Father. In Christ, the Redeemer himself, the satisfactions and merits of his Redemption exist and find their effficacy."

(졸번역)
CCC 1476 우리는 또한 성인들의 통공(the communion of saints)이라는 이들 영적 재화들을 교회의 보화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세기들로 구성된 과정 동안에 축적되어 온 질료적 재화들의 총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는 달리 '교회의 보화'는, 결코 고갈될 수 없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들이 가지는, 무한한 가치를 말합니다. 인류 전체가 죄로부터 해방 수(could)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성부(the Father)와의 통공(하나 됨, Communio, Communion)을 획득할 수(could)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제공되었습니다. 구속주(Redeemer) 당신 자신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요한 복음서 13,34;15,10ㄴ; 15,12; 15,17),(#) 당신의 구속(속량, Redemption)에 기인하는 보속(satisfactions)들과 공로(merits)들이 존재하며(exist)(**) 그리고 이들의 효능을 발견합니다."(*)


-----
(*) 바오로 6세, 교황령 Indulgentiarum doctrina, 5: AAS 59(1967), 11면.

(**) 번역자 주: 스콜라 철학 용어들인 있음(有, being)과 존재(存在, existence)의 차이점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

(이상, 발췌 끝)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송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졸글/졸고[제목: 요한 15,9-17에서 -사랑 안에 머물다- 는 -사랑의 행위 안에 머물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번역미숙]; 게시일자: 2021-05-10]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3.htm <----- 반드시 꼭 필독 권고

-----

[이상, 2021년 8월 8일자 내용 추가 끝]

 

예를 들어, 미사 시작, 입당 직후, 자비송(키리에 엘레이 손) 직전에 있는, 참회 예절에서, 가슴을 세 번 치는 부분 이후에, 집전 사제는 사죄경을 하느님께 바치는데, 바로 이것으로써 소죄(venial sins)들의 사함을 받게되어,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아니한 분들의 경우에, 성찬 전례 중에 영성체 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지듯이, 이와 마찬가지인 이유, 즉, "대세(代洗)"를 받은 자들 경우에는 아직 원죄(original sin) 및 본죄(actual sin) 등의 죄들이 실제로 정말 완전하게 말소되지 않은(not blotted out) 상태이기 때문에, 영성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와 관련하여,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미사통상문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ordinary.asp  

 

3-5. 특히 바로 위의 제3-4항에서 말씀드린, 성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명하시는 바 모두가, 진실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요한 복음서 6,27의 마지막 문장 한 개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음/매달려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에 의하여,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요한 복음서 6,27 전문 때문에, 우리가 영성체(領聖體, Communio, Holy Communion, 거룩한 통공, 즉, 성부 하느님과의 통공(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6항))/성찬례(聖餐禮, the Eucharist) 쪽으로 매우 강하게 이끌려 당겨짐/들어올려짐을 빋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요한 복음서 6,27 전문입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인장을 찍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서 6,2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즉, "내가 너희들을 위한 너희 죄들의 용서,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하여 인류의 구원 등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즉, 보편적인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 즉, 예수님의 구속/속량 위업]은 장차 다 성취할 것이니, 즉, 내가 너희들을 장차 매우 강하게 힘껏 당길 것이니/들어올리려고 할 것이니, 너희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즉, 개별적인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에 힘써라]"

 

3-6. (이 글의 결론 5) 지금까지 본글에서 고찰한 바 및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바에 의하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세례를 받는 자에 있어, 다음의 논리적 등가(logical equivalence)가 성림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수난 공로 위업(偉業)의 수용/받아들임'.

 

(ii)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偉業)의 수용/받아들임'. 

 

(iii) '그리스도의 성혈(Blood)로써 인장(印章)이 찍힌/봉인된(sealed) 새 계약(the new covenant)의 수용/받아들임'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1.htm 참조]. 

 

(iv) [그리스도의 지상의 대리자들인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부제들에 의하여 집전되는]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음의 수용/받아들임'

[달리 말하여, '성령에 의한 인호(印號, seal)가 영혼에 새겨짐의 수용/받아들임'].


(v) 영혼의 형상인(formal cause)'성삼위의 모습/상(the image of the Trinity), 즉, 천주의 모습/상(the image of God)의 수용/받아들임'[출처: (i)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On the Trinity", Book X, Chapter 11, (ii)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a, q93, 및 (iii) 제아오 몬테이로 신부님(1602-1648년)의 "천학략의", 제5-6쪽],

 

(vi) 영혼의 형상인(formal cause)'영성(靈性, spiritual nature, spirituality)의 수용/받아들임'[출처: 제아오 몬테이로 신부님(1602-1648년)의 "천학략의", 제5-6쪽],

 

(vii) 영혼의 형상인(formal cause)인 '기함(記含)/기억(memory), 명오(明悟)/오성(悟性)/이해(understanding), 그리고 애욕(愛慾)/의지(intellectual appetite/rational appetite, 즉, will)의 수용/받아들임'[출처: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On the Trinity", Book X, Chapter 11],

 

(viii) 영혼의 형상인(formal cause)인 '창조된 지성(created intellect)과 창조된 애욕/의지(created intellectual appetite/created rational appetite, 즉, created will)의 수용/받아들임'[출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a, q93].

 

(ix) 영혼의 형상인(formal cause)"주역(周易)/역경(易經)"에서 말하는 "음양(陰陽)"에서 "양(陽)"의 수용/받아들임'[출처: 위의 주소에 안내된 글의 제2-1항에 있는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영성"에 대한 설명과 다음의 주소에 있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음양(陰陽)"에 대한 설명: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75.htm (2017년 3월 2일자 졸글)]

(이상, 이 글의 결론 5 끝)

 

3-7. (이 글의 결론 6) 만약에 "새 번역 성경"이 마련되는 과정에 우리말로의 초벌 번역 작업에 종사한 분(들)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98항과 그 성경 근거들 및 본글에서 제시된 유관 자료들을 들여다보았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요한 복음서 6,27에의 마지막 문장의 우리말 번역 과정에서, "인정하셨다"라는 표현을 한 개의 합당한 번역 표현으로서 결코 채택하지 못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8월 3일자 내용 추가 끝] 


 

 참고 자료들: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제시된 "Character"(인호):

https://www.newadvent.org/cathen/03586a.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 728항, 1296항

https://search.freefind.com/find.html?si=89811935&pid=r&n=0&_charset_=utf-8&bcd=%C3%B7&query=%22seal%22+%22Christ%22 

 

"Jn 6:27" "John Paul II" site:vatican.va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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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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