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오늘도 '빨갱이 타령'을 듣네/제3회 태안문학축전에서 낭송한 시 '촛불 사랑'

인쇄

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8-07-28 ㅣ No.6652

                오늘도 '빨갱이 타령'을 듣네
                                      제3회 태안문학축전에서 낭송한 시 '촛불 사랑'



오랜만에 <오마이뉴스>에 신작시를 발표합니다. 제 시들은 생활 가운데서 얻어지는 진솔한 고백 같은 '생활시'들이기에 '사는 이야기' 난에 올리는 것이 무난할 듯싶습니다.

지난 26일(토) 오후 3시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태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학평화포럼'이 주관한 <국토·모심·평화를 위한 문학축전 2008, 제3회 태안 문학축전>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무총리 복권위원회, 행복공감 복권위원회, 한미약품, 대전충남작가회의, 태안예총, 태안문화원, 태안문학회, 흙빛문학회, 뻘빛시낭송인회, 마삼말쌈시낭송회 등이 후원한 행사였습니다.

이 규모 있고 뜻 깊은 문학행사에 태안의 대표격 문인인 저도 기꺼이 참여하여 신작시 한 편을 낭송하였습니다. <촛불 사랑>이라는 시였습니다.

이미 열흘 여 전에 시를 메일로 보내면서, 모든 출연자들의 시가 책자로 묶여진다는 말을 들었기에(참석하신 분들 모두 <촛불 사랑>을 활자로 보실 수 있겠기에), 낭송은 다른 작품으로 하려고 행사 하루 전에 지은 <오늘도 '빨갱이 타령'을 듣네>라는 시를 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책자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주최측이 프린트해서 건네준 <촛불 사랑>을 낭송하였습니다.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무튼 가장 최근에 지은 두 편의 시, <촛불 사랑>과 <오늘도 '빨갱이 타령'을 듣네>를 소개합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시를 읽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 싶습니다. 
    


▲ 필자의 시낭송 모습 / 7월 26일(토) 오후 3시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태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3회 태안 문학축전'에 참여, 신작시를 낭송했다.  
ⓒ 지요하  시낭송



촛불 사랑


어린 시절부터 촛불을 보며 자랐다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자주 새벽에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촛불을 보며
촛불이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애옥살이 누추한 방안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기도를 할 때는
등잔불 대신 촛불을 켜시는 아버지 손을 보며
촛불의 존재 가치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우리 성당 공소 시절
주일에 본당에서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지낼 때만 제대에 촛불이 켜지는 것을 보며
성당에서도 촛불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점점 확실히 알게 되었다

평생 동안 촛불과 친숙한 관계로 살아왔으되
요즘 들어 촛불들의 엄청난 위용을 보며
촛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었다

40일이 넘는 병상 생활을 하느라
그 장엄한 촛불의 대열 속에
내 작은 촛불 하나 보태지는 못했지만
매일같이 병상에서 촛불 보도에 열중하며
뜨겁고도 엄숙한 마음으로
병실 가득 촛불을 켜곤 했다    

그리하여 촛불은 내 병상에서도
희망이 되고 평화가 되었다
촛불은 이미 절절한 기원과 갈구이기에
스스로 인내하며
장엄한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촛불을 켜든 내게 스스로
촛불의 의미와 이유를 명확히 알게 하고
또 그것으로 나 자신을 정화시킴으로써
촛불은 새날을 밝히는 횃불이 되고
시대의 징표가 되었다

1980년대로 되돌아간 공안 정국
로마 병정들의 군화와 방패
최루액과 물대포와 곤봉으로도
꺼버릴 수 없는 촛불
조중동의 발악과도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 재단
빨갱이에다가 국가전복세력이라는 억지 혐의로도
꺼버릴 수 없는 촛불의 진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희망이고
평화 그 자체이기에
촛불의 생명은 영원하다
촛불은 평화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 필자의 시낭송 모습 / 최근 44일 동안 병상 생활을 했고, 퇴원 후에도 간간이 외래 진료를 다녀야 하는 온전치 못한 건강 때문에 시낭송이 다소 힘들었지만, 그래도 목소리에 기백이 있고 발음이 또렷했다는 말을 들었다.  
ⓒ 지요하  시낭송



오늘도 빨갱이 타령을 듣네


44일 동안 병상 생활을 하면서
수혈도 했고
팔에서 검사용 피도 무수히 뽑았다

그때 보았다
아니, 확인을 했다
내 피도, 내 몸에 들어오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피도
한결같이 붉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사람의 붉은 피와 '빨갱이'라는 이데올로기 기준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빨간 피를 지니고 살망정
내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빨갱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나는 민주주의를 숭앙하고
정의와 진실을 갈망하고
그것 때문에 때로는 고뇌하고
한숨쉬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또 그것 때문에 더욱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단순 소박한 사람일뿐이었다  

그런 내가 빨갱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더욱 많이 하고 있다
개신교 신자인 한 지인으로부터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빨갱이가 많다는 말을 듣는 순간
도리 없이 내가 빨갱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전교조도 빨갱이 집단으로 지목했다
전교조 회원인 마누라도 도리 없이 빨갱이일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에도
우리 사회에는 빨갱이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쉽게 빨갱이가 되고
너무나 빨갱이가 많은 세상이었다.

그녀는
촛불집회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 중에는
일당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말도 했다
이명박 장로를 옹호하기 위한 말인 것도 같고
교회 목사님 설교 중에 들은 말일지도 몰랐다

그녀와 '믿음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저 광기의 무리들 앞에서
나는 도리 없이 빨갱이일 수밖에 없었다
내 마누라도, 딸아이와 아들녀석도…

누구나 쉽게 빨갱이가 되고
빨갱이가 너무나 많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녀와 그들 종교 집단이 외쳐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님은
나와 우리 가족이 결코 빨갱이가 아님을
잘 알고 계시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 다시 듣는다
그까짓 빨갱이라는 말이 뭐 대수냐
실은 나도 어느 모로는 빨갱이였단다
그들이 그렇게 보면 보는 대로
중심 잃지 말고 그냥 살아라

그것이 진정 나에게로 오는 길이란다.      


2008.07.28 11:51 ⓒ 2008 OhmyNews



190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