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2010년~2011년)

사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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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온균 [gsbs] 쪽지 캡슐

2011-05-23 ㅣ No.7358

† 찬미예수님

세상에는 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를 크게 자연의 소리와 인공의 소리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자연의 소리는 우리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자연의 소리,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가 곧 하느님이다!’

이것은 바로 뉴에이지입니다.

피조물이 하느님은 아니지요, 조심해야합니다.

 두 번째, 인위적인 소리(인공의 소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엔진소리, 휴대폰 울리는 소리, 마이크소리, 기계소리.....

  할아버지 신부님이 은퇴 후 어느 본당에 미사를 한 대 맡으셨대요.

나이가 드니 힘이 없으셔서 미사 중 성작을 들어 올리시다가

당신도 모르게 ‘피익~’ 하고 방구가 새었어요.

한동안은 제의 속에 머물다가 제의 밑으로 빠져나갔겠지요?

잠시 후에 복사아이들 코로 쏙 들어가서 둘 다 뒤로 발라당 넘어졌어요.

조금 후에 제대 바닥에 못이 떨어져 보니

예수님이 코를 막느라고 한 쪽 손에 못이 빠진 겁니다.

방구를 철학적으로 표현할 때 ‘내적갈등의 외적표현’ 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하느님의 소리가 있습니다.

FM 라디오 음악 방송을 더 잘 들으려면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하듯이

하느님의 소리를 잘 들으려면 하느님과 주파수가 맞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가장 영적인 주파수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양심을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양심입니다.

삶 자체가 하느님을 향한 익명의 크리스천도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사제의 강론, 말씀이라는 주파수가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3대 불감증이 있지요

말씀의 불감증, 은총의 불감증, 죄의 불감증

 말씀의 불감증도 두 가지인데

아예 말씀을 안 듣고 말씀 근처도 가지 않는 사람

반대로 오만 피정을 다 다녀서 귀는 고급인데

그렇게 주워들은 것이 겸손의 재료가 되지 않고

교만의 재료가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은총의 불감증 환자가 있습니다.

 피정 가서 깨닫는 것은 이미 와 있는 은총을 겸손하게 발견하고, 감사하고,

마지막에는 봉헌까지 해야 됩니다.

‘바람피는 남편이, 속 썩히는 내 새끼 그놈 때문에 내가 기도라도 하고 있구나!’

속 썩혔던 내 주변의 사람이 바로 은총덩어리입니다.

  우리가 감사 예물 바치는데 아주 인색해요.

감사는 좋은 결과가 일어났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야훼이레’

  저는 오히려 개신교 신자에게서 많은 예물을 받습니다.

신부님이 평화방송에서 감사예물을 미리 당겨서 바치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것 빚내서 가져왔습니다.

  세 번째 주파수는 성서를 듣고, 읽고, 쓸 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더 은혜롭고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것이 더 은혜롭습니다.

  내가 한평생 전교 한 번 못하고, 봉사 한 번 못하더라도

성서를 열심히 썼다면 주님께서 엄하게 심판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하느님의 중요한 주파수입니다.

  네 번째, 고통스런 체험,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습니다.

그러나 이 네 번째는 누구나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고통 자체는 악이지만 고통의 깊은 내면에 떨어졌을 때, 하느님을 체험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우리는 양심, 사제의 강론, 성서말씀, 고통 이 네 가지의 주파수를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느님의 소리 중에 특별한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거룩한 부르심’ 이라고 합니다.

  사제 수도자들도 처음에 성소를 내릴 때

누구나 똑같은 방법으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제 동창신부 중에 하나는 부활초 때문에 사제가 되었어요.

동창신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복사를 섰는데 부활전날 밤,

제의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축성이 안 된 부활초가 동강이 난 겁니다.

제의방 수녀님이 이것을 보시고

“어떤 놈이야!”

하고 혼을 내시려는데 신부님이 얼른 제의로 아이를 감싸시면서

“수녀님, 내가 넘어뜨려서 부러뜨렸어요.”

뒤에서 떨고 있던 그 아이는 그때 성소를 받아요.

‘사제는 이렇게 남의 죄를 대신하는구나! 나도 나중에 크면 우리 신부님 같은

신부님이 될 거야!’

교우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 날, 반 토막 난 부활초 뒤를 따라가면서

‘그리스도의 광명!’

그 거룩한 부활 전날 밤, 한 소년에게 사제성소가 내린 거예요.

  지금도 그 신부님은 부산에서 빈민촌을 다니면서

자기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신 아버지 신부님을 따라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랑 가장 친한 신부님, 신학교 7년을 내 옆 침대에서 함께 한 신부님은

그렇게 못 생겼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참 착해요.

못 생겼다고 제가 놀려도 그냥 웃어넘기고 말아요.

  그 신부님이 처음에 성소를 받게 된 동기가 자기 본당에 프랑스신부님이

오셨는데 얼굴이 조각처럼 잘 생기셨대요.

어느 날 저녁미사를 드리는데 스테인드 유리창을 통해서

빛이 쫘~악, 그 신부님을 비추는데 알랑들롱은 저리 가래요.

‘그래, 저렇게 잘 난 양반도 하느님께 한평생을 바치는데 나같이

못생긴 놈이 아까울 게 뭐가 있느냐!’

그게 신학교 들어가게 된 동기야.

하느님은 별걸 가지고 다 사제로 부르셨어요.

  우리나라의 첫 번째 대주교님이신 노기남 대주교님,

그분이 어렸을 때 노기남 소년의 집은 공소였습니다.

  아버지가 공소회장이시라 옛날에 서양신부님들이 말을 타고

공소에 오시면 한 달 동안 머무셨대요.

그분의 시중을 드시는 분이 노기남 소년의 어머니셨는데

끼니때마다 노오란 계란찜이 밥상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 나도 신부만 되면 저걸 매일 먹을 수가 있구나!’

노기남 소년은 계란을 먹기 위해 사제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찐 계란 하나로도 대주교를 만드십니다.

  저는 군종신부를 여러 해 동안 했어요.

저는 인제 원통으로 발령을 받아 나갔는데 1월 21일 새벽 세시에 전화가 왔어요.

“신부님, 애가 나오려고 그래요. 원주 기독교 병원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남편은 훈련을 들어갔데요.

그때만 해도 원주까지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조심스레 꼬불꼬불 산마치고개를 올라가는데

“신부님, 애가 나와요?”

그때 제 차가 포니 투, 새로 산지 삼일 되었는데 차에서 애를 받았어요.

급하게 군복 주머니에서 스위스 칼 하나를 꺼내고 실을 찾아보니 치실이

하나 있어서 그걸 풀어서 아이 받을 준비를 했어요.

애를 받아서 야전잠바에 싸서 안고 원주기독교병원 응급실에 갔어요.

조금 후에 당직의사가 와서

“신부님, 어쩌면 애를 그렇게 잘 받으셨습니까!”

그 후 석 달 동안은 서로 얼굴을 못 봤어요.

그 자매는 그 아이를 키우면서

“너를 살려준 신부님이 계시고 네 고향은 포니 투다.”

이 아이가 사제가 되어 지금 서울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있어요.

  그럼 이 김신부는 어떻게 신부가 되었느냐?

저는 사제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사제가 측은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고향은 인천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인천교회에 있는 수도원 옆으로 이사를 가서

집을 지으시고 창고 하나를 들였는데 그 창고 안에 방을 들여서

겨울동안 동네 걸인들을 다 데려다가 밥을 먹여주셨어요.

  토요일은 아버지와 제가 특전미사를 다녀오고

일요일 오전에는 어머니가 미사를 보러 가십니다.

  7월 14일,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그 날은 제 생일입니다.

태풍이 몹시 치던 그날은 일요일이었어요.

제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꽝!’ 소리가 나요.

기분이 이상해서 아버지를 찾으며 방마다 문을 열어보았는데

세 번째 방에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계셨어요,

응급처치를 하고 별짓을 다해보아도 아버지는 시체로 변해 버렸어요.

저는 그때 시체로 변한 아버지를 끌어안고

뻥 뚫어진 천장을 쳐다보면서 절규를 했지요.

"하느님 당신이 계시다면 우리 아버지 살려주세요. 우리 아버지만 살려주신다면

제가 사제 될게요.“

그때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신세가 이렇게 쫄딱 망했어요.

  15분을 아버지 시신을 잡고 절규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심장이 멈춘 지

40분이 지났을 때인데 아버지 손가락이 까딱까딱 하면서 살아나셨어요.

제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저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학교를 들어갔고, 사제가 되었고,

어제가 바로 사제가 된 지 28주년 되는 날이었어요.

  이 뒤에 계신 보좌신부님도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하느님이 사제로 부르실 때 똑같은 목소리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제가 피정을 가면 신자들이

“어머 신부님, 신부님과 사는 신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속으로 ‘니도 한 번 와서 살아봐라!’

  신자들은 사제가 완벽하길 원해요.

사제 한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다 보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오셔서 사목을 해도 불평하는 인간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한 사제에게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보려한다면

분명히 실망하고, 상처를 받고, 교회를 등지게 될 겁니다.

  사제가 완벽해서 사제서품을 받는 게 아닙니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살려고 하는 존재이지요.

사제는 사제단이 모였을 때만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기도해주십시오.

그 사제에게 은총의 비가 내릴 겁니다. 아멘

                                                                      김웅렬 신부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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