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민영화 반대’와 ‘철밥통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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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2-26 ㅣ No.10102

“김포·김해·제주·대구·광주·청주·양양·무안·울산·여수·사천·포항·군산·원주까지 14개의 지방공항을 통합관리하는 공기업으로 각 공항을 효율적으로 건설, 관리,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항공 수송을 원활하게 하고 국가경제의 발전과 국민 복지의 증진에 기여합니다.” 한국공항공사 홈페이지소개 문구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인천공항이 쏙 빠져 있다. 국가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 증진에 기여함은 똑같은데 특별히 왕따시키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인천공항이 국제공항, 특히 동북아 허브 공항을 지향하면서 별도의 공사로 독립시켰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독립 배경의 이야기가 아니다. 둘 다 똑같은 성격의 공기업임에도 ‘중복 기능’이니 ‘업무 비효율’이니 하는 흔하디 흔한 형용어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쌍둥이 공기업은 놀랍게도 둘 다 흑자를 기록 중이다. 애초부터 한국공항공사가 인천공항까지 독점했다면 과연 흑자 전환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혹자는 국내선과 국제선으로 기능이 다르다고 할지 모르나 지금 그런 구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국공항공사도 국제선 여객이 연간 1000만 명에 가깝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공항공사 측에서 ‘지나친 정부 규제로 인해 인천공항공사에 비해 영업 영역을 넓히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점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경쟁 체제’만 제대로 갖춰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그동안 대기업 특혜와 공공성 훼손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민영화에 결사 반대해 왔다. 그래서 박근혜정부가 최근 내놓은 것이 민영화를 하지 않는 대신 제2철도공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코레일과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방안이다. 그런데 코레일노조는 이것조차 민영화의 연막 전술이라며 파업 명분으로 삼고 있다.

지금 코레일의 누적 부채는 17조 원을 넘고, 부채 비율이 400%를 넘는데도 운송사업 총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50%나 된다. 이런 식으로 방치하다가는 과도한 부채로 인해 마침내는 민영화 외에 달리 구제 방안이 없다는 사회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무조건 민영화 반대, 개혁 반대만 외치다 머지않아 스스로 묘혈을 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는 자회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이 차라리 부처님 자비일 것이다. 파업할 시간이 있으면 공항공사들을 찾아가 생존 비법이나 전수받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민영화 유령은 요즘 의료계에도 출몰한다. 마치 ‘민영화 =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도 되는 양 반대 여론 조성에 애쓰고 있다.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는 국립병원과 보건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각 지자체 병원만 빼놓으면 100% 민영이다. 똑같이 이윤 창출을 위해 영업하면서도 의사가 설립하면 민영화가 아니고 다른 투자자들이 참여하면 민영화라는 논리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우스꽝스럽지도 않다. 이미 다 알고 있다. 의사들의 철밥통 지키기를 민영화라는 뿔 달린 귀신으로 분장한 것뿐이다.

정부가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의 일환으로 내놓은 원격진료나 의료기관 자회사 설립 등은 민영화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저 의료산업 발전과 환자들의 편의 증진에 목적이 있을 뿐이다. 원격진료는 환자들 입장에서 되레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사들이 이를 반대하겠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혹시 북한식 표현대로 환자들 앞에서 ‘왼새끼 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일이다.

병원 부대 사업 허용도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확대나 다름없다. 게다가 요즘 일반 병원들은 매년 수익구조 악화로 인해 경영상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칫 건강보험 수가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이렇게 되면 우리 국민의 건보료 인상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 병원에 대한 부대 사업 허용은 결국 건보료 절감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네 서민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코레일노조나 의사들이나 모두 대표적 기득권 집단이다. 힘없는 서민을 볼모로 삼아 사욕(私慾)만 챙기려 들어서는 안된다.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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