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통진당 綱領과 북한헌법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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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2-27 ㅣ No.10104

최대권/서울대 법대 명예교수·헌법학

지난 24일의 준비 절차를 거치면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절차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를 누려 집권한 후 그 권력을 이용해 자유 파괴를 꾀하는 정당의 퇴출을 내용으로 하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의 청구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그 정당의 해산 여부를 심판하게 돼 있다.

실제로 두 번의 정당(공산당 포함) 해산을 결정한 바 있는 독일 및 우리나라 헌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구체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주권, 권력분립, 법치주의, 시장경제 질서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정의한다.

정당의 강령(綱領)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통진당은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어’(강령)나가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진보적 민주주의 사회 실현’(강령)하려고 ‘우리사회의 근본적 혁신을 위해 투쟁하는 정당’(당헌 전문)임을 선언하고 있다. 북한 헌법 제4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 있다’와 위 통진당의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중주권 원리’(민노당 강령, 통진당 강령해설집)는 얼마나 같고 다른가?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헌법을 실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여러 선진 자유민주국가의 선례·판례·관행들을 참고하며 따르기도 한다. 자유 체제의 틀 속에서 활동하는 정당이 3대 세습의 수령독재 체제의 선언이나 선례를 그 강령에 인용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강령이란 정당이 집권했을 때 실현하려는 목표가 아닌가? 민중주권은 인민주권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민중주권·인민주권은 국민주권 원리에 위배되며, 개념상(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함한 어떤 독재도) 권력분립·인권존중 원리의 위배에 이르게 된다.

통진당의 통일에 관한 원칙 ‘자주와 평화가 보장되는 한반도, 민족의 통일 체제를 향해’는 민노당의 ‘자주 평화 민족대화합을 위하여’를 거쳐 북한 헌법 제9조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부드럽게 풀어서 적었을 뿐 그 뜻을 그대로 강령으로 선언해 따르고 있음을 규지(窺知)할 수 있다. 이 통일 3대 원칙에 따라 북한이 수십 년 간 주장해온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 철수, 한미동맹 체제 해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결의 주장들도 통진당은 그 강령에 그대로 싣고 있다. 나아가 통진당의 ‘코리아 연방제’(제18대 대선공약) 통일 방안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과 얼마나 같고 다른가? 이 안은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에는 물론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1994)에도 어긋난다.

통진당 강령의 ‘민생중심의 자주 자립 경제체제 실현을 위’한 ‘물 전력 가스 교육 통신 금융 등 국가기간산업’의 ‘국공유화’, ‘사회적 개입을 강화해 생산수단의 소유구조’ 다원화, ‘독점재벌 중심 경제 체제’ 해체,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지배구조를 갖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 육성·강화, ‘토지 및 주택 공개념’ 강화, ‘국공립대 확대’ 원칙들이 열거돼 있다.

국가 기간산업은 물론 모든 생산수단의 국가·사회협동단체 소유의 원칙 및 개인 소유는 소비 목적을 위해서만 허용되는 계획경제(command economy)의 북한 헌법과 시민의 사유재산권의 보장, 계약 등 경제활동의 자유, 사영기업 국공유화 금지 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의 대한민국 헌법 가운데 어느 쪽을 지향하고 있고 어느 쪽에 위배되는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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