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주님맛]2월 5일.6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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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규 [Augustine13] 쪽지 캡슐

2000-02-06 ㅣ No.1413

 앞으로 그날 그날 관련 복음은 그냥 말띠노 아저씨의 [말씀]을 참조 하시길. 아저씨가 애써 친 글을 드래그만 하는 게 너무 얍쌉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용량도 많이 차지하고......앞으로 [주님맛]을 읽으실 분들은 그날의 [말씀]에 실린 복음을 먼저 읽어주세요.

 

 2월 5일

 

 사람들은 때때로 어떤 특별한 일이 나에게 생기기를 바라곤 합니다. 그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그 특별한 일이 계기가 되어 내 자신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크게 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깊이 빠질수록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잘 못 보게 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현실의 삶은 우리가 벗어나야만 되는 굴레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 안에서 내가 선사 받은 이 삶은 나름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평범한 일상 생활 안에서 늘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비범한 것은 평범한 것 속에 있다."는 글귀를 떠올리며 나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매일 매일의 삶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특별한 날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걸쎄...주님 맛들이기가 의외로 수준이 높군. 질문에 막상 답이 안떠오를 정도로 말야. 내가 이 정도 인데 우리 줄학교 애들은 머리 터지겠군. 캬캬. 평범한 가운데에서 특별한 것을 끄집어내려면 관찰력을 키워야 하겠는디......솔직히 요즘 내가 하루 하루 무얼 했는지 생각해보면 언제나 답은’한게 없다’거든.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하며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지. 그런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는 날로 바꾸려면 난 살아있어야 할 것 같다. 죽은 듯이 시간을 킬링 하지 말고 무언가 목표를 향해서 한발씩 다가가는 그런 기분을 느낀다면 절대로 내게 주어진 하루 하루는 쓸데없이 지나가진 않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운 앨범을 내기 위해(쿠쿠) 곡 작업을 하나 하나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즉 무미건조한, 반복되는 일상을 꿈을 이루어 가는 날들로 전환 시키면 어느 정도 의미가 부여되진 않을까?

 

 이 질문을 만든 신부님들은 이러한 대답을 원했는진 모르지만 주님 맛들이기엔 정답이 정해 진 것이 아니니 줄학교 학생 여러분도 억지로 질문의 의도에 자신을 짜맞추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길 바랍니다.

 

 

 2월 6일

 

 나를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굳이 이 친구들과 떨어져 나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낯선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우리와 똑같이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쉬지 않고 길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록 힘들고 지치셨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기쁨을 나누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기쁜 소식)의 전달자입니다.

 

 친구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 경험을 생각해보세요.

 가장 친한 친구중에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친구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솔직히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섣불리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할지언정 만약 서로 자기가 믿는 교리만 내세우다간 서로 상처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종교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우리 줄학교 학생 대부분의 머리 속에 있는 것 같다. 친구들끼리 도시락 먹으면서 성호를 긋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말로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써 받는 즐거움이나 혜택을 친구들도 느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리의 빨간 띠 두른 아저씨들 처럼 무작정 예수 믿으시오를 외치란 말이 아니다. 서로간의 강한 유대가 없는 상황에서 강요된 종교는 그 효력을 상실한다. 단지 그 친구와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주님을 믿는 우리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우린 그 친구에게 주님을 전하는 것이 된다.

 

 나에겐 대학 와서 지금껏 사귀고 있는 친구가 있다. 난 한번도 그 친구에게 직접적으로 ’너 성당 다녀’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얘기에 간간이 성당 얘기나 교사 얘기 등이 섞여서 어느 정도 호기심은 불러 일으킨 것 같다. 그리고 가끔 그 애가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며 그럴 때 나 같은 경우엔 신을 믿음으로써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얘기해 주곤 했다. 비록 아직도 그앤 종교가 없지만 조금씩 그 애 마음에 변화가 있길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때 기도란 것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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