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한우 갈비탕을 먹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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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철 [skanenfl] 쪽지 캡슐

2008-07-11 ㅣ No.6212

 

요즘 한국에서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정부와 여당 그리고 경제단체와 의사협회·의학학회 등이 전방위로 나서 벌이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시식 행사는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멀쩡히 자국산 쇠고기가 있는데도 국회의원들과 행정부 총리까지 나서 외국에서 들여오는 쇠고기를 홍보하느라 법석을 떠는 나라는 아마도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 

쇠고기 시식회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지난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가 열렸다. 물론 이 행사에도 광우병과 관련한 시민단체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육류수출업체가 주관한 행사였다. 

따라서 이런 행사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쇠고기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대한상공회의소나 의사협회 따위가 나서서 미국 쇠고기 시식 행사를 벌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납득할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집권 여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떼거지로 몰려 그것도 국회 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시식 행사를 벌였다는 점이다. 8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회장 차명진)가 주관한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에는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이윤성 국회 부의장 내정자 그리고 안상수 전 원내대표, 정의화·심재철 등 한나라당 국회의원 38명이 참가했다. 

몇달 냉동됐던 수입육이라도 미제라면 맛있나 

8일 MBC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기자들이 다가가자, "이거 한우보다 더 맛있는데…" "그래 맛있어, 한우보다 나아" 소리를 연발했다. 특히 심재철 의원 같은 이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도 특정 위험 물질만 아니면 먹어도 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우농가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시식회를 한다고 해도 그냥 조용히 먹으면 됐지, 그것을 굳이 한우와 비교해서 말하는 그들의 정신 상태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의 고향이 미국이나 캐나다일 리는 없지 않은가? 하기야 대통령부터 미국에 가서 몬테나산 스테이크를 자랑스럽게 잘랐던 판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게다가 냉동창고에서 수개월이나 묵었던 수입 고기가 한우보다 더 맛있다니 그들의 미각은 아주 특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기맛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돈 아까워서 아직 품질 좋은 한우를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던 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저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약소국 기질 때문이 아닐는지. 

그들은 ''광우병? 정치적 거짓말 선동''이라는 플래카드까지 걸어놓고 시식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새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싶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미국산 쇠고기가 새로 들어올 때 시식회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희극적이게도 그들이 국회식당에서 먹은 쇠고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 들여 놓은 ''30개월 미만 살코기''였다. 그 때는 미국 업자들도 불평했을 정도로 까다로운 위생 조건에서 수입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3일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을 통해 "총리와 보수단체의 시식회용 고기는 수입위생조건 개정 이전에 들어온 쇠고기"라고 지적하고 "30개월 이하 뼈없는 쇠고기로 무슨 안전성을 증명하겠다는 것인지 이는 국민을 호도하려는 쇼"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국한우협회는 폭락하는 한우값은 뒷전인 채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서둘러 여는 정부를 격렬히 성토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9일 오후 성명을 내고 "한국 의사들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마치 의사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해 보건 의료인들의 명예를 심대하게 실추시킨 데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며 시식회에 출석한 인사들의 보직 사퇴를 촉구했다. 

아무튼 그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들여 놓은 안전한 쇠고기를 먹으면서 달라진 검역 조건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했으니 국민들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이전 수입 조건으로 들여온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홍보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엠파스에 뜬 블로그 ''creep 0126''의 지적은 정확하고 신랄해 보인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가 수입한 쇠고기를 홍보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당시의 위생 조건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시식 파티를 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관대한 수입 조건으로 수입된 미 쇠고기로 만든 설렁탕과 갈비탕, 거기다가 곱창구이와 곱창전골 등의 메뉴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만 드실 것이 아니라 손자 손녀와 함께… 이번에는 국회의원들이 유모차를 끌고 시식회에 나가 볼 차례이다. 귀여운 손자에게 미 쇠고기 곱창구이를 카메라 앞에서 흔들어 주는 모습을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미 쇠고기 전도... 참 희한한 나라 

한국의 국무총리가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하고 다니는 것도 참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시행장을 방문하여 냉동창고에서 진지하게 고기 냄새를 맡는 장면을 보여준 바 있는 한승수 총리는 2일 한국기독교연합회 회장을 만나 자리에서 "우리 집 손주도 있고 해서 어제 (미국산) 쇠고기를 사다 가족들과 함께 먹었는데 맛있더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미국 쇠고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한승수 총리는 한때 자원외교를 펼치겠다고 하더니 미국 육류자원의 홍보 도우미로 나서기로 작정한 것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미국산 ''어륀지''’를 전도한 데 이어 이제는 국무총리라는 사람마저 미제 고기를 전도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6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 앞서 영국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 자신부터 미국 쇠고기에 대해 두려움 없이 먹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G8정상회담에 다녀 온 다음에는 우리 청와대 가족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한 번 시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대미 쇠고기 협상을 반성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도 개운치 않은 이 대통령이 먼저 나서 이런 발언을 해대니 너도 나도 뒤질세라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 홍보하는 촌극이 빚어졌다고 본다. 대관절 미국을 향하는 대통령의 맹신은 어디까지인지 두려워진다. 

이 대통령은 6·15선언과 10·4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같은 민족의 국가 정상간 합의는 그리도 쉽게 무시하면서 장관 이하 수준에서 합의한 한미 쇠고기 협상은 거의 신성시하는  대통령을 보며 장차 남북관계에 드리워질 먹구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시를 만나 파안대소하는 대통령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적잖이 침울하다. 우리는 그들의 한도 없고 끝도 없는 미국 추앙을 이제는 더 이상 보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평소 미국에 반감 같은 것이 전혀 없던 국민도 대통령 때문에 미국을 달리 보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대통령 이하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그리고 각종단체 임원들까지 나대면서 미국 쇠고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분명히 도착적인 현실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는 동족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함께 절망감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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