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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보듬고 다시 일어선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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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재 [thomas3004] 쪽지 캡슐

2008-07-17 ㅣ No.6401

 
 
 
촛불 보듬고 다시 일어선 성직자
기사입력 2008-07-17 17:32 기사원문보기
 
 
4대 종단 잇따라 비폭력 집회 이끌어… ‘심상찮은 현시국’ 반증

종교인이 다시 일어났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졌던 이들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은 현 시국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매우 당황한 표정이다. 최고위층이 교계 최고 지도자에게 촛불시위 반대 성명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성직자에게 “종교행사라고 해도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연좌하는 것은 집시법 위반”이라며 형사처벌을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사법처리를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왼쪽부터) 김인국 신부, 전종훈 신부, 김영식 신부.
사제단은 종교계의 사회 참여 흐름을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민주화 운동 자체를 대표할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데 이어, 2008년 촛불정국에서도 6월 30일부터 세 차례 시국미사를 통해 촛불집회의 비폭력 평화 기조를 확고하게 정착시킴으로써 촛불을 일부 과격세력의 폭력 집회로 몰아가려던 정부의 허를 찔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80년대 사제단을 대표하던 함세웅 신부, 김병상 신부, 문규현 신부, 송기인 신부 등을 사제단 1세대라고 할 때, 현재 전종훈 신부, 김인국 신부 등 사제단 상임위를 구성하고 있는 신부들은 사제단 2세대를 대표한다. 전종훈(52) 신부는 2006년 전임 대표 문규현 신부가 물러나면서 사제단 대표로 선출됐다. 전 신부는 1990년 사제서품을 받고 1991년부터 사제단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단식 기도를 했고 2006년 5월에는 평택 대추분교 옥상에서 문정현 신부, 김인국 신부, 배인호 신부 등과 함께 경찰의 대추분교 진입에 항의했다. 정세 판단과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전 신부는 전곡 성당과 염리동 성당을 거쳐 현재는 수락산 성당 주임 신부로 재직하고 있다.

사제단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인국(45) 신부는 시국미사에서 연일 어록을 쏟아내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교구에서 일반 신자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신부는 대중적인 친화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만 김 신부는 사제단 내에서도 발군의 언어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청주교구 금천 성당에 재직하고 있다.

사제단 상임위 통일위원회 위원장 김영식(49) 신부는 식량 지원을 비롯한 대북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사제단은 해마다 금강산 평화 기행을 통해 북한 지역 교우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백두산 및 평양 방문 사업도 진행한다. 1994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안동 옥산성당에 재직 중이다. 사제단의 현실 참여와 관련해서는 전종훈 신부, 김인국 신부, 김영식 신부가 큰 틀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제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나승구(45) 신부는 사제단 회계와 사무처를 관리하며 살림꾼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전종훈 신부, 김영식 신부와 함께 국보법 폐지 단식 기도에 참여했다.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현재 서울교구 신월동 성당에 재직 중이다. 상임위 부총무 배인호(40) 신부는 1996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2004년 국보법 폐지 단식 기도를 기점으로 사제단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배인호 신부는 사제단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사제단이 본의 아니게 촛불정국의 전면에 부각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촛불은 대책위와 시민의 몫”이라면서 “그러나 정부가 끝까지 소통을 거부하면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 신부는 현재 상주 화령 성당에 재직하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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