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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 금요일의 전례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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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신부 [jpatrick] 쪽지 캡슐

2000-04-21 ㅣ No.88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성금요일 강론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오늘 전례의 구성과 의미에 대해 함께 묵상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죽음의 산 골고타로 오르셨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계약을 위하여 십자가 제사의 희생 제물로 죽으신 날이며, 우리의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 땅에 묻히신 날입니다.

 

이 날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기 위하여 금식과 금육을 지키며,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습니다. 또 모든 성사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성사 집행 또한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례하는 수님 수난 예식은 전세계적으로 오후 3시,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숨을 거두신 그 시각에 거행하는 것이 올바른 전례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후 3시에 많은 신자분들이 예식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목적인 관점에서 저녁으로 시간을 옮겨 거행합니다. 오후 3시에는 그래서 참여할 수 있는 신자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함께 바쳤습니다.

 

오늘 주님 수난 예식은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 예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성찬례를 거행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 전례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후대에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 예식이 도입되어 오늘과 같은 순서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의 핵심인 말씀 전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묵상하며 붉은 색 제의를 입고 제단 앞에 엎드려 인류를 대신해 가장 낮은 모습으로 돌아가신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합니다. 또 제대에는 십자가도, 촛대도, 제대포도 갖춰두지 않습니다. 제대는 바로 그리스도의 돌무덤이요, 제대를 중심으로 보인 우리는 교회의 창립자께서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며 상주가 되어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고 참회하기 위해 모든 화려한 꾸밍을 하지 않습니다.

 

제1독서로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통받는 야훼의 종, 무죄한 이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죄로 얼룩진 인간과 세상이 새로운 빛을 보게 되었음을 일깨워줍니다. "실상 그는 우리가 앎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이어 제2독서로 히브리서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당하고 유혹을 받으셨던 분, 그러나 철저히 하느님께 복종함으로써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의 허약한 신앙을 굳게 지킬 것을 다짐하는 공동체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엄하게 요한이 전하는 수난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체포의 순간부터 심문과 고문, 제자들의 배반과 백성들의 조롱 속에서 죄없으신 분이 죄인으로 판결받으시고, 십자가의 형틀을 메고 골고타를 오르시고, 무지한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간청하시며 숨을 거두시고, 돌무덤에 묻히신 구세사의 절정 부분을 모두가 참여해서 함께 읽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죽음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 강론이 끝나면 보편지향기도로써 말씀 전례를 마칩니다. 이 보편지향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해 아버지께 기도드리신 예수님처럼 교회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말씀 전례에 이어 십자가 경배를 합니다. 사제는 죽음의 형틀이었던 십자가를 들고 세 번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라고 노래합니다. 이에 신자들은 "모두 와서 경배하세"로 응답합니다. 그리고는 깊은 절로써 십자가에 대한 경의를 표합니다. 죄의 대가요, 형틀이요, 수치스런 죽음의 표시였던 십자가조차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희망의 표징이 되었음을 묵상하며,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순간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식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이 죽음에서 생명에로 나아가는 십자가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할 때가 더 많은 것이 문제이지만, 십자성호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십자가를 짊어질 것을 다짐하는 기도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세속적으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십자성호를 그으며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십자가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영성체 예식을 갖습니다. 과거 교회 전통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혀 계신 동안 금식을 지키기 위해서 영성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이날 영성체를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1955년 전례개혁 이후의 일입니다. 그래서 어제 주님의 만찬미사 때 오늘 모든 신자들이 모실 성체를 미리 축성해 두었고, 잠시 후 수난감실에서 성체를 모셔다가 영성체를 하게 됩니다. 이는 비록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며 성찬례를 거행하지는 않지만, 가장 완전한 희생과 사랑의 성사인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더욱 깊이 일치할 수 있다는 전례정신에 따른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의 전례는 십자가의 죽음과 그로인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죄인의 죽음이 아닌 무죄한 이의 죽음이요 그래서 죄인의 구원을 가능케 해준 희망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록 경건하고도 침통한 마음으로 성금요일을 보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부활과 구원에 대한 강한 기다림과 열망이 자리잡고 있음을 오늘의 전례는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의 전례에 깊이 동참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는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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