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2005년 4월 24일 월례회의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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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5-04-28 ㅣ No.9


                       훈 화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윤병길 지도신부)

형제자매, 레지오단원 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교회 안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돌아가셨고, 또 새로운 교황 성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의 서거에 즈음해서 전 세계 수많은 이의 관심이 바티칸으로

모아졌고, 우리는 그동안 교황 성하께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를

쏟으셨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천주 교회는 명동성당에서 추기경님과

주교님들의 공동집전으로 돌아가신 교황 성하를 위해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참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면서 그분이 하느님 품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원했습니다. 바로 그 현장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번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톨릭 신자인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톨릭 신자가 되길 참으로 잘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신앙이 세상 안에서 참되다는 것이 드러나는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음 교황 성하를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개막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였고,

그 결과를 주목하면서 새로이 탄생하실 교황 성하를 위해 기도드렸고,

성령께서 보내주실 교황 성하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셉 라칭거 추기경님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 탄생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오늘 그분의 즉위 미사가

잠시 후에 로마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한국 천주 교회 주교단은 내일 새로운 교황님의

즉위 경축 미사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하게 됩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이러한 큰 행사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재주교님을 대신해서,

그리고 교구 사제단의 일원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교황님을 모시고 변화가 극심한 이 세상에서 주님의 참된 진리를

증거하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도구로 봉헌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도

새로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교황님처럼 평화의 도구로 쓰일 것을 다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영적 독서는 평화를 찾고 덕을 닦는 참된 그리스도 신자의 모습을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두 분 교황 성하를 위해 기도하면서 점점 거세어지는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교회가 하느님의 진리를 어떻게 증거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방법을 찾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오히려 잃어버리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변치 말아야 할

진리가 있음을 당신의 삶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또한 베네딕토 16세도

세계 평화와 일치를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 볼 때나 공동체를 볼 때나 평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권력이나 재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려는 갈망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데, 그 생활 안에 평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준주성범의 말씀은 자신의 내적 생활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강조합니다. 외적인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신의 내적 생활, 영성 생활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일에 매달리다보면 하느님께 나아가는 성덕을 쌓기보다는 오히려 세속적인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속적인 욕심은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기심을 낳고, 공동체를 분열로 몰아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어리석은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만약 교황님께서 외적인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신 분이었다면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을 존경했겠습니까?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이점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단체 활동을 하다보면 때때로 단체원의

숫자나 겉으로 드러난 결과에 마음을 빼앗길 위험이 많습니다. ‘어떤 교육을 몇 백 명이

받았다, 어떤 피정에 몇 백명이 참석했다.’ 라고 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것을 자신의

업적인양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흔 아흔 마리 양은 그대로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마태 18,11)을 찾아나서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정성을

보신다”(신명 13,4)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기 모인 분들은 레지오 간부입니다.

각자 자기 공동체의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봉사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외적인 유혹은 우리의 책임감을 자극하여 더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평화의 일꾼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이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없다면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힘을 믿으며

온갖 유혹과 역경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내 자신의 욕심과 싸워 이김으로써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평화를 누릴 때 우리는 은총 속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의 길을 성실히

따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임종 직전까지도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느님 뜻에

의탁하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시며 돌아가신 교황 성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선출되신 후 자신을 ‘보잘것없는 주님 포도밭의 일꾼’이라 표현하신 새 교황 성하를

보십시오. 우리 자신도 주님 앞에 겸손한 일꾼으로서 불림을 받았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주님의 가장 소중한 자녀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영적 독서 : 평화를 찾고 덕에 나아가는 열정(준주성범 1권 11장, 2005.4.24)

1. 남의 말, 남의 일 참견 말고 우리에게 관계없는 일을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마음의 평화를 누리겠는가. 우리가 남의 일에 간섭하고 바깥일에만 몰두하면서 안으로 회상함이 적고 또 별로 없으면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누리겠는가. 스스로 자기 사정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평화를 누리겠으니 그런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2. 많은 성인이 그처럼 완덕에 나아갔고 관상생활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 성인들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세속 욕심을 물리치고,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정을 붙여 자유스럽게 자기를 지배하게 됨으로 그런 성덕에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우리 욕심만 채우려하고 사라지는 세상사에 골몰해서 산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악습을 고쳐 나가지 못하고 날로 진보하기를 게을리 하여 항상 싸늘하고 미지근하게 지낸다.

3.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겨 나가고 세상사에 끌리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정을 맛들이게 될 것이고 세상을 초월하는 관상의 어떠한 점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크고 또 홀로 하나인 장애거리는 욕심과 육욕을 전혀 끊지 못함이고, 그래서 성인들이 가신 완전한 길을 가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조그마한 역경만 당해도 그저 번민하고 곧 인간의 위안을 찾으려 든다.

4. 용감히 역경과 싸워나가려고 애쓰면 하느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도우심을 볼 것이다. 하느님은 은총의 힘을 믿고 싸워나가는 사람들을 도우시고 그는 우리와 싸울 기회를 마련해 주시면서 역경을 물리치게 해주신다. 겉으로 지켜나가는 것만으로 완덕에 이르려하면 우리 신심생활은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뿌리에 도끼를 대고, 우리 욕정을 베어버려야 정신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5. 일년에 악습 하나씩만 고쳐나가면 오래지 아니해서 완전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덕을 닦기 시작할 때에는 성의가 많아 착하게 깨끗이 살아가더니, 서원한 후부터는 게을러짐을 깨닫는다. 우리는 매일 더 열절히 살고 덕에 진보해야 하겠는데 시초에 할 때처럼 열성이 있으면 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초에 좀 힘들여 우리를 다르시면 그 후에는 무엇이나 쉽게 해나갈 수 있으련만.

6. 오랫동안 힘든 것을 버티기도 어렵지만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더 어렵다. 적고 경한 일을 이길 줄 모르니 어찌 극난한 일을 이겨나가랴. 좋지 못한 경향이 있거든 시초에 없이 하라. 좀 두면 차차로 그 경향이 커져 없이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네가 현명하게 살면 너는 얼마나 평화롭겠으며, 남을 얼마나 즐겁게 해 줄 것이냐. 이런 생각을 하면 너는 영신사정에 진보하려 애쓰게 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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