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인쇄

김정욱 [jwyskh] 쪽지 캡슐

2009-03-05 ㅣ No.1111

제가 존경하는 신부님의 웹사이트에 이프로 란 이름으로 올린 글입니다 (이프로 부족이란 의미예요 :). 그 신부님이 지어주신 별명이랍니다) . 추기경님 생각이 떠나질 않아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글을 저에게 또 하나의 큰 가르치심을 주신 추기경님께 봉헌해 드리고 싶습니다. 추기경님, 당신 뜻을 조금이라도 따르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또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드리며 살겠습니다.
*********************************************************
 
 
아주 어렸을때 였습니다. 첫영성체 교리를 받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때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셨습니다.
'미사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신부님이 성체 축성하시는 시간이야. 그래서 그때 드리는 기도를 하느님이 더 잘들어 주신다.’
그 이후로 신부님이 성체 축성 시간이 되면 미사시간 중 온갖 분심에 헤매다가도 얼른 집중해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제가 갖고 싶었던 것, 시험에서의 좋은 성적,,,무었이 그리도 바라는 것이 많았던지 혹 하나라도 잊어 버릴까 그 짧은 시간에 다 외우기 위해 집중했던 기억이 납니다.

추기경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에게는 추기경님의 얼굴사진이 들어있는 상본이 하나 있습니다. 인자하신 모습의 그 사진밑에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글이 써있었습니다. 아마도 추기경님은 그 말씀을 평생의 지표로 삼으셨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참 추기경님에 어울리는 멋진 말씀을 선택하셨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년간 책꽂이 한 구석에 놓여 있던 그 상본을 가끔씩 볼때 마다 그 말씀을 문득 문득 되돌아 보면서 그렇게 세상을 살아보신 추기경님을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 내가 정말 이렇게 무딘 사람이었구나,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는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기도만 말하는 생활을 해 왔구나라는 큰 가르침을 추기경님의 상본이  주었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기억할 수 있는 순간 부터 치더라도 30년이 넘게 다녀온 성당이었고 미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미사시간, 가장 중요하다던 성체 축성때 마다 신부님을 통해 선포되던 말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추기경님의 말씀이 바로 이 미사중 가장 중요한 순간의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때야 불현듯 깨닳았습니다.

아… 추기경님은 이 말씀을 평생의 묵상 자료로 삼으셨구나.. 이 말씀을 외우실때 마다 주님께서 당신께 하시는 말씀을 듣고 듣고 또 들으셨구나…

저는 그 시간에 제속에 있는 기도만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 제 말을 하기에만 바빴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부3 의 한장면이 생각납니다. 알파치노가 후에 교황요한바오로 1세가 되시는 추기경님 (가상이겠지만)을 찾아갔을때 그분은 연못에 있는 돌을 깨고 하나도 젖어 있지 않은 돌의 내면을 보여 주시며 수백년 연못에 있었으면서도 내면이 하나도 젖지 못한 돌의 모습이 흡사 우리의 모습이라 말하셨죠.

아 내가 그랬구나…

지금도 저의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말하는 기도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적어도 문제가 무었인지는 알고 있으니 먼 훗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미국에 있을때 (보스톤) 추기경님이 뉴욕을 방문하셨습니다. 모국에 수해가 났던 해였습니다. 수해를 걱정하시고 본인과 사형수의 인연을 말씀하시며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던 강론을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을 직접 보기위해 뉴욕으로 애엄마와 내려 갔었는데 미사가 끝난후 지하실에서 추기경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어려우신 분이라 그러신지 모두가 주위를 맴돌고만 있었는데 이런 찬스를 놓칠 제가 아니었습니다. 얼른 옆으로 가서  ‘추기경님, 보스톤에서 추기경님 만나뵈러 왔는데 사진 한장만 찍어 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 인자한 표정으로 좋다고 말씀하시고 ‘자네는 참 키가 크구만, 보스톤에는 우리 교우가 얼마나 되나’고 물어 오셨습니다. 이 장면이 엠비시 뉴스에 찍혀 본의아니게 모국의 지인들로 부터 전화도 받고 그랬더랬습니다. 그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30년은 넘어 보이는 추기경님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들고 와서 추기경님께 보여 드렸습니다.그때 찍은 사진이 성모상 옆에 모셔져 있는데, 그 사진을 전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추기경님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 가셨답니다. 마음 한구석이 너무 허전 합니다. 사진 속의 추기경님은 여전히 인자하게 웃고 계십니다. 주님, 추기경님께 영원한 평화를 주소서. 추기경님, 저희와 저희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소서.

아멘.


405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