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나해 연중 제29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나해연중제29주일> 1122_ me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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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ㅣ No.2287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7.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나해 연중 제29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 I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7.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정의로움’(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들을 꼭 시청/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복습 2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나해연중제29주일> 나해 연중 제29주일

 

이사야 53,10-11; 마르코 복음서 10,35-45; 히브리 4,14-16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 II, 제399-410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그는 제 고난(suffering)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지식/경험(knowledge)으로 흡족해지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감당하리라/거두어들이리라(bear)" (이사야 53,11)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코 복음서 10,43-44)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갑시다" (히브리 4,14)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A.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9:56[즉, 19분56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권고를 드리는 이유는, 진리인 특정 형이상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는 해당 용어가 어떠한 문맥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또한 함께 살펴보아야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고(understand) 그리하여, 필요시에 꺼집어 내어 판단의 기준/잣대로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기억할(memorize) 수 있기 때문입니다. name="4th_suffering_song"]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29주일 제1독서는, 매년 성 금요일 제1독서(이사야 52,13-53,12, 네 번째, 고통받는 종의, 노래)에 포함되는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구속/속량 교의(dogma)의 구약 성경 근거인, 네 번째, 고통받는 종의, 노래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전문[주: 필자에 의한 우리말 번역문 포함]을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는 해설이어서, 그 전문을 필자가 우리말로 번역하였으며, 필독을 권고드린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goodfri.htm <----- 제1독서 해설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52:13-53:12. This fourth Song of the Servant is one of the most commented on passages in the Bible, as regards both its literary structure and its content. From the point of view of structure, it interrupts the hymn-style of chapter 52 (which is taken up again in chapter 54); the style here is more reflective; the theme, the value of suffering. In terms of content, the song is unusual in that it shows the servant triumphing through his humiliation and suffering. Even more than that -- he makes the pains and sins of others his own, in order to heal them and set them free. Prior to this, the idea of "vicarious expiation" was unknown in the Bible. The passage is original even in its vocabulary: it contains forty words that are not to be found elsewhere in the Bible.

 

52,13-53,12. 바로 이 종의 네 번째 노래는, 그 문학적 구조와 그 내용에 관하여, 성경에 있어 가장 많이 주석된 구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구조의 관점에 있어, 이것은 (제54장에서 또다시 택해지는) 제52장의 찬미가 양식(hymn-style)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며, 그리고 여기서 그 양식은 더욱 더 재귀용법적(reflective)이며 그리고 그 주제는 고통받음(suffering)의 가치입니다. 문맥의 표현에 있어, 이 노래는 이 종이 자신에 대한 모욕과 고통받음을 통하여 승리함을 보여주는 점에 있어 이례적(unusual)입니다. 심지어 이보다 더, 그는 다른 이들의 고유한 고통(pains)들과 죄(sins)들을, 그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고유한 것들로 만듭니다. 이것 이전에, [바로 이러한 내용의] "대속(代贖)[대인속죄(代人贖罪), vicarious expiation]"(*)이라는 관념은 성경에 있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심지어 그 어휘에 있어서도 다음과 같이 독창적(original)입니다: 이 구절은 성경에 있어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40개의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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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용어들인, 이들 번역 
용어들의 출처, 기원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53.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7.htm [개정판 가톨릭대사전 오류]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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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10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The poem, which is very carefully composed, divides into three stanzas: the first (52:13-15) is put on the Lord's lips and it acts as a kind of overture to what follows --taking in the themes of the triumph of the servant (v. 13), his humiliation and suffering (v. 14), and the stunning effect that this has on his own people and on strangers.

 

매우 신중하게 지어진 이 시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연(聯, stanzas)들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52,13-15)는 주님의 입술들 위에 얹혀지며 그리고 이것은, 그의 모욕 및 고통받음(제14절), 그리고 이것이 그의 고유의 사람들에게 및 이방인들에게 계획 중인 깜짝 놀라게 하는 결과라는, 이 종의 승리의 주제들(제13절) 안에서 작동중인, 뒤따르는 바에 대한 일종의 서장(序章, overture)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The second stanza (53:1-11a) celebrates the servant's trials, and the good effects they produce. This is spoken in the first person plural, standing for the people and the prophet: both feel solidarity with the servant of the Lord. This stanza has four stages to it: first (53:1-3) it describes the servant's noble origins (he grew up before the Lord like a young plant: cf. v. 2) and the low esteem in which he is held as a "man of sorrows". Then we learn that all this suffering is atonement for the sins of others (53:4-6). Traditionally, suffering was interpreted as being a punishment for sins, but here it is borne on behalf of others. This is the first lesson to be learned by those who see him "stricken, smitten by God, and afflicted", and it marks the climax of the poem. Thirdly (53:7-9), the point is made, again that he has freely accepted suffering and meekly, offers himself as a sacrifice of atonement (he is like a lamb, like a sheep). His death is as ignominious as the suffering that precedes it. Finally (vv. 10-11a) we are told how fruitful all this suffering is: like the patriarchs of old (the text seems to imply) the servant will have many offspring and a long life and be a man of great wisdom.

 

두 번째 연(聯, stanzas)(53,1-11ㄱ)은 이 종의 시련(trials)들을, 그리고 이들이 산출하는 선한 결과들을을 경축합니다. 이것은, 이 백성과 이 예언자를 나타내는, 제1인칭 복수로 말해지며, 그리고 둘 다 주님의 종과의 연대(solidarity)를 느낍니다. 이 연은 이 연대를 향하는 다음과 같은 네 개의 단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53,1-3) 이 연은 이 종의 고귀한 태생(origins)을 묘사하며 (그는 주님 앞에서 새싹처럼 자랐다: 제2절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한 명의 "후회/고뇌하는 사람(a "man of sorrows")으로서 유지되는, 바로 그 비천한 평가를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이러한 고통받음(suffering) 모두가 다른 이들의 죄들에 대한 속죄(atonement)임을 알게 됩니다 (53,4-6). 전통적으로, 고통받음은 죄들에 대한 어떤 벌인 것으로서 해석되었으나, 그러나 여기서 고통받음은 다른 이들을 위하여 거두어들이게 된 것입니다(is borne)(*). 이것이 바로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 로 보는 자들이 배우게 될 첫 번째 교훈(lession)이며, 그리고 이것은 이 시의 절정(climax)을 눈에 돋보이게 합니다. 세 번째로(53,7-9), 그가 고통받음이미 자유롭게 받아들였으며 (has freely accepted) 그리고 온순하게, 자기 자신을 한 개의 속죄의 희생 제물(a sacrifice of atonement)로서 [그는 한 마리의 어린 양(a lamb)과 같고, 한 마리의 양(a sheep)과 같습니다] 제공한다는 주안점이, 또다시, 마련됩니다(is made). 그의 죽음은 이 죽음에 앞서는 고통받음만큼이나 치욕적(ignominious)입니다. 끝으로 (제10-11ㄱ)  우리에게 이러한 고통받음 모두가 얼마나 결실이 많은지(fruitful) 다음과 같이 말해집니다:  (이 본문은 다음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옛날의 선조들처럼 이 종이 수많은 후손을 가질 것이고 그리하여 장수할 것이며 그리하여 커다란 지혜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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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영어본 성경들의 이샤야서 53,11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어로 "bear"로 번역되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 표현, "거두어들인다" 에 대한 더 자세한 고찰은 다음의 글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히브리 9,15.24-28)의 해설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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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third stanza (53:11b-12) the Lord speaks again, finally acknowledging that his servant's sacrifice is truly efficacious: he will cause many to be accounted "righteous", that is, he will win their salvation (v. 11) and will share in the Lord's spoils (v. 12).

 

세 번째 연(聯, stanzas)(53,11ㄴ-12)에서 주님께서는 또다시 말씀하시는데, 당신의 종의 희생이 진실로 효능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최종적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는 많은 이들로하여금 "의로운(righteous)" 자들로서 셈하여지도록(be accounted) 할 것입니다, 즉, 그는 그들의 구원을 획득할 것이며 (제11절) 그리고 주님의 전리품(spoils)들에 함께 할 것입니다 (제12절).

The fourth song of the servant of the Lord was from very early on interpreted as having a current application. When the Jews of Alexandria made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Old Testment (the Septuagint) around the second century BC, they tinkered a little with the text to indicate that the servant in the poem stood for the people of Israel in the diaspora. Those Jews, who encountered huge obstacles in their effort to maintain their identity in that Hellenistic and polytheistic environment, found comfort in the hope that they would emerge enhanced, just like the servant. 

 

주님의 종에 대한 이 네 번째 노래는 매우 일찍부터 어떤 현재의 적용을 가지는 것으로서 해석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the Jews of Alexandria)들이 기원전 2세기경에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칠십인 역)을 만들었을 따에, 그들은 이 시에 있어서의 종이 디아스포라(diaspora)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냄을 암시하기 위하여 이 본문을 약간 어설프게 고쳤습니다. 헬레니즘적 및 다신교적 환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들에 있어 커다란 장애들에 직면하였던 이들 유다인들은, 이 종과 꼭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강화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Jews of Palestine identified the victorious servant with the Messiah, but they reinterpreted the sufferings described here to apply them to the pagan nations. The Dead Sea Scrolls interpret this song in the light of the ignominy xperienced by the Teacher of Righteousness, the probable founder of the group that established itself at Qumran.

 

팔레스티나의 유다인들은 이 승리를 거둔 종을 메시아(Messiah)와 동일시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고통들을, 다신교 민족들에게 그들을 적용하기 위하여, 재해석하였습니다. 사해 문서(the Dead Sea Scrolls)은, 꿈란(Qumrarn)에 스스로 설립하였던 집단의 개연적인(probable) 설립자인, 의로움의 스승(the Teacher of Righteousness)에 의하여 경험하게 되었던 불명예(ignominy)에 비추어 이 노래를 해석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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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따라서 이것으로부터, 기원전 약160년-기원후 68년의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 동쪽의 사해  주변에 존재하였던 유다교의 한 분파인 꿈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았을 것임을 우리가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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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revealed his redemptive mission to be that of the suffering servant prophesied by Isaiah here. He referred to him on a number of occasions -- in his reply to the request made by the sons of Zebedee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Mt 20:28 and par.); at the Last Supper, when he announced his ignominious death among transgressors, quoting 53:12 (Lk 22:37); in some passages in the fourth Gospel (Jn 12:32, 37-38); etc. He also seems to refer to it in his conversation with the disciples of Emmaus (Lk 24:25ff) to explain his passion and death. Therefore, the first Christians interpreted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in terms of this poem; evidence of this is the expression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es" in 1 Corinthians 15:3; the words "for our trespasses" (Rom 4:25; 1 Cor 15:3?5); the Christological hymn in the Letter to the Philippians (Phil 2:6-11); and expressions used in the First Letter of Peter (1 Pet 2:22-25) and in other New Testament passages (Mt 8:17; 27:29; Acts 8:26-40; Rom 10:16; etc.).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이사야(Isaiah)에 의하여 예언되었던 고통받는 종(the suffering servant)의 바로 그것이 될 당신의 구속(救贖) 사명(his redemptive mission)을 드러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베대오(Zebedee)의 아들들에 의하여 청해졌던 요구에 대한 당신의 답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오 복음서 20,28 및 병행 구절들)으로, 그리고, 이사야 53,12를 인용하시면서, 무법자(transgressors)들 가운데서 당신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선포하셨던 때인  최후의 만찬에서 (루카 복음서 22,37), 그리고  네 번째 복음서에 있는 일부 구절들 (요한 복음서 12,32.37-38) 등의 여러 번의 경우들에서 이사야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또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엠마오에 관계되는 제자(the disciples of Emmaus)들과 당신의 대화에서도 이 구절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 24,25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그러므로, 첫 그리스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 시의 용어들로 해석하였으며, 그리고 이러한 것에 대한 증거는 1코린토 15,3에 있는  "성경 말씀대로" 라는 표현, "우리의 잘못 때문에" (로마 4,25; 1코린토 15,3-5), 필리피 사람들에게 보낸 서간에 있는 그리스도론적 찬미가(the Christological hymn) (필리피 2,6-11), 그리고 베드로의 첫 번째 서간 (1베드로 2,22-25)에서 사용된 표현들 그리고 다른 신약 성경 구절들에 (마태오 복음서 8,17.27.29; 사도행전 8,26-40; 로마 10,16 등) 있습니다.

Patristic tradition reads the song as a prophecy that found fulfillment in Christ (cf. St Clement of Rome, "Ad Corinthios", 16:1-14; St Ignatius Martyr, "Epistula ad Polycarpum", 1, 3; the so-called "Letter of Barnabas", 5, 2 and "Epistula ad Diognetuin", 9, 2; etc.). The Church uses it in the Good Friday liturgy. 

 

교부들의 전통은 이 노래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을 발견하는 한 개의 예언으로서 읽습니다 [로마의 성 클레멘트(St. Clement of Rome), "Ad Corinthios", 16:1-14; 성 이냐시오 순교자(St. Ignatius Martyr), "Epistula ad Polycarpum", 1, 3; 소위 말하는 "바르나바의 서신(Letter of Barnabas)", 5, 2 그리고 "Epistula ad Diognetuin", 9, 2 등]. 교회는 이 구절을 성 금요일 전례에서 사용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B.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20[즉, 15분2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Isaiah_in_Dead_Sea_Scrolls"]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해 문서들의 발굴 작업에 참여한 성서 고고학자의 증언인, 꿈란 동굴들에서 발굴된, 고대 히브리어로 필사된, 여러 개가 아닌, 단 한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에 필사된, 이사야서에 대한 설명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60.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C.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50[즉, 18분5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Licifer"]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루치페르’/‘루시퍼’(Lucifer)라는 이름의 유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09.htm

 

D.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들 네 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들’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언제 발췌되어 미사 중에 봉독되는지에 대한 안내를 접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goodfri.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E.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1:35[즉, 1분35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fore-knowledg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한글 표기만으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예지’라는 번역 용어의 오용/남용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8.htm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F. 복습 8: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2:58; 21:54 그리고 39:56[즉, 2분58초, 21분54초 그리고 39분56초] 각각에서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bearing4redemption"]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여기서 ‘짊어지리라’로 번역된 표현이,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 위업과 관련하여, 대단히 부적절함에 대한 지적의 글들을 읽을 수 있다. 대신에 '감당하리라'/'거두어들이리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goodfri.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G. 복습 8: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4:00[즉, 24분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mmunion_with_Jesus"]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H.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4:00[즉, 24분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acred_exchang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거룩한 교환’(sacrum commercium, the sacred exchange)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3.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I. 복습 12: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0:26 및 29:53[즉, 10분26초 및 29분53초] 각각에서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rogressive_glorification_of_Jesus"]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여러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받으셨음에 대한 신약 성경 본문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J.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7[즉, 36분37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arian_heresy"] 본 해설서의 삼위일체 대축일 입문 혹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아리우스 이단’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02.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K.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7:50[즉, 47분5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oubt"]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심’(doubt)이라는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그 종류들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8.htm <----- 필독 권고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불신/회의’(unbelief)‘거부’(disbelief)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3.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67.htm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L. 복습 8: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9:38[즉, 49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mediator"]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보’(中保) 라는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5.htm <----- 필독 권고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8/나해연중제29주일.mp4 

 

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나해 연중 제29주일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0:43[즉, 50분43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vs_mercy"] 

(i) 복습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성경 번역 용어인 자비’(mercy)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4.htm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성경 번역 용어들인 ‘자비’(mercy)‘은총’(grace)의 차이점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2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rcy.htm

 

 

N.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29.htm <----- 필독 권고 

 
O.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b_ot_29.htm <-----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The expression "to serve in order to redeem" summarizes the essential contents of today’s liturgy. "Anyone who wants to become grea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and anyone who wants to be first among you must be slave to all," Jesus tells us in the Gospel. Jesus outshines us all in service, embodying within himself the figure of the servant of Yahweh, despised, the lowest of men, a person of sorrows, familiar with suffering, who gives himself in expiation (first reading). He is also the figure of the High Priest who is not incapable of feeling our weaknesses with us, who has been put to the test and is the same as we ourselves, apart from sin (second reading).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구속(救贖)/속량하고자(redeem) 봉사한다"는 표현은 오늘의 전례의 본질적인 내용들을 요약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라고 예수님께서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 당신 자신 안에서, 멸시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은 자, 속죄로서(in expiation)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자, 고통받음과 친숙한 슬픔의 한 인격(a person)인, 야훼의 종의 표상을 유형화하심으로써(embodying), 빛을 발하십니다(outshines)(제1독서).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들과 함께 계시면서 우리들의 나약함을 느낄 수 없지 않으신 분이신, 이미 시험을 받으셨던 분이시고 그리고, 죄를 제외하고, 우리들 자신들과 동일한 분이신, 대사제(High Priest)의 표상이십니다 (제2독서).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403. 보조성 원리가 무엇인지요?
CCC 1883-1885, 1894


보조성 원리(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보완성 원리)란 상위 공동체(community of higher order)가 하위 공동체(community of lower order)에 속하는 일(task, 직무)을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여(assume) 이 일에 대한 권한을 하급 공동체로부터 빼앗지 말아야 함을 말합니다. 오히려 상위 공동체는 필요할 경우에 하위 공동체를 지지하여야(support) 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29_c1883.htm
 

CCCC 404. 진정한 인간 사회를 위하여 다른 어떤 것들이 요구되는지요?
CCC 1886-1889, 1895-1896


진정한 인간 사회는 정의(justice)에 대한 존중(respect), 가치들에 대한 공정한 계층 구조(just hierarchy of values), 그리고 물질적이고 본능적인 양상(material and instinctual dimensions)들을 내면적이고 영적인 양상들의 아래에 둘(subordination) 것을, 요구합니다. 특히 죄가 사회적 풍조(climate)를 타락시켜 온(has perverted) 곳에서는, 각 인격(person)과 전체 인격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사회적 변화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심장(hearts)들의 회심/윤리적 변화(conversion of hearts)를 요청할 필요가 있으며 하느님 은총을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의의 실천을 요구하며 그리고 가능하게 하는, 사랑(charity)은 가장 위대한 사회적 계명(social commandment)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위의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정의(justice, 정의로움)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및  3개의 향주덕(theologic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사랑[charity, caritas, agape, (christian) love]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마태오 복음서 20,13-14 및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I 제15-18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들을 꼭 참고하도록 하라. 그리고 다음의 엮은이의 졸글들을 또한 참고하라: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99.htm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0.htm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5.htm 
참고 자료 4: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1.htm 
참고 자료 5: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4.htm 
참고 자료 6: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참고 자료 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6.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29_c1886.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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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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