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슬퍼요. 그래서 자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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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현 [miyo11] 쪽지 캡슐

2001-03-30 ㅣ No.2740

눈물이 나요.

 

여러분들에게 성당은 어떤 곳인가요?

저희 사무원들, 또 사무장님, 관리장님들께 성당은

어떤 의미에선

신앙의 터전이기 이전에

일터입니다.

 

신자분들 눈에는 그저 편해보이는 자리일지 모르지만,

저희들에겐 나름대로 힘들고, 치열한

여러분들의 일터와 다름없는

똑같은 직장입니다.

 

어느 본당에

저보다 더 일 잘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이쁘고, 나이도 어린 사무원이

2년여 넘게 일해오다

어느날 아침,

갑작스런 해고통지를 받고

그 다음날 아침 인수인계 하고

성당을 나서야 했습니다.

만 하루하고 반나절의 시간에

그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해고의 사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인건비가 비싸다? 나이가 너무 많다? 집이 멀다?

일반회사에서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인 그 친구 나이가 많다구요?

집이 멀면 본인이 고생이지...

 

저희 모두 한마음으로 아파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런 도움도 되어주지 못하고,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또 이렇게...

 

저희도 사람입니다.

성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 천사같은 상냥한 모습으로

모든 이들을 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늘 똑같은 Clara입니다.

근데, 저에 대해 들리는 평가(?)는 늘 똑같지만은 않습니다.

저를 칭찬해주시는 분들을 뵈면,

상냥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십니다.

저에 대해 불만을 갖고 계신 분들을 뵈면,

참으로 인내심을 요하게 하시는 그런 분들입니다.

 

몇 해 전의 일입니다.

저보다도 더 어린 본당청년이었는데,

대화중에, 제가 그런 얘길 했었어요.

친절한 분들께는 잘 대하게 되지만,

함부로하는 신자들에겐 그렇게 잘 할 수가 없다고...

대답은 이랬어요.

"그러면 안 되죠. 그럼 뭐 보통사람들이랑 똑같게요?"

'넌 어떻게 사니?'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당 직원들은 보통사람이랑 틀려야한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도 사람이라고

흔히들 말씀하시죠?

거기에 한 줄 더 보태주셔요.

사무실 직원들도 사람이라고...

 

너무 길게 나누었습니다.

답답하고, 힘빠지고, 슬픈 마음에...

 

지금 막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괜찮다고, 그리고 언니들한테 너무 고맙다고,

그동안 자기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몰랐다고...

그 친구는 밝게 웃는데,

저는 자꾸만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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