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성당 게시판
파리 생각 |
---|
부활 성야 미사를 마치고 본당 신부님께서 조촐한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주임 신부님, 사무장님, 사무원, 식복사 그리고 저까지... 다섯이 의기투합(?)하여 부활을 경축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배려해주신 한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잔치가 끝나고, 포도주가 조금 남아서 제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절대루 욕심 나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한 잔 정도밖에 안남았길래 치운다는 생각으로 가져온 겁니다. 그런데 마개가 이미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어서 할 수없이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나머지를 해치울 심산으로 잔에 따랐는데..... 웬 새끼파리 한마리(시체)가 둥둥 뜨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선 포크로 그 놈을 건져 냈습니다. 몇차례를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술을 얼마나 쳐먹었는지 그 쬐끄만 배가 불룩 했습니다. 게다가 놈의 눈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죽을 때 상당히 취해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파리지만 교훈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술이 웬수다!"
엊저녁 성가대, 전례부와의 회식 때 과음했던 게 생각나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은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새끼 파리를 통해서 새삼 배웁니다. : : :
그리고 나서 놈의 죽음을 향해 건배했습니다. 파리가 빠져 죽은 포두주라도 알딸딸해지는 건 마찬가지군요.
오랜만에 올라와서 술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좀더 건설적인 얘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활 축하 인사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부활의 은총이 가득 내리기를 소망합니다.
행당동 신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