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성당 게시판

파리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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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베네딕도) [hawhetal] 쪽지 캡슐

2000-04-25 ㅣ No.903

 

 

부활 성야 미사를 마치고 본당 신부님께서 조촐한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주임 신부님,   사무장님,  사무원, 식복사  그리고 저까지...   다섯이 의기투합(?)하여

부활을 경축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배려해주신 한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잔치가 끝나고, 포도주가 조금 남아서 제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절대루 욕심 나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한 잔 정도밖에 안남았길래 치운다는 생각으로

가져온 겁니다.  

그런데 마개가 이미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어서 할 수없이 그냥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나머지를 해치울 심산으로 잔에 따랐는데.....

웬 새끼파리 한마리(시체)가 둥둥 뜨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선 포크로 그 놈을 건져 냈습니다.  몇차례를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술을 얼마나 쳐먹었는지 그 쬐끄만 배가 불룩 했습니다.

게다가 놈의 눈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죽을 때 상당히 취해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파리지만 교훈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술이 웬수다!"

 

엊저녁 성가대, 전례부와의 회식 때 과음했던 게 생각나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은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새끼 파리를 통해서 새삼 배웁니다.

:

:

:

 

그리고 나서 놈의 죽음을 향해 건배했습니다.

파리가 빠져 죽은 포두주라도 알딸딸해지는 건 마찬가지군요.

 

오랜만에 올라와서 술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좀더 건설적인 얘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활 축하 인사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부활의 은총이 가득 내리기를 소망합니다.

 

행당동 신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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