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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전철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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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5-12-13 ㅣ No.4607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철역은 도시의 분주함의 시작을

알리기나 하듯,서서히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마련이다.

미로와 같은 통로와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스치며 지나치게

되는 많은 도시인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부딪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과 질서를 지키므로

우리사회가 유지되는 듯 느껴진다.

6호선 전철은 다른 노선에 비해 아직까지는 승객이 많지 않아

아침의 시작이 상쾌하다.


그러나 어제의 일진은 그러한 작은 행복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약수역에서 내가 타고 있던 전철에 노숙자로 보이는 술에 취한 젊은

친구가 전철 칸 중앙부 좌석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과 사회에대한 불평불만을 섞은 술주정이 육두문자로 이어지

고 있었다. 잔잔했던 호수 위에 누군가 돌을 던져 잔잔하던 수면 위

에 어지러운 파형의 물결이 일 때처럼 조용했던 전철 안의 평화가 깨

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나서서 그의 무뢰한 행동을 저지해 주기를

바랬으나 불의를 보고 움직이는 양심을가진 용기있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시의 소시민들은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나 피해가 생기지 않은 한

결코 나서지 않는 속성이 확인되고 있었다.

전철안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모두들 눈을 바닥에 깔고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니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 볼 용기가 없어 보였다.

그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되뇌기라도 하듯이...

상대적으로 그의 음성은 더욱 커져 전철안을 그의 원맨쇼 무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며 투쟁아였던 우리시대

의 젊은이들을 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나 역시 눈을 바닥에 깔고

작은 소요와 무관한 듯 앉아 있었으나 무언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철이 이태원 역에 도착하자 미국인으로 보이는 흑인이 나의 앞 좌

석에 앉았다. 작은 소요가 일고 있는 전철 안의 풍경이 어색한 듯 그는

두리번 거리다가 건너편에서 폭언을 퍼붓고 있는 부랑자를 바라보았다.

문화가 다른 이곳의 낯선 전철안의 풍경을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빗거리를 찿고있던 부랑자의 관심이 그 외국인에게 쏠렸고 이어

큰 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 미국놈 검둥이 새끼야!. 왜 째려보는 거야"

하며 소리치는가 싶더니 성큼 성큼 그에게 다가와서 주먹을 휘두르며

마치 폭력을 쓸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

바로 내 건너편 좌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나는 대책없이 바라 보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술과 피로에 지친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충혈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조용히 타일렀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며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을 썼다

다행히 그의 행동에 움칫 제동이 걸렸다.

그를 좌석에 앉히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쳐다보는 것과 째려보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그 외국인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검은 갈색 검은 피부가 오히려 지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선하게 보이는 맑고 흰 눈에는 황당함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무언가 사과의 말을 대신 하여야 할 것 같았으나,

멋있고 적절한 영어가 머리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Move to another train" 내가 나즈막하게 말을 건냈다. 내가 전하고

자 하는 의도를 알았다는 듯이 그가 몸을 일으켰다.

재차 나는 "I am sorry" 하며 말을 건냈다.그의 시선과 다시 마주쳤다. 

썩 적절한 표현이 못되겠지만 대신 미안해하는 나의 생각을 그가 감지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연결통로를 건너 다른 칸으로 건너갔다.


그가 떠나자 전철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비친 도시의 부랑자와 더불어 외국인과도 대화를 나누던 나를

도리어 낯선 이방인으로 여겼으리라...

나도 다음역에서 내렸다.

환승을 위한 긴 통로를 천천히 걸으며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괜히 나섰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성이 마비된 취중에도  나의 충고를 순순히 따라 주었던 그 부랑자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취중이라 할지라도 나이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행동에 잘못을 느낄 수 있는 인지능력이 아직 남아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12월의 매서운 새벽 바람을 온 몸으로 이겨내며 역사 주위를 떠돌수

밖에 없는 그 역시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로써  우리가 보듬고 가야 할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에 비가 온 후 인지라,

그날 아침은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차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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