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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67

오늘은 5월 민중 항쟁 20돌을 맞는 날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이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김성용 신부님(당시 광주 남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수습위 대변인)이 사제의 입장에서 바라본 광주 항쟁 일지 "분노보다는 슬픔이"를 날짜에 맞추어서 게재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일구려는 실천하는 신앙인들에 좋은 묵상 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노보다는 슬픔이

 

김성용 신부

 

나는 진실을 진실이라고 예언해야 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지닌 신부로서 양심에 따라 지난 80년 5월 18일부터 26일까지 사이에 광주에서 일어난 씻을 수 없는 민족적 불행이요, 역사에 유래가 없는 비극을 마태오 복음 5장 37절의 말씀과 같이 "Est Est Non Non"(그렇다, 그렇다, 아니다, 아니다)라고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의 최고 지도자이신 지극히 존경하올 김수환 추기경 각하에게 전하고 전 국민이 아니 전 세상에 알려질 것을 간절히 바란다. 마태오 복음 10장 26-28절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 말아라.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소외 5.18 사건의 발단

 

 

 

80만 시민이 조용히 잠든 아침 5시 30분, 예수 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위하여 눈을 떴다. 조선대학의 뒷산에서 밝은 아침의 햇빛이 맑은 하늘을 비쳤으며 미사를 드리려는 신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성당에 들어오고 있었다. 10시 미사 30분 전 성당 정문에 수상한 40대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힐끔 힐끔 성당 안을 살핀 것이 심상치 않은 징조를 느끼게 한다. 미사를 마치고 환갑을 맞이한 신자의 어머니를 축복하기 위하여 11시 30분 곡성으로 향했으나 노동청에서 도청에 이르는 도로가 차단되어 있었다. 경찰인지 군인인지 방패를 손에 든 모습은 마치 로마의 군인을 생각하게 했다.

 

오후 5시 같은 장소에 돌아왔을 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간다. 아침보다 배가 늘어난 경찰관과 군인들이 엄중히 경계하고 있었으며 도로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노을이 질 무렵 마침 박찬희 선수의 타이틀 방어전이 열리고 있는 도중 계엄사령부의 통행금지시간 연장이란 발표가 TV자막에 비쳤다. 최초는 오후 8시부터, 그러나 얼마 후에는 밤 9시부터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아침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밤미사가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사를 드릴 수 없다고 대답했으나 곧 일찍 미사를 드리자고 알렸다. 8시 25분 밤미사를 끝내고 신도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조용하다. 너무도 조용하다. 차소리와 소음 때문에 자정이 지나서야 잠을 이루는 매일이었으나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밤을 지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전날 자정부터 밤새도록 예비검속이 계속되고 가택수사가 무자비하게 감행되었다. 이날 낮과 밤 그리고 자정이 가까울 무렵 잘 알고 있는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신부님, 저는 000입니다. 괴롭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또 전화를 하겠습니다.' 그는 왜 괴로워했을까, 문득 신부인 나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괴로워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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