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성당 게시판

[전례]후암성당에서는 조화서베드로님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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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하 [LYHPAUL] 쪽지 캡슐

2001-09-01 ㅣ No.552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대교구에서는 9월16일 일요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순교자 현양 신앙 대회를 개최 합니다. 각 본당에서 한국 순교 성인 103위 가운데 한 분을 선정하여 특별히 그 분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저희 후암 본당은 성 조화서 베드로님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조화서 베드로는 수원 지방의 도마지에서 1814년에 태어났고, 1839년에 순교한 조 안드레아의 아들입니다. 부친을 잃은 뒤에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신창 땅에 이사하여 몇 년간을 최양업 토마 신부의 복사겸 마부로 일하였으나, 최양업 신부 선종함으로써 1864년에 다시 전주 소양면 성지동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막달레나를 아내로 맞아 아들 조윤호 요셉을 낳았는 데, 얼마 후 부인 한 막달레나가 죽자 홀아비로 있다가 다시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습니다. 그의 성격은 쾌활하면서도 겸손하고 양순했으며, 신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켜 신자다운 몸가짐을 잃지 않았습니다. 1866년 12월 5일 저녁,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힌 조화서 베드로는 자기 집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그의 며느리가 달려나가 자기 남편인 조윤호 요셉에게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하였고, 자기 아들 조윤호 요셉이 집으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너는 여기에 들어와선 안된다. 어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으나 아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자기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자가 함께 묶여 전주로 향하는 도중에 여러 가지 수모와 혹심한 천대를 받았으며, 주막에서 며칠을 묵어가며 목적지인 전주에 도착한 후 곧 이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심문을 받게 됩니다.

 

조화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도 함께 있는 신자들을 격려하여 평온한 마음으로 순교에 임하도록 준비시켰고, 그는 죽인다고 협박하며 배교를 강요하는 원님에게 "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죽은 뒤 내 곧 새 세상에 가서 살게 될 것이오"라고 응수하여 더욱 잔인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사형장에 도착한 조화서 베드로는 침착하게 죽을 준비를 한 다음 희광이에게 "이곳 처형장에서 까지도 흉폭한 그대여! 천주교를 좀 믿어보시오. 우리는 죽으면서도 천주교를 신봉할 것입니다."라고 한 후 성호를 긋고 나서 세찬 칼을 세 번 받고 장엄하게 순교하였습니다. 때는1866년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하니 그의 나이는 52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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