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성당 게시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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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sookyung] 쪽지 캡슐

2001-02-22 ㅣ No.536

산곡동천주교회 성전 난입 및 성직자 폭행에 대한 우리의 입장

 

 

 

우리는 지난 2월 20일 오후 6시 20분경 인천지방 경찰청(청장 민승기) 소속 기동대원들이 인천교구 산곡동천주교회(주임사제 장희성 프란치스코 신부)와 샤미나드 피정의 집(관장 마리아수도회 김재복 요한 수사)을 무단 난입하고 양주용 부제(28세) 등을 폭행한 사실에 대해 엄중 항의하는 바이다.

 

 

 

당시 산곡동천주교회에는 신자들이 저녁 7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오고 있었고, 시위대의 일부가 경찰의 과잉 진압을 피해 모여들어 7∼80명의 노동자·청년들이 별다른 행동없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부근에 있던 약 1백 명의 경찰 기동대가 성당과 피정의 집 정문을 각각 여러 겹으로 봉쇄하자, 로만 칼라 복장의 양주용 부제(28세)와 이현우(루가) 사무장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정식으로 기동대 지휘관에게 수 차례에 걸쳐 미사 참례하는 신자들을 위해 경찰 병력을 철수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성당 마당에 있던 노동자·청년들에게는 미사 참례하는 신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피정의 집 마당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였고, 노동자·청년들은 성당측의 이러한 요구에 따라 피정의 집 마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성당과 피정의 집 정문을 봉쇄하고 있던 약 1백 명의 기동대원들이 갑자기 동시에 성당과 피정의 집 안으로 진입하면서 마당에 있던 청년·학생들을 무작위로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미 성직자의 신분임을 밝혔고 로만 칼라 복장을 하고 있음에도 기동대원들은 항의하는 양주용 부제의 머리를 경찰봉으로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하고, 당시 미사 참례를 하기 위해 왔던 청년 신자 안철호와 박성철도 연행하려고 하였다. 이에 항의하는 본당 사무장에게도 멱살을 잡는 등 폭력을 행사하였다. 심지어 경찰을 피해 성전으로 피한 청년 1명을 제의실까지 쫓아가 강제로 연행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월21일 오전에 인천지방경찰청장이 성당난입사건에 대해서 나길모 주교와 최기산 주교를 방문하여 사과를 하였으나 우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당일 오후 4시, 민승기 인천지방 경찰청장은 성전 난입과 성직자 폭행에 따른 파문 확산을 우려해 서둘러 기자 회견을 자청해 유감의 뜻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민 청장의 기자 회견이 사과도 아닌 유감의 뜻만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사건 파문 확산을 막으려고 사건의 전말을 호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 청장은 "당시 상황이 성당내라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지휘관들이 제지할 겨를조차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밝혔으나, 이는 거짓말이다. 앞서 사건의 경과에서도 밝혔듯이, 로만 칼라 복장의 양주용 부제가 자신이 성직자의 신분임을 밝히고 미사 참례를 위해 오는 신자들을 위해 정문 봉쇄를 풀어줄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정식으로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도 성당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또한 당시 성당과 피정의 집에 있던 노동자·청년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을 피해온 이들이었으며, 어떠한 과격한 행동 없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성당측의 요청에 따라 신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피정의 집 마당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또한 이미 지휘관의 지휘 아래 성당과 피정의 집 정문을 각각 여러 겹으로 봉쇄하고 있던 기동대원들이 동시에 진입한 상황이 지휘관의 통제를 벗어난 행위였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이다.

 

 

 

이어 민 청장은 "정확한 진상 조사를 통해 진입 경위와 책임 소재를 밝혀 공개하고 관련자들을 엄중 조치할 방침이며, 앞으로 경찰관과 전·의경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이러한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할 것임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같은 약속을 신뢰하기 어렵다. 민 청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성직자인 양주용 부제를 폭행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전·의경들은 지휘관의 명령없이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 경찰의 지휘 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과잉 진압 작전을 일부 전·의경의 우발적인 실수인 양 호도하려는 태도를 볼 때, 우리는 민 청장에게 진상 규명 의지나 사과 표명의 뜻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몇 년 전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 사건에 이어 벌어진 이번 산곡동성당 성전 난입과 성직자 폭행 사건을 겪으면서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었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전통적으로 그들의 보호자이자 대변자이고자 노력해왔다. 이 같은 전통 때문에 천주교의 성전은 갈 곳 없는 약자들이 찾아가는 최후의 피난처라는 사회적 합의가 우리 사회에는 존재해 왔다. 이번에 경찰의 과잉 진압을 피해 노동자·청년들이 산곡동성당으로 피신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들을 연행하기 위해 성전에 무단 난입하고 심지어 성직자를 폭행한 이번 사건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대우자동차측이 1,750명의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정리 해고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정든 직장에서 버림을 받은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연민을 느낀다. 특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횡령사건에서 보듯이 이 같은 일방적 정리 해고는 경영진과 정부의 부정과 무능이 불러온 경제 위기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행위이므로 우리는 반대한다. 아울러 생존권을 요구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진압작전을 통해 해산시키고, 50명이 넘는 노동조합 지도부를 수배한 조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행위이므로 우리는 반대한다.

 

 

 

우리는 산곡동성당 성전 난입과 성직자 폭행은 물론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우리의 요구

 

 

 

1. 우리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정리 해고를 반대하며, 정부 차원에서 대우자동차 정상화를 위해 힘쓸 것을 요구한다.

 

 

 

2. 우리는 대우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수배를 해제하고 구속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3. 우리는 이번 성전 난입과 성직자 폭행 사건의 책임자인 인천지방 경찰청장과 부평경찰서장이 공개 사과함은 물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하고도 명시적인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1년 2월 22일

 

 

 

천주교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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