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10월호 [훈화]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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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9-26 ㅣ No.31

[성찬례와 자신의 봉헌]


1.<성찬례 본래의 정신으로>

한 달 전에 우리 본당 구역에 대규모의 화재사고가 있었다. 토요 특전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화재가 나서 여러 개의 공장건물과 가정집이 모두 불탔다고 신자들이 알렸다. 우리 본당 한 신자의 집도 전소(全燒)되었다고 한다. 나는 우선 사람이 상하지는 않았는가 물었다. 다행히 사람은 모두 대피했다고 한다. 나는 일단 사람이 상하지 않은 것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물건이나 집이야 복구하면 되지만,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문제이다. 우선 본당식구들과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있는 신자 가족을 방문했다. 함께 기도하고, 마음이 안정되도록 위로하고, 당장 급한 생필품을 마련하도록 조금 도와주고 돌아왔다. 본당에서는 정성으로 2차 헌금을 해서 신자 가정과 피해를 본 비신자 가정을 도와주었다. 그동안 본당 자매들이 마음을 모아 세탁기와 냉장고도 마련해 주었고, 옆 본당과 마을 공동체에서도 따듯한 정을 나누어 주었다. 자매님이 타던 티코승용차도 불에 타버렸는데, 중고세피아 자동차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자동차를 축복하면서, ꡒ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다ꡓ고 한 번 더 위로했다. 자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재가 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많이 회복해서 안정을 찾았고, 나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자매님에게서 듣게 되었다. 사고가 난 후 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자매님을 찾아왔단다. 안면이 있던 그 사람은 자매님 아들의 티셔츠를 사가지고 왔다. 자매님은 고맙게 받았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5백만 원이 있는데 우선 이것을 가져다 쓰라고…. 그 이주노동자에게 5백만 원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값이다. 그는 선뜻 목숨값을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모든 사건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자매님은 평소 나눔의 삶을 살았다. 이웃의 장애인 할머니를 자신의 티코에 모시고 매달 목욕과 미용을 해드렸다.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그런 일들은 잘 드러나지도 않았다. 자매님은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2녀2남이다. 그러나 현재 5남매를 두고 있다. 한 아이는 가슴으로 낳아 기르고 있는데, 그 막내는 방글라데시 소녀이다. 방글라데시 시골에서 친부모와 사는 그 소녀에게 매달 학비와 식비를 보내주고 있다. 물론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고, 자매님 지갑 속 사진으로 만난다. 아마 화재를 당한 지난달도 막내딸에게 후원금을 보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딸을 굶기는 어머니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성령의 힘으로 축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이루고, 그것을 나누어 먹고 마신다. 빵과 포도주는 신자들이 미사성제에 바치는 제물이다. 빵과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 시대에 빵과 포도주는 사람들의 삶 자체다. 밀농사, 포도농사를 통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결정체가 빵과 포도주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바친 삶을 축복하시어 당신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주신다.

우리는 미사성제 안에서 제대 위에 자신의 삶을 제물로 봉헌해야 한다. 사제는 신자들의 삶에 손을 얹고, 성령을 청하여 축복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희로애락의 삶을 거룩한 삶으로 축복하신다. 우리는 거룩한 생활로 파견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삶을 봉헌하지 않고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경향이다. 결과는 신앙 따로, 삶 따로의 힘 없는 삶이다. 우리는 다시 성찬례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사성제를 현실생활 안에서 재현하고, 현실의 삶을 가지고 미사성제에 참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찬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모든 신앙의 원천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매님은 성찬례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_김정곤 토마스 신부


2.<성찬례적인 삶이 되도록>

2003년 성 목요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는 회칙을 선포했습니다. 금년에 성체성사의 해를 보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 성사에 잘 참여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교황님의 회칙 안에서 이런 주제와 관련된 참 좋은 말씀을 찾았습니다. 이 회칙 안에 마리아는 우리의 모델이시며 ꡐ성찬의 여인ꡑ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성찬례에 더욱더 능동적이며 의식적으로 참여하려면 ꡐ성모님의 학교ꡑ에서 그 자세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온 생애를 통하여 성체성사의 여인이셨습니다. 일생동안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그러한 자세를 갖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신앙의 신비라는 성체성사는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찬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너무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마리아께서 영보 때부터 ꡒ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ꡓ라고 말씀하신 것과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ꡒ아멘ꡓ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희들은 성체성사의 신비 안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리아처럼 살아 있는 ꡒ감실ꡓ이 되고 우리 눈과 목소리를 통하여 ꡒ그분의 빛을 빛나게ꡓ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보고 ꡐ하느님은 찬양을 받으소서!ꡑ라고 말할 수 있게 살아야 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ꡒ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ꡓ 이 말씀은 해골산의 수난과 죽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께 사랑받던 제자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셨듯이 이는 성찬례 안에서, 주님께서 마리아를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자신이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학교에 들어가 그분이 우리의 동반자가 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동화되려고 노력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를 살아낼 때 우리는 사도 바오로처럼 ꡒ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ꡓ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ꡐ성찬의 태도ꡑ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ꡒ성모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십니다.ꡓ 이 정신은 바로 성모의 노래에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 ꡒ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ꡓ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미 그때 태중에 예수님을 잉태하고 계셨기에 이 찬미는 혼자 부르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우리의 삶이 성모님의 삶처럼 완전한 찬미와 감사의 노래가 되도록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태도로 매일 성체를 모실 때 우리의 신앙 여정에 살아있는 희망의 씨앗을 심게 될 것입니다.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현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증대시킵니다. 곧 평화를 위하여 일하고, 정의와 연대라는 굳건한 전제 위에 민족간의 관계를 세우며, 임신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생명을 수호하여야 할 필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결국 삶이 어떤 면에서 완전히 성찬례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_환희도․세례자 요한 수사


3.<성찬례와 나의 봉헌생활>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전례는 미사이며,  성찬 전례는 미사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와 복음 선포 후 강론과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조용히 예물준비 기도를 하신다.

ꡒ온 누리의 주 하느님…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ꡓ

회중에 앉은 하느님 백성들은 ꡒ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소서ꡓ 하고 응답한다.

비록 우리의 응답은 짧고 간결한 한마디, ꡒ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소서ꡓ이지만 사제의 동작 하나하나, 그리고 기도문을 조용히 마음으로 함께 외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제와 하나가 되어 빵과 포도주를 봉헌한다. 비록 보여지는 형상이 빵과 포도주이나 우리의 기쁨과 행복, 슬픔과 고통을 빵과 포도주에 함께 합하여 봉헌할 때 나는 능동적으로 사제직에 참여하게 된다.

신자들이 ꡒ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ꡓ 하고 응답하면서 전 세계 교회 안에서 바쳐지는 미사를 함께 기억한다. 시간 시간마다 전 세계 교회 안에서 바쳐지는 미사로써 하느님 백성들이 끊임없이 주님께 찬미와 영광이 되고 우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할 수 있음은 얼마나 가슴 벅찬 사실인가.

우리 회중이 ꡒ거룩하시도다! … 높은 데서 호산나!ꡓ 하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주님을 환호할 때쯤 하늘에서 천사들과 성인들이 내려와서 우리와 함께 환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제대 양 옆에 케루빔과 세라핌 천사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듯이 연상된다. 아울러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수난하시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환호했던 그 소리 또한 들리는 듯하다. 환호가 끝나면 회중에 있는 우리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사제는 성령청원을 한다. 

거룩한 힘을 내려주시기를 비는 특별한 기원을 통하여, 교회는 사람이 바친 예물이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간구하고, 또한 이 흠 없는 제물이 영성체 때 이를 받아 모시는 이들에게 구원이 되도록 간구한다.

ꡒ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ꡓ 하실 때 이 예물은 빵과 포도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 미사지향한 모든 사람을 아울러 함께 봉헌하고 산 제물이 되어 축성되어지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기를 청원한다.

사제가 축성된 빵을 거양할 때 회중에 있는 우리는 눈을 들어 거양된 성체를 흠숭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말씀드린다. ꡒ주님, 당신 사제들의 손으로 축성된 성체를 흠숭하며 사랑 드립니다. 사랑으로 저희를 양육하시기 위하여 온 존재로 오심에 감사드립니다.ꡓ

사제가 축성된 성혈을 거양할 때 거양된 성혈을 바라보며 조용히 ꡒ주님, 당신 사제들의 손으로 축성된 성혈을 흠숭하며 사랑 드립니다. 그 성혈로 저희와 온 세상 사람들을 씻어주시고 거룩하게 성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육으로 고통중에 있는 …의 마음도 당신의 성혈로 씻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ꡓ 하고 말씀드린다.

사제가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거양할 때 비록 백부장과 같은 믿음은 아닐지라도 이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과 마음 합하여 한마음으로 고백한다. 

ꡒ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ꡓ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 ꡒ주님, 당신의 성체와 성혈이 한몸을 이루듯이 모든 이 안에 하나되어 당신 영광 드러내는 겸손한 사제 될 수 있게 하소서ꡓ 하고 미사를 봉헌해주신 사제를 위해 기도하고, 아울러 영육의 고통중에 있는 사제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를 세상 끝나는 날까지 사랑으로 양육하시고 함께하시려고 성체성사로 오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러 나간다. 주님을 모실 때 제일 먼저 ꡒ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ꡓ 하고 고백한다.  영육간의 고통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날의 복음과 독서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가진다.

미사 시작부터 끝까지 온 마음으로 사제와 함께할 때 성찬례는 더욱 풍요롭게 나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또한 지향하는 모든 것에 주님께서는 함께해 주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_김다복․야고보 수녀


4.<레지오 마리애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

레지오를 잘 이해하는 단원이라면, 특히 간부의 직책을 경험해본 분이라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ꡒ하느님께서 형제님께 어떤 특정한 임무를 맡기실 때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능력의 은총도 주십니다.ꡓ 이것을 ꡐ임무의 은총ꡑ이라 부르겠습니다. 나는 이것이 사실임을 여러분들에게 보증하겠습니다. 더욱이 성모님의 모성적 사랑을 통하여 오는 은총이 모두 그러하듯이 하느님께서는 레지오에서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은 간부에게 놀라운 은총을 주십니다.

간부라면 누구나 성모님께서 주시는 모성적인 이끄심과 사랑을 받을 특별한 몫이 있으며 최상의 선물인 성령을 받습니다. 레지오에서 직책을 맡으면 거룩함이나 사도직의 열정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분의 생애에서 특별한 은총의 시간입니다. 

교본 34장 쁘레시디움 단장의 역할을 기술하고 있는 절(節)에는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녀의 말을 인용한 내용(교본 325쪽)이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이 말씀은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돌보는 일에 관련된 단원들의 책임에 대하여 몇 가지 깊이 생각해 볼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혼구원사업은 성녀 데레사뿐 아니라 모든 레지오 단원의 능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들 중에서 가장 큰일인 영혼구원사업에서 우리들을 도구로 쓰십니다. 사도직이 갖는 비밀은 하느님께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 곁에 머무르며 우리들을 도구로 쓰시도록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도직의 중심축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경우에나 진정한 사도의 직분은 첫째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이며 우리들의 몫은 그분에게 협력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랑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몰래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사도직이 하는 일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좋은 일을 하고 나면 그 반대급부로 명예를 취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위대하신 덕목 중에 겸손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영혼 전체와 그분의 존재와 삶 전부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으며 자신이 그 영광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모든 위대한 신학자 성인들은 진실로 겸손의 미덕을 호프(Hope)의 신학적 미덕과 연계합니다. 그 이유는 알기 쉽습니다. 우리들이 겸손할 때 ꡐ내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은 본래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취된다. 특히 영혼들의 구원사업은 더욱 그렇다ꡑ는 것을 거듭 알게 됩니다. 호프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신보다도 애초에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한다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탁할 때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영성생활에서 이 단순한 진리가 모든 레지오 단원들, 특히 레지오의 각급 간부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권력을 추구하고, 위엄을 차리기 좋아하고, 자만에 빠진다면 겸손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레지오 가족에게 필요한 신뢰와 리더십을 쌓고 유지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은 모든 형태의 사도직 활동에서 필요한 리더십의 원형으로 성모님의 겸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레지오의 리더십은 동료 단원들이 기쁜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봉사하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이 겸손한 태도의 봉사를 통하여 하찮은 사람들도 성인과 사도가 될 수 있고, 강하고 모험적인 사람들은 바른 길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레지오의 리더십은 그리스도 신비체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돌보심에 우리들이 마음을 다하여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_맥그리거 신부/김차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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