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음식과 강론

인쇄

수유1동성당 [suyu1] 쪽지 캡슐

2006-02-24 ㅣ No.506

 

2004년도 전반기에 인기를 독차지하는 텔레비젼 드라마 '대장금'의 전반부, 수라간 이야기를 보면서 강론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은 가족들에게 맛있고 영양가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요. 신부님들은 하느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가능한 맛있게, 영양가 있게 요리를 해줘야 하나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1. 어린 장금이의 훈육을 담당한 한 상궁은 먼저 물을 떠오라고 시킵니다. 장금이가 냉수 그릇을 소반에 받쳐 조심스럽게 가져오자, 한 상궁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떠 오라고 합니다. 장금이는 의아스러워 하면서 이번에는 따뜻한 물을 떠 옵니다만, 똑 같은 대답을 듣습니다. 다음에는 물을 급히 마시면 안 된다는 뜻으로 버들잎을 띄워서 떠 옵니다만, 역시 같은 대답... 나중에는 장금이가 짜증을 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제가 어찌합니까?' 그러자 한 상궁은 장금에게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일러줍니다. 이는 오래 전에 장금이의 엄마가 장금이에게 물도 음식이라고 하면서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의 상태를 우선 생각하라는 일러준 것을 기억시켜주는 말입니다. 그러자 장금이는 '아!'하고는 한 상궁에게 묻습니다. '잘 주무셨습니까?, 변은 잘 보셨나요?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나요?' 한 상궁의 대답인즉, '다 괜찮다만, 목이 좀 약한 편이다' 그러자 장금은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약간 탄 물을 가져옵니다. 음식은 우선 그것을 먹을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맛있고 유익한 음식이 될 것입니다.


영혼의 양식을 전해주는 강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강론을 듣는 사람들의 상태와 그들의 관심사, 이해의 정도 등을 고려해서 강론을 해야만, 그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영적 양식을 줄 수 있지 않을런지요.

2. 어린 장금이가 커서 수라간 나인이 되는 시험을 치루게 되는데, 먼저 이론 시험이 있고, 이어서 실기 시험이 있게 됩니다. 이론 시험에서의 성적 순위로 실기 시험에 사용된 식재료를 고르게 됩니다. 순위가 빠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좋은 식재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관인 정상궁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설혹 남보다 먼저 식재료를 고르는 기회를 얻더라도 좋은 재료를 고를 눈이 없는 사람은 소용이 없다'. 좋은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눈, 그것이 없으면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없겠지요.


영적 양식의 요리사인 사제도 강론에 유익하게 사용된 좋은 재료들(훌륭한 예화나 말씀, 그림, 음악 등) 식별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냥 성서 내용을 해설하는 것보다도 성서 내용에 꼭 맞는 예화나 더나아가서 그림, 음악 등을 사용한다면, 신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뜨겁게 하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중전을 길러준 늙은 상궁이 병이 들어 절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는데, 장금이는 그 상궁을 돌보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장금이는 우연히 그 절에서 일을 하는 일꾼이 해준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 궁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맛이었습니다.

 

장금이는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그 일꾼을 쫓아다니면서 물어보았지만, '정말 비결은 없다'는 말만 듣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일꾼이 볕에 나물을 널었다가 비가 올 듯하면 얼른 그 나물을 걷어들이고, 볕이 나면 다시 내다 널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정성을 다하고 기쁘게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 맛의 비결이 정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장금이가 일꾼에게 당신이 만든 음식 맛의 비결이 정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자, 그가 맞장구를 칩니다. '맞습니다요, 우리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그랬시유. 가난해서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없으니 정성이나 실컷 먹으라고유'.
정성, 그것이 있어야 진정 음식 맛이 납니다. 슈퍼에서 끓이기만 하면 될 정도로 다 준비된 음식은 감동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듬뿍 든 음식이 정말 맛이 있지요. 사먹는 음식은 피와 살이 되기 어렵습니다.
영적 양식의 요리사인 사제 역시 정성을 다 해서 하느님 말씀을 요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성을 쏟아서 준비한 강론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지요.

4. 수라간의 최고 상궁인 정 상궁이 권모술수를 일삼는 최상궁을 누르고 정도를 걷고자 하는 한 상궁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기 전 날에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에 대해 이렇게 일러줍니다.
"어릴 적에 절해고도와 같은 구중궁궐에 들어와 외로움이 깊어져서 왕의 성은이라도 입어볼까 하여 몸부림치고, 외로움에 돈이라도 모아볼까 하여 줄서기를 하고, 외로움에 권력이라도 잡아볼까 하여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들이니 가엽게 여겨라."


비록 정상궁은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권력 획득과 유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못된 무리들과 싸우면서 그들에게 여러번 수모를 겪기도 하였지만, 이런 무리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가엾게 여기라는 것이다. 권모술수를 일삼는 그들은 사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약한 사람이기에 불쌍이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 상궁은 한 상궁에게 원칙을 지키려는 올곧음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한 자비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유언처럼 남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목숨 바치신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사제는 사람을 감싸 앉으려는 따뜻한 마음, 특히 죄인에 대한 자비심이 있어야 하리라.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야말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 손희송 신부

 



296 3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