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2010년~2011년)

강길웅신부님의 십우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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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열 [pri701] 쪽지 캡슐

2011-05-06 ㅣ No.7352

 

 

***아래 글은 개인적인 모임 카페에 정리해서 올렸던 것을 

몇 분의 요청으로 그대로 올려 드립니다.***

 

지난 11월 6, 7일 1박 2일 지리산 피아골 피정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피정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2일째 새벽, 모든 피정자들은 마당에 집합, 

신부님 구령에 맞춰 맨손 체조 후에 인근의 연곡사로 올라가 

신부님의 해박한 사찰 문화재 해설과 불교교리들을 접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를 우리 신앙 안에서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중 법당의 외벽에 그려진 禪畵 십우도에 대한

강길웅 신부님의 해설을 장 대건 안드레아님께서 동영상으로 찍으셨는데

용량이 커서 카페엔 올릴 수 없어 녹취를 정리,

함께 하시지 못한 울님들을 위해 신부님 말씀 그대로를 올립니다.

 

녹취록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동영상 촬영을 해주신

장 대건안드레아님께 감사+감사를 전합니다.

 

 


참조 :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의 의미


 

 사찰에 가면 법당의 벽화로 심우도를 볼 수 있는데,

사찰을 찾을 때 반드시 이 심우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탐방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소는 道家에서는 유유자적, 儒家에서는 義를 상징했지만

불가에서는 ‘인간의 본래 자리’를 의미했다.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비유한

 ‘심우도’가 이같은 의미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소는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 불자와 친숙하다.

대부분의 법당 벽화에 ‘심우도’가 그려져 있고,

불경 곳곳에 소를 비유한 상징들이 들어 있다.

 

선사들도 이러한 소를 수행의 채찍으로 삼아왔다.

고려때의 보조국사 지눌은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했다.

 ‘소를 기르는 사람’ 즉 참다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뜻이다.

만해 한용운 선사도 만년에 서울의 자택을 심우장(尋牛莊)이라 했다.


‘불성을 찾기에 전념하는 곳’이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심우도’는 동자와 소를 등장시켜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과정을 묘사한 그림으로

이때 소는 인간의 진면목인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수행단계를 10단계로 나누어 표현하기 때문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심우도는 중국 송나라 때 보명(普明)스님의 심우도와

확암스님의 십우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두종류의 그림이 함께 그려졌으나

최근에는 확암스님의 십우도가 법당벽화로 주로 그려지고 있다.

 

 


 


 


강길웅 신부님 해설


 



신부님 : 부처님은 먼 피안의 세계에 있지 않아요. 각 사람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음 안에 있는 본성을 바라보면 成佛하는 거죠.

그래서 깨닫기 위해서 끊임없이 마음을 찾아 본성을 바라봐야 되요,

 여기서는 마음을 소(牛)로 묘사한 것입니다.

동자가 깨닫기 위해서 소를 찾아 나서는 것이죠.

그림이 열장이라 해서 십우도, 또는 소를 찾는 그림이라 해서 尋牛圖라고도 합니다.


 


  1. 심우(尋牛)

 처음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를 상징한다.


 

신부님 : 동자가 고삐를 들고 소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야 할지를 몰라요.

마음이 어디 있는지?...  대책이 안 섭니다.

그런데 경전을 읽고 수행을 하다 보니까

 

 2. 견적(見跡)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됨을 상징한다.


 

 신부님 : 잡초 사이로 소 발자국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렇게 수행정진하다 보니 드디어 마음 한 쪽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소꼬리를 바라보게 되는 거지요.

우리로 치면 이래요.

어느 날 대책이 안서는 십자가가 들이 닥칩니다.

쉽게 얘기하면 똥오줌 싸는 시어머니를 떠  맡게 되요.

 대책이 안서요. 어떻게 모셔야할 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모시다 보니까 이게 내 팔자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견우(見牛)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한다.

 

 

신부님 :  하도 붙들고 기도를 하다 보니 하느님 뜻이 어렴풋이 보이는 거예요.


  

4. 득우(得牛)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見性이라고 하며,

땅 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금강석을 찾아낸 것에 비유한다.

이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그려지며,

아직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상태임을 상징한다.


 


신부님 :  네 번째는 드디어 마음을 붙잡게 됩니다. 바라보게 되는 거지요.

소는 길들여 지지 않았어요.

몸 가는 데 마음 안 오고, 마음 가는 데 몸이 안 오고...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이고...

이게 일치가 잘 안 되죠.

사실 로마서 7장에 보면 바오로도

 ‘마음은 선을 하고 싶은 데 몸은 자꾸 악으로 기울어진다.’고

갈등 있는 것을 말하고는 합니다.

우리도 성체조배를 한다... 묵주기도를 한다...  하지만,

머리는 사우나로 갔다... 미장원에 갔다...

입으로는 기도를 하는 데 이러잖아요?!

 

바로 요런 상황입니다.

 

십자가로 치면 이런 거예요.

십자가가 똥오줌 싸는 시어머니라는 것을...

 하느님 뜻이라는 것은 알았어요.

그런데 왜 하필 “나냐? 다른 동서도 있는데...”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소가 길들여 지지 않으니까 코뚜레를 꿰어 가지고 채찍으로 때려야 되요.

즉, 고행과 나눔이 필요한 거예요.

 더 고생을 해야 되는 거지요.


  

 5. 목우(牧牛)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종에서는 이 과정을 가장 중시한다.

이때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 검은색이 차츰 흰색으로 바뀌어 간다.




신부님 :  다섯 번째는 드디어 소가 길들여집니다.

동자가 잠을 자도 소는 도망가지 않아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가 반만 하얗습니다.

이것은 三毒이 안 빠져서 그래요.

세 가지 독이란, 貪, 瞋, 癡라고 합니다.

탐(貪)은 탐욕으로 욕심, 진(瞋)은 분노, 화내는 것, 치(癡)는 어리석음입니다.

깨닫기는 했는데 아직 거기에 묶여져 있어요.

우리로 말하면 똥오줌 싸는 시어머니가 하느님 뜻이라는 것은 알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편해요.

그런데 성지순례도 가고...

어디 좀 갈려고 하면 때때로 “심란하다.”

바로 그 뜻입니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이때의 소는 전체가 완전한 흰색을 띠고 있다.

소와 동자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는

깊은 마음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본성의 소리를 의미한다.


 

신부님 :  여섯 번째.

동자가 소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이제는 분노, 욕심,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완전히 초탈한 상태입니다.

소를 타고 집으로 아주 멋있게 개선장군처럼 가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여기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느라고 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십자가가 나를 짊어지고 가요.

잘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가 어떻게 나를 짊어지고 가나.

똥오줌 싸는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니까

여기 가서 불평하고, 저기 가서 불평하고...

“못 살겠어. 정말 아주 냄새 나서...” 마구 이러니까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속으로 그럽니다.

“저 여자 팔자가 사나워서 그래.”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래.” 등등...  이렇게 말들을 해요.

그런데 이 여자가 순간 천주교에 입교를 하더만,

똥오줌 싸는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네요.

어디를 가서도 시어머니 자랑 하고...

아~ 이러니, 사람들이 이번엔 뭐라 그래요?

“아무개 엄마는 하늘이 낸 여자야.”

“아무개 엄마는 천사 같애.”

십자가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태우고 가는 거예요.


  

 

7.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 데 없고

자신만 홀로 남은 상태를 표현한다.

결국 소는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고,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왔으니

그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신부님 :  일곱 번 째.


소를 타고 집에 갔더니 소가 없어요.

소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이 건 하나의 방편이었어.

무슨 방편?

집에 들어가는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소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내 기도나, 내 수행이나, 내 의지로 아버지 집에 못 들어 가요.

안 돼!

어떤 도구가 있어야 돼.

방편이 있어야 돼.

그 게 뭐야?

십자가!

즉 불청객(갈등, 고통 등등)이 찾아 와야만, 그것 때문에 집에 갈 수 있어요.

일단, 아버지 집에 들어가면 십자가는 없는 거예요.

‘아! 이것이 나를 하느님 집으로 인도 했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자신도 모두 잊어버린 상태를 원상으로 그리고 있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는다.


 

신부님 :  여덟 번째는 나도 없어요.

완전히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버려요.

내가 소금이라면 다 녹아서 물이 되어 버리듯...

부처님이 이것을 깨달은 거예요.

緣起 또는 空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는 거예요.

 없는 거요.

여러분들도 어머니 아버지가 만나기 전에 여러분들은 어디 있었어요?

없었어요.

우리가 죽으면 내 몸에서 바람이 빠져나갑니다.

물도 빠져나가요.

내 몸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풀도 되고 나무도 되요.

그럼 내가 돌아가서 의지할 것이 어디냐?

물질적으로 보면 내가 돌아가서 바람도 되고,

물도 되고, 흙도 되고, 나무도 되고, 풀도 되요.


  

 9. 반본환원(返本還源)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즉 있는 그대로 비치는 자연의 경지를 표현한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이다.

 

 

신부님 :  아홉 번 째.

이것은 나도 없는 겁니다.

나무도 불타면 없어지잖아요.

돌도 닳으면 없어지고...

이 걸 깨달으면 어떻게 되느냐?

사물의 진면목을 바라보게 돼요.

내가 돌아가서 의지할 것이 바람이죠, 물이죠, 땅이죠, 풀이죠, 나무죠.

알고 보니 ‘이 우주 자연은 내 몸이다.’라는 걸 알게 되요.

 

그리고 이 우주는... 자연은...

내 집과 같다.

몸과 같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거요.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중생 제도를 위하여 석장을 짚고

저잣거리로 나서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신부님 :  이를 깨닫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저잣거리로 나가요.

술집에도 가고, 고기집에도 가서

욕심 부리는 사람, 화내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있으면 가르쳐 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피정집에 와서 강론도 듣고, 절에 와서 설법도 들었으니,(웃음)

집에 갔을 때, 누군가가 십자가 때문에 화를 내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우리 의지나 기도로 아버지 집에 못 들어가요.

그것(십자가)이 와야만 그것을 도우며

그것을 방편 삼아서 아버지 집에 들어가게 돼서

하느님과 만나게 된다는 걸 가르쳐 주고 일러 줘야 돼요.


 

자 앞으로 갑시다.

가운데로 가서 부처님께 절하세요. 이건 예의입니다.


 


 


<참고> 십우도 그림은 인터넷 자료실 펌자료로 송광사 법당 심우도 입니다.

  

 

 

 

첨부파일 청초의 계곡8(국악명상곡).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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