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4주간 토요일 ’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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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2-24 ㅣ No.5695

사순 제4주간 토요일 ’24/03/16

 

지난 ’231028일 로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라는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 종합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오늘은 그중 3부 유대를 만들고 공동체를 구성하기 편에서 열여섯 번째 주제인 경청하고 동반하는 교회를 위하여란 항목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첫 번째, 경청은 최근 2년 동안의 시노드 여정과 총회의 작업을 특징짓는 가장 강렬한 경험을 잘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주고받는 경청, 곧 경청하고 경청받는 이중적 의미에서 그러하다. 경청은 매우 인간적인 가치, 역동적 호혜성이며 여기에서 다른 이의 여정에 기여하고 또 자신을 위한 누군가의 기여를 받아들인다

 

두 번째,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로부터 말을 하도록 그리고 경청받도록 초대된다는 것은 지역 교회 차원에서 시노드 여정에 참여하였던 많은 이에게, 특히 사회 안에서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여러 형태의 소외를 겪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렬하고도 예기하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경청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긍정과 인정을 받는 경험이고 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원을 활성화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세 번째,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 위해서는 어떤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이런 전망에서, 경청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한 공간을 주기 위하여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요청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의 대화라는 역동성 안에서 이를 경험했다. 이것은 금욕적 수행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각자에게 자신의 한계와 자기 관점의 편파성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교회 소속의 경계선 너머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영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며, 변화와 회심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네 번째, 경청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론적 가치를 지닌다. 곧 예수님께서 만나신 사람들에게 취하셨던 그 태도를 우리도 취하는 것을 의미하며(필리 2,6-11 참조), 이는 교회적 가치 또한 지니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어떤 세례 받은 이들의 활동을 통하여 경청하는 것은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시노드 여정 동안 교회는 경청되고 동반받기를 요청하는 많은 사람과 집단을 만났다. 먼저 젊은이들을 들 수 있는데, 경청과 동반에 대한 이들의 요청은 그들을 위하여 열렸던 세계주교시노드(2018)에서 그리고 젊은이를 향한 우선적 선택의 필요성을 확인한 이번 시노드 총회에서 강하게 울려 퍼졌다

 

여섯 번째, 교회는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가지고, 성직 구성원이나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성적, 영적, 경제적, 제도적 남용, 그리고 권력과 양심의 남용에 희생된 사람들이나 그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참된 경청은 치유, 참회, 정의, 화해를 향한 여정의 근본 요소이다

 

일곱 번째, 시노드 총회는 자신들이 삶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전통과 교도권의 혼인과 성 윤리 문제에 대한 가르침에 충실함을 선택함으로써 고독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있음과 그들에 대한 지지를 표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들에게 특별히 가까이 있으며,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헌신에 동반하도록 초대되었다

 

여덟 번째, 혼인과 관련된 상황,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 때문에 교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경청되고 동반받으며 그들의 존엄성이 보호되도록 요청한다. 시노드 총회에서, 교회에서 상처받거나 무시되는 이들 또는 그렇게 느끼는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비, 공감이 있었는데, 이들은 집으로돌아와 안전함을 느끼고 판단받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경청되고 존중받는 장을 원한다. 경청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함께 걸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시노드 총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누구의 존엄성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아홉 번째,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난, 배제와 소외를 겪는 사람들 또한 경청과 동반을 찾아 교회를 향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 교회가 그들의 관점을 존중하게 되고 구체적으로 그들 편에 서며, 무엇보다 그들에게 교회 자신이 복음화될 수 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특히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그리고 자신들이 공동체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청과 동반에 봉사하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격려를 전한다. 교회의 이름으로 그들은 “[너희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6)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현한다.  

 

열 번째, 많은 이들이 종종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외로운 상황에서 산다. 노인들과 병자들은 종종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도록 본당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권한다.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 찾아 주었고’(마태 25,39 참조)라는 복음 말씀에 영감받은 자비의 행위들은 관련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를 형성하는 데에 깊은 의미를 가진다

 

열한 번째, 매우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 줄 아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목소리를 교회는 경청하고자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로 젊은이들, 여성들, 소수자들처럼 어떤 구성원들이 자유로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통치 체제에서 사는 경험은 자유롭게 말하는데 필요한 신뢰를 손상시킨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권위의 행사가 자유를 주기보다 억압적일 때에도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 https://www.cbck.or.kr/Notice/20230653?gb=K120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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