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박은종 신부님의 죽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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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bejoyful] 쪽지 캡슐

2000-02-13 ㅣ No.1201

모든 인간이 맞아야 하는 죽음의 의미는 생존의 가치성을 전제로 하여 그 실존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육체적 질병으로 맞는 죽음, 정신적 고뇌와 번민 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자의에 의해 맞이 하는 죽음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필자(원주 고한성당 안승길 로베르토 신부님)가 이 젊은 사제의 죽음의 의미를 피력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고인이 6개월 동안 살고 있던 곳(상동)과 나의 본당과는 가까운 이웃이었기에 유일하게 같은 사제로서 선배, 후배로서 만남의 시간이 많았고 10번 이상 태백산맥의 길들을 같이 등방하면서 내면적 실존의식과 40년간 살아오면서 그중에 9년간의 사목생활의 의미를 신앙과 교회체계와의 실존의 가치적인 측면에서 고뇌로서 고백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지난 11월 21일 상동공소를 떠나기 전날 태백산 천제단에서 5시간 등정과 하산을 하면서 "사제직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뇌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 그간 선배님으로, 때로는 아버지처럼 저를 아껴 주시고 사제직의 고유성을 체험을 통해 확인시켜 주신 것은 너무나도 감사 합니다. 저는 능력도 없고 의욕도 없어요. 제도교회에 폐만 끼친 것 같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기에 내가 다시 찾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등산한 시간들을 고귀한 삶의 일상으로 간직하겠어요"

 

이런 인사와 함께 그와 헤어졌다. 그로부터 전혀 소식이 없던 그와 우연히 만난 것은 12월 22일 서울에서 태백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였다. 밝은 표정 속에서 남쪽 해안가에서 노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고 안착하는대로 연락도 하고 찾아 뵙겠다는 말과 함께 헤어진 것이 생전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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