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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마을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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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5-12-19 ㅣ No.4620

 

매일 반복되는 퇴근길에 전철과 연계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빈 좌석이 많이 있었다. 출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대단히 운이 좋은 날이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신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상체를 창쪽으로 밀착시켜 앉으시기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를 해 드렸다.

옆에 앉으신 아주머니께서 내게 말을 건넸다.

 

 

“교회에 나가십니까?” 창 밖을 보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올 때에는 대개가  구걸을 하기 위한 포석으로 활용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평온한 느낌을 주는 교양이 있어 보이는 60세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옆모습이 언뜻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이 분이 개신교 신자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어떻게 할까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거짓말을 하기 싫어 성당에 다닌다고 대답하며 그 분의 반응을 기다렸다.

“같은 하나님이시지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함께 할 수 있다면 믿음을 갖는 방법이 다른 것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리아의 존재를 들먹이며 일장 설교를 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사고가 트이신 분이었다.

대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물었다.

“어느 교회에 나가세요?”

“왕십리에 있는 무학교회입니다. 우리 나라 초대 교회의 지파지요.”

“무슨교 이세요? 장로교이신 가요? 아니면 감리교이신 가요?”

“장로교입니다”

“권사님 이시겠네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개신교에 대하여 잘 아세요?”

“저도 결혼하기 전에는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권사님이시였고요”

“그런데 왜 천주교로 개종했나요?” 길 잃은 어린양을 바라보는 듯한 연민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제 아내가 카톨릭 신자라서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우리 며느리도 성당에 나가고 있지요. 아이들 둘은 벌써 영세를 받았고......”

이성적인 사고로는 며느리의 종교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교회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며느리가 끝내 아쉬운 듯 길게 숨을 내쉬고 계셨다.

“그럼 아드님은 교회에 나가나요?. 아니면 성당에 나가나요?” 내가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아무 곳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과 두 정거장을 동행한 짧은 시간 이였지만 느낌이 있는 대화이었던지라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권사님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셨다.

 

 


지금은 시작과 끝이 희미하지만 24년 전에 내가 처했던 종교적 갈등의 상황을 아주머니를 통해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특별나거나 성격적으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 10년쯤 후엔 그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성당에 나가게 될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적에 만약 그가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해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성가대는 목소리보다는 마음과 정성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성가대에서 성가를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문득 하늘에 피어나는 어머니의 옛모습을 잊지못하고 윤회하는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 서 있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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