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레지오

2005년 10월호 [사랑 더하기 희망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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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마리애 [legio] 쪽지 캡슐

2005-09-26 ㅣ No.28

기쁨터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애아의 엄마가 된 이후 제게는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이와 더불어 보통 사람의 평범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누렸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가치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다 따스한 집 안에 있을 때 나 혼자만 춥고 어두운 밖에 있는 것 같은 서글픔, 그리고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드렸던 기도의 응답이었는지 기쁨터를 현실 안에서 꿈꾸게 되었을 때는 제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해의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7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난 고등부 2학년, 이제 올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고3이 될 청년으로 자라났고, 기쁨터 또한 많은 변화와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쁨터는 1998년 12월 발달장애아 엄마들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눈물로 함께했던 기도 모임을 시작으로 이듬해 1월에는 일산 지역의 대화동성당에 발달장애아 교리실이 생기고 어린이미사에 함께할 수 있었을 때, 우리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사회 안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용기로 1999년 4월 부활절 후 발달장애아의 엄마들은 예수님과 함께 진정으로 부활하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반지하의 작은 장소를 얻어서 기쁨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어주셨던 분들은 일산 지역의 각 성당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셨고, 최근에는 기쁨터 주간보호센터와 지역아동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관할 성당인 중산성당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자매님들은 주간보호센터에서 간식도 만들어 주시고, 행사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지요.

중산성당 남성 ꡐ사도들의 모후ꡑ쁘레시디움(단장:조계동․사베리오)은 기쁨터에서 새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화전의 체험학습장 정비를 위해 매달 한 번씩 험한 일을 마다않으시지요.  벌에 쏘이고 못에 찔려가면서 기쁨터에서 새로 임대한 체험학습장 예정지를 자폐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주시려고 무척 더웠던 지난 여름에도 땀을 흘리셨지요. 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연은 기쁨터의 이전을 도와주셨던 공병대대의 윤재보 중사님이 중산성당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반지하 공간에서 시작됐던 기쁨터는 두 번의 이사를 하여 현재는 일산구 성석동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 땅에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를 열었고, 현재는 아이들이고등부 졸업 후 취업과 연결할 수 있도록 갤러리, 찻집, 아트숍, 미술치료실을 겸한 아트센터의 개원 준비를 하고 있지요.

동시에 가톨릭 학교법인의 도움으로 화전에 위치한 야산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성인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작업장과 발달장애 가족들과 은인들을 위한 피정과 통합의 장소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지역을 넘어서 많은 발달장애 가족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실린 엄마들의 글을 모아 ꡐ마음에 남긴 이야기ꡑ라는 책을 낸 바 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이런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비롯해서 항상 기도로 함께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곁에 계시는 덕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후 마치 불치병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긴 부인기(否認期)와 절망기를 지나 어느덧 장애를 가진 아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인생을 용납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삶을 대면하기 시작했을 때 엄마들의 모임인 기쁨터라는 자조 모임이 생겨났지요. 기쁨터의 성장과 더불어 엄마들 역시 성장해왔지만 스스로 돕는다는 자조 모임은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고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것 같은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발달장애 엄마들에게는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드러내지 않고 우리들을 도와주셨던 많은 손길이 없었다면 장애아들을 위한 이런 일들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사회복지에 대한 욕구는 폭발을 하지만, 국가의 경제적 힘은 그에 미치지 못하여 장애 영역에서도 가장 힘든 자폐 장애인들을 위한 대책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특히 성인 자폐인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는 누구라도 똑같이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을 텐데,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영혼인 자폐 자녀들을 준비되지 않는 세상에 내보내기가 무척 두려운 것이 부모들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기쁨터의 엄마들은 발달장애 자녀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우고 사회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터의 목표는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을 둔 가족과 장애 당사자들이 서로 돕고 능력을 키워나가 자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사회 안에서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통합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제도권의 교육 기간이 끝난 후의 성인 발달장애 대책을 세우고, 노쇠해지는 부모를 떠나 독립할 수 있는 기쁨터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애아의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보다 하루만 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분명 부모보다 오래 살아야 하고 부모의 사후에도 변함없이 사랑과 관심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인간다운 성장을 계속하면서 살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장애아의 엄마인 우리들은 고달픈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 오늘을 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위한 대책 또한 마련해야 하는 이중고를 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책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안전한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 아이들의 집이자 아직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집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기쁨터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상하게도 나눌수록 밥상이 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밥상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이십 인 분도 되고 삼십 인 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길은 생명의 보호자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일과 가장 흡사한 일이라 합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일을 우리들 스스로 깨달을 때, 우리들이 내 자식을 넘어 넓은 의미의 자식을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들은 기쁨터라는 자조 모임의 일원으로서 형제애를 나누며 생명을 함께 돌보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_김미경․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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