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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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우 [LYW] 쪽지 캡슐

1999-05-20 ㅣ No.1881

흑석동 사무실 아가씨가 저희 한테 이메일을 보내셔서 저희도 여기 올립니다.

 

 ** 금주는 구의동 본당의 강진구 신부님께서 '구의동 본당 게시판'에 올린 글을 소개합니다. 좋은 묵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길, 진리, 생명

   어제도 한잔했습니다. 그럴싸한 핑계를 대 가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고 했던가요?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 마음이 아플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아프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왜냐 하면요... 정말로 가톨릭 교회가 형식주의적인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자체가 형식만을 고집한다는 것보다는,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교회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저희 부모님께서는 전세방을 찾아다니시면서 여러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그중 하나는 그 집이 성당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을 느낍니다. 성당이 내가 사는 집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에 따라 그 신앙이 좌우된다는 말씀입니다. "차를 가져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그 차를 반겨주는 성당에 가버리는 우리들의 모습! 조금만 서두르면 될텐데 10분, 20분씩 늦는 신자 분들! 싫은 소리하면 곧장 신앙의 회의를 느낀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다른 사람들이 곤란할 줄 뻔히 예상하면서 굳이 차를 가져오셔서 골목에 주차하는 신자 분들! 10분 늦게 오셔서 10분 일찍 끝내주기 를 바라는 분들! 주보를 가시라는 신부의 말을 들으시고도 그 신부가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주보를 놓고 가시며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르는 모습들!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신부가 도리어 민망해서 얼굴을 돌리게

되는 아이러니!   저희 구의동 관내에는 아주 큰 공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성당 마당에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넓은 마당이 이런 차 저런 차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면, 사실 신부이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속이 상합니다.

  자동차는 미사 참례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동차는 자신이 미사에 참례 못했다고 슬퍼하거나 분심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 때문에 미사 중에 분심이 생긴다면 그것은 차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항변이겠습니까?

  휴대전화는 미사를 모릅니다. 그런데 그 휴대전화 때문에 거룩한 성전이 시내버스나 지하철 혹은 사람 많은 다방처럼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휴대전화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항의겠습니까? 조금 일찍 오셔서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시면 좋은데, 굳이 미사 중에 화장실을 가시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 물론 급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 혼자 욕먹는 것은 좋습니다. 오래 사니까요. 그렇지만, 몇몇 분들 때문에 하느님의 교회가 욕먹는 것은 싫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느님과 타협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도시에 의로운 사람 10명이 있어도 도시를 파괴하시겠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느님은 만일 그렇다면 그냥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서로가 그 10명중에 속하기보다는 앞을 다투어 나머지 부류에 들어보려고 하는 듯 해서 화가 납니다. 그래서 속이 상해 몇 몇 분과 한잔하며 풀어야 하는 제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영락없이 전화를 하시는 신자 분들 때문에도 화가 납니다. 그렇지만 화가 나도 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한잔했습니다, 어제.... 핑계지만요.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시고 참된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이시며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는 길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길 한가운데 우리의 자동차가, 우리의 휴대전화가 버젓이 있고, 그래서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한다면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길이라고 다 같은 길이 아니고, 진리라고 다 같은 진리가 아니며, 생명이라고 다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올바른 길, 진리, 생명을 찾는 것은 그곳이 넓고 편해서 주차하기 좋다

고, 조용해서 전화 받기 좋다고 제시된 것이 아닙니다. 그 올바른 길, 진리, 생명에는 피할 수 없는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오는 월요일, 조금 우울한 강진구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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