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밀가루 신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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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0-05-25 ㅣ No.1106

저의 고향은 퇴계 이황선생께서 군수로 오실 때  산이 험하고 골이 깊어서 한 번 울고, 떠나 가실 때 사람들과 정이들어 떠나기가 못내 섭섭해 또 한 번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입니다.

1950년대 6.25가 끝나고, 모두들 어렵게 살던 시절에도 그곳에는 성당이 있었지요. 머리가 노랗고, 눈은 파랗고, 코가 우뚝선 신부님들이 많이 다녀가신 곳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군소재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하늘아래 첫동네였지요.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가난하게 그러나 정답게 살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모두 배고프고, 보리고개가 있던 시절이라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가장 반가울 때 였지요.

그때 이방인 신부님과 회장님이 찦차에 밀가루를 가득 싣고 오셔서, 동네 사람들에게 성당에 나오라며 (미끼?)를 던지셨지요.

동네 사람 모두가 성당에 나가겠다고 ( 굳게 다짐?)을 하고 밀가루를 받아 먹었지요.

그런데 저의 집에서 성당까지는 2십리 정도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차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신작로를 걸어서 성당을 다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떨어져 나가고, 저의 부모님과 황씨라는 분의 가족이 1.4후퇴때 북한에서 내려 오셔서 기댈 언덕이 없던 차에 우리 집과 함께 성당을 계속 나가게 되었지요.

성당에서는 2가구를 위하여 회장님을 파견? 하셔서 교리교육을 특별히 지도해 주셨지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장님은 자전거를 타고 오셨더랬어요.

당시에는 교리문답 320조목을 모두 외어야만 세례를 주던 시절이라 부모님께서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으셔서 한글을 먼저 공부하시고, 농사를 지으시면서 320조목을 어렵사리 외우고 , 3년만에 세례를 받게 되었지요. 황씨네 가족과 함께......

(밀가루 미끼?)에 단단히 걸리신 것이지요. 덕분에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리문답을 (외우고?) 유아세례를 받았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에 우리는 성당을 1년에 3번만 갔지요. 즉 성탄절, 부활절, 성모승천대축일, 그외의 날들은 2가구가 모여서 공소예절로 대체했습니다.

(성당 가는 날?)이 돌아오면 아버지께서는 만사를 제쳐 놓고 저희 형제들과 함께 그 먼 길을 걸어서 갔지요. 아버지의 걸음은 왜 그리도 빠르신지....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뚜벅뚜벅 걸어 가시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저희 형제들은 돼지새끼 소풍 가듯이 따라 갔지요.

새벽밥을 지어 먹고 신작로를 걸어서 성당에 도착하면 온 몸이 나른해 지지요.

미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뒤에 앉아 졸기가 바쁘지요. 그래도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무언가 기도에 열심이셨지요.

제가 아는 노래라고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밖에 없고, 미사 때 귀에 익은 기도소리는 주의기도와 사도신경 뿐이었으니,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주일 학교도 못 다녔으니 친구가 있을 턱이 없고 ..................

부활절과 성모승천대축일에는 날씨가 춥지 않은 관계로 괜찮았지만 성탄절에는 변변한 방한복도 없던 시절이라 추워서 온 몸이 꽁꽁 얼어 붙었지요.,

일년에 3번 성당을 가다 보니까 갈 때 마다 고해성사를 보곤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그것이 왜 그리도 싫던지....

신부님과 회장님은 멀리서 왔다고 반갑게 맞아 주시고 점심은 사제관에서 국수를 얻어 먹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후 상급학교는 객지로 나가 유학을 했던 덕분에 성당에 거의 못 나갔지요.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늘  ’나는 천주교 신자’라고 되새기면서 살다가 군대를 제대하고 난후 부터 (제대로?) 다니게 되었지요.

지금은 하느님 품으로 가신 아버지이지만 그때 (밀가루 미끼?)에 걸리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라고 가끔 생각해봅니다.

아버님이 그리워 지면서 신앙의 싹을 틔워 주신데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고, 참으로 줄을 잘 섰구나, 라고 되내어 보곤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이끄시지 않았다면 어찌 가능 하겠습니까?

그저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밀가루 신자’ 화이팅 한 번 해주시지 않겠어요?

 

박재준(비오)   생 ~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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