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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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0-02-12 ㅣ No.1102

요즘 저는 허준이라는 드라마를 정말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은 분들이 그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얼마전에 주인공 허준이 병을 고쳐달라는 병자들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과거를 포기하며 밤새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매우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허준이 그렇게 자신의 중요한 목표였던 내의원 과거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스승 유의태가 항상 강조하던 병자를 긍률히 여김이었습니다. 지금식으로 말한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 어려움에 공감하는 자세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측은지심이라고 흔히 말하던 그런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 나병환자를 측은한 마음을 갖고 고쳐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병환자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측은한 마음으로 대하신 결과였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지하철에서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휴기간동안 했던 TV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며칠 전에 아무아무영화했잖아. 그 최진실 나오는 거 말이야. 집에서 엄마랑 같이 보는데 쪽팔리게 엄마가 엉엉 우는거 있지? 정말 왕짜증이야. 요새 TV는 왜 맨날 질질 짜게 만드는 영화만 보여주냐."

사실 저도 그 영화보면서 울었기 때문에 학생들 말대로 쪽팔렸습니다. 꼭 내 맘을 들킨 것 같아서 계속 자는척 하면서도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차가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영화를 그렇게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보다니.... 역시 고수들은 틀리군하는 생각도 들구요.

 

어쨌든 세상사람들의 마음이 단단히 굳어가고 있는 것은 대세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대화는 그것을 반영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죽지못해 삽니다. 사는게 죄지요 하는 어른들의 푸념속에서도 그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조성모의 노래 중에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노래 가사처럼 우리 마음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내 속엔 헛된 바램도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가시나무숲이 되어 나를 찌르고, 나를 찾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 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냉담한 말들속에도 어른들의 자포자기적인 말들에서도 가시를 발견합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나병환자는 그 병이 치유되기까지 얼마나 숱한 돌팔매질을 당하고 살았을까? 그는 또 얼마나 많이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하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또 얼마나 가족들이 그리웠고,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고, 사람들이 그리워 울어댔을까? 그리고 혹시 지금 이렇게 계속 자신이 부정하다고,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내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마음속에 가시나무를 키우며 삽니다. 그래서 그 가시나무는 나중에 커져서 가시나무 숲이 되어버립니다. 처음엔 귀찮은 사람을 쫒아내고, 하기 싫은 일을 안하게 되고, 싫은 사람을 안보게 되어 편안한 울타리처럼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숲이 커져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어린새들도 날아가고 내 마음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해줄 하느님도 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하느님도 편할 곳이 없는 가시투성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바람만 불면 가시들은 서로를 찌르고 나를 못살게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치유를 받자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소문을 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기쁨에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고통받고 있던 다른 병자들이 눈에 밟혀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자신과 함께 이리저리 쫒겨 다니던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을 찌르던 가시를 뽑아낸 기쁨 바로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나를 찌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찌르고, 하느님이 올 자리를 없애고 하느님이 쉴 자리를 안주는 가시를 생각합니다. 가시는 나무가 되고 결국 숲이 될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이 있다면 우리도 복음에 나병환자처럼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하고 예수님께 치유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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